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다국적 제약회사 '노바티스'의 최고경영자(CEO)가 "전 세계적으로 '의약 민족주의(healthcare nationalism)'가 확산돼 업계와 소비자 모두에게 불이익을 주고 있다"고 경고해 그 배경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노바티스 CEO "'의약 민족주의'가 확산된다"
3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노바티스 CEO 다니엘 바셀라는 "의약 민족주의가 미국, 일본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며 "국가 안보란 명분으로 의약 분야에도 민족주의가 확산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바셀라는 "이런 의약 민족주의는 신약 개발 환경을 저해하는 것은 물론 신약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환자에게도 소생의 기회를 봉쇄하는 부정적인 효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신문은 이런 바셀라의 발언은 지난 1일 폴란드가 다국적 제약업계의 반발을 무릅쓰고 몇 백 종의 수입 약에 대해서 약값을 13% 인하하는 조치를 내린 직후 나온 것이라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이 신문은 또 폴란드 정부는 약값 인하 정책을 "합리적인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다국적 제약업계는 "'복제 약(제네릭)'을 생산하는 공장을 갖고 있는 자국 제약업계를 보호·육성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고 비판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국내에서도 정부-다국적 제약업계 갈등
이런 바셀라의 주장을 둘러싼 맥락은 국내 상황과 놀랄 만큼 흡사해 주목된다. 국내에서도 지난 5월 3일 보건복지부가 약값 절감 방안을 내놓은 후 국내에 진출한 다국적 제약업계에서 집단 반발했었다.
지난 6월 15일 국내에 진출한 26개 다국적 제약업체들의 이익단체인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KRPIA)는 복지부의 약값 절감 방안을 강하게 성토하면서 "복지부의 방안은 다국적 제약업계가 개발하려고 하는 다수 신약들에 대한 환자의 접근성을 저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복지부 역시 폴란드 정부와 마찬가지로 "약값 절감 방안은 국민건강보험 총진료비 가운데 30% 가까이 차지하는 과다하게 지출되는 약값을 합리적으로 줄이기 위한 방안일 뿐"이라며 "이 조치로 환자들은 꼭 필요한 질 좋고 값싼 약을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혀 왔다.
다국적 제약업계 "공장 철수, 투자 축소"?
한편 다국적 제약업계는 국민의 건강권을 내세우며 약값 절감을 추진하고 있는 각국 정부의 움직임에 대해서 공장 철수, 투자 축소 등을 무기로 대응할 것을 밝혀 귀추가 주목된다.
바셀라는 "요새 세계화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가 커지면서 좌파적 사고가 도덕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해외 공장을 짓는 데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KRPIA도 "(복지부의 약값 절감 방안은) 앞으로 투자 환경을 저해하는 요소로도 작용할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이런 다국적 제약업계의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다국적 제약업계는 기술 유출을 이유로 연구개발(R&D) 시설에 대한 투자는 기피하면서 대신 임상시험 등의 협력은 확충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일부 다국적 제약회사는 본국의 규제와 고비용을 이유로 위험 부담이 큰 임상시험을 후진국에서 실시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KRPIA는 국내에서도 26개 업체가 총 100여 건의 임상시험을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