[논평]미국 제약업계의 의약품 가격 정책 시정 요구는 주권 침해다.

[논평]

미국 제약업계의 의약품 가격 정책 시정 요구는 주권 침해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는 한미 FTA가 추진될 경우 의약품과 의료비 상승으로 인해 의료 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것임을 경고해 왔다. 우리는 오늘 한미업계 대표자회의 내용을 접하고 한미 FTA가 미칠 결과에 대해 더욱 큰 우려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22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업계 대표자회의에서 미국 제약업계 대표 톰 봄벨 머크사 대변인은 “한국의 의약품 가격책정 체제와 보상부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며 “한미 FTA협정 이전에 이를 시정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한술 더 떠 미국 무역대표부 웬디 커틀러 한미FTA 협상 미국측 수석대표는 “한국에서 일고 있는 반FTA 여론에 대해 한국 정부가 정치적 반대를 무릅쓰는 결단이 필요하다”며 한국 정부의 강경한 자세를 요구했다.

의약품 가격 책정 체제에 대한 미국 제약업계의 문제 제기는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국은 사실상 제대로 된 의약품 가격정책 조차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국민의 건강권과 직접 연관되어 있는 의약품 가격의 적정한 관리를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가 지금까지 제대로 된 의약품 가격 정책을 마련하는 노력을 게을리 해 왔던 것이 진정한 문제였던 것이다.

그나마 존재하는 실거래가 상환제와 약가재평가제도가 과연 미국제약업계의 이해를 방해하였는가? 한국 약제비가 OECD 평균 보다 11%나 높을 정도로 한국에서 제약업계의 이익은 충분히 보장받아 왔다.

이미 대부분의 OECD국가들이 약제비의 적정화를 위한 다양한 약가 합리화 방안을 시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제약업계는 무슨 자격으로 우리에게 이러한 노력을 포기하라는 것인가?

미국 제약업계는 이러한 요구를 하기 전에 충분한 임상효과와 경제성평가가 포함된 자료 제출을 통해 약가 적정성을 평가 받는 것이 옳다. 이것이 오히려 그들이 말하는 시장경제에 합당한 행위이자 당연한 의무가 아니겠는가.

더욱 한심한 것은 한국측 무역협회 이희범 회장이 미국측의 요구에 대해 FTA가 체결되면 제거되거나 실현될 것이라고 말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한미업계 대표자 회의에 참석한 한국측 대표단의 이러한 인식이 이미 한미FTA 대표단에게도 충분히 감지되었기 때문에 더 우려스럽다. 보건의료서비스 분야는 공공적 영역이므로 의제에 올리지 않겠다라고 하면서도 가장 근간이 되는 의약품의 가격정책과 특허분야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보인다면, 공공서비스를 유지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진정 정부가 국민의 건강과 직결되는 보건의료 서비스 분야를 협상의제로 삼지 않을 것인지도 의심할 수 밖에 없다.

미국은 미상무성의 OECD국가 약가통제분석 보고서(2004년 12월)를 통해 11개 OECD 국가들이 약가정책을 하지 않을 경우 특허의약품의 수입이 약 25-38%가 증가한다는 분석을 내놓을 정도로 자국 제약업계 이익에 충실하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의약품 분야에 대한 특별한 입장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바가 없다. 오로지 공공서비스는 의제에 올리지 않을 것이고 미국에서 원하지도 않는다는 이야기만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이다. 그런데 이처럼 미국 제약업계가 직접적으로 한국 정부의 약가제도에 대해 언급하는 마당에 미국에서 원하지 않는다는 말만 반복할 것인가?

미국의 요구대로 약가정책을 변경할 경우 나타나는 의료비용의 증가는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제너릭 출시가 어렵게 되고 미국특허 의약품이 한국 시장을 지배하게 된다면 늘어나는 비용은 누가 감당할 것인가?

보건복지부의 철저한 자기 반성을 요구함과 동시에 한미 FTA는 원점에서 다시 검토되어야 함을 정부에 요구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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