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사실상의 특허연장으로 국민부담을 가중시키는 불합리한 의약품재심사제도를 개선하라

사실상의 특허연장으로 국민부담을 가중시키는 불합리한 의약품재심사제도를 개선하라


식약청은 특허기간이 이미 끝난 비만치료제 리덕틸(Sibutramine HCl, 한국애보트)에 대한 국내 제약회사의 개량신약 허가 절차를 진행하던 중 지난 2월 돌연 허가지연을 통보, 사실상 개량신약 불허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최근 그 원인이 미국과 EU의 통상압력이었음이 한 국회의원의 폭로로 밝혀졌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이번 리덕틸 개량신약 허가과정에서 보여준 식약청의 일련의 태도는 의약품평가와 허가에 대한 한 나라의 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판단하며, 식약청이 국민을 위한 기관인지 다국적 제약회사의 이익을 위한 기관인지를 다시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문제가 된 의약품재심사(PMS, post marketing surveilance)제도는 원래 그 취지가 의약품 안정성을 위해 의약품 판매 후 의약품의 부작용을 시험하려는 제도이다. 그러나 한국의 의약품재심사제도는 본래 목적과 다르게 악용되어 국산 개량신약이 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막는 제도로 기능하고 있다.
일본을 제외한 선진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의약품 재심사제도에는 우리와 같이 특허가 만료되는 신약의 독점적 지위를 사실상 연장시켜주는 '동등이상의 자료제출' 요건 항목이 아예 없다. 원래 특허권을 가지고 있는 제약회사의 자료가 공개되지 않는 상황에 '동등이상의 자료제출'을 요구될 시 원자료와 같거나 뛰어넘는 자료를 제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에 문제가 된 리덕틸의 개량신약은 원래 염산 시부트라민과는 다른 메실산 시부트라민으로서 의약품 재심사제도의 '동등이상의 원자료'를 제출할 의무도 사실상 필요 없는 약품이다.

애초부터 불합리했던 식약청의 '의약품 안전성과 유해성에 대한 고시'(이하 의약품 안유고시) 5조 10항의 해석을 정부가 이제 뚜렷이 다국적 제약회사에 유리하게 적용하겠다고 나서고 있고, 이러한 배후에 바로 미국과 EU 정부가 있었던 것이 밝혀진 것이 이번 사안의 실체이다.
이러한 외국의 통상압력으로 인해 다국적 제약회사의 배만 불리는 고가의 외국약가가 독점적으로 형성되는 것은 이 의약품 안유고시만이 아니다.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글리벡'의 경우 '혁신적 신약약가제도' 에 의해 선진 7개국의 평균약가(A7 약가)를 그대로 적용하게 됨으로써 한 알에 24000원 가량하는 고가의 약으로 돌변하였다. '혁신적 신약약가제도'는 미외교통상부(USTR)에 압력에 대해 현 한덕수 부총리(당시 통상교섭본부장)가 굴복해 굴욕적 외교문서에 무조건 도장을 찍어주어 만들어진 제도이다. 이러한 굴욕적 외교정책으로 백혈병 환자들이 한달에 300-750만원의 약값을 감수해야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이 때문에 2년 간을 거리에서 싸워야 했고, 아직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본산인 미국은 치솟는 의료비 지출을 막기 위해 복제약품(제네릭)개발 촉진법을 도입하면서 퍼스트 제네릭 개발을 독려하고 있어 일정한 자료만 제출하면 무조건 제네릭의 개발을 허용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한 푼이 아쉬운 국내 건강보험 재정 안정을 위해 노력해도 모자랄 판에 정부가 앞장서 특허가 만료된 다국적제약사의 의약품 독점기한연장을 공식적으로 인정해, 국민들의 의료보험료를 다국적 제약회사에 가져다 바치는 상황을 정부 스스로 연출하고 있다. 현재 특허가 만료되거나 곧 만료될 다국적 제약회사의 신약시장은 현재 7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네릭이 개발되면 이 약가는 원래 약가의 80% 이하로 책정되고 그 이후 개발되는 제네릭들은 처음 제네릭 약가의 90%이다. 제네릭을 개발하여 의료보험료를 한푼이라도 아끼려는 노력을 기울여도 모자랄 판에 외국의 통상압력에 손쉽게 무너지는 보건복지부와 식약청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기관인가?

정부는 이제라도 이 제도의 원래 기능인 안전성에 대한 사후 조처는 따로 정하고 미국의 통상 압력에 다국적 제약사만 살찌우고 국내제약사를 죽이는 안유 고시 5조 10항을 당장 폐지해야 한다. 차제에 의약품 주권을 지키고 국내의 값싼 복제약품을 쉽게 생산할 수 있도록 개량신약의 개발을 장려하는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야만 한다. 미국정부와 EU 또한 자신의 나라에서도 실시하지 않는 잣대를 외국에게만 들이대는 이중적 자세를 버려야만 한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노무현 정부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책임지는 정부라면 지금이라도 이 문제를 미국의 통상압력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건강과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올바로 풀어나갈 것을 촉구하는 바이다.

2005. 3. 22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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