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연합]4월 열린강좌

4월 열린강좌 안내

일시 : 4월 11일(이번달만 둘째 주 목요일로 옮깁니다. 4일이 연휴 전날이라 변경하였습니다)
장소 : 연합사무실(예정)
강사 : 하종강(한겨레21 "휴먼포엠" 담당자/한울 노동문제연구소 소장)
주제 : 노동자 건강과 보건의료운동


아마 하종강선생님 강의를 한번이라도 들으신 분은 아시겠지만 선생님의 이야기들은 정말 재미나고, 심장을 두근두근하게 만드는 분이십니다. 위에 제가 명기한 홈페이지에 들어가보세요. 몇 가지의 글만 읽어보시면 이번 열린강좌는 꼭 놓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혹시 연합 회원 분들 중에 하종강선생님 강의 들으신 분들은 그 '감동의 순간들' 을 좀 리플달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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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강선생님의 몇 가지 글들.


하종강 선생님 홈페이지 http://www.hadream.com

Subject
탁자 위를 구르는... (2002/02/12)



교착 상태에 빠진 교섭은 며칠째 제자리걸음만 계속하고 있었다. 아쉬울 것 없는 회사는 계속 배를 내밀었고, 노조 간부들은 한숨만 쉴 뿐이었다. 노조 간부 한 사람이 제의했다.

"우리 이럴 게 아니라, 다친 사람들을 한 번 보고 얘기합시다."

회사는 그것까지도 마다할 수는 없어 그러자고 했다. 현장에 급히 연락을 취했고, 잠시 후... 회의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다섯 명의 노동자가 들어섰다. 그들은 들어서자마자 팬티만 남기고 옷을 모두 벗어 던졌다. 화상을 입어 괴물처럼 흉하게 일그러진 몸뚱아리들과 뭉툭하게 잘려 나간 팔과 다리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당겨지고 겹쳐진 허벅지의 흉터 사이로 손바닥 하나가 들락거리고도 남을 만큼 틈이 벌어진 사람도 있었다.

아, 누가 이들을 사람이고 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차마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모두 고개를 돌려버렸다. 여간한 강심장이 아닌 한 그들의 모습을 똑바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노조 간부가 입을 열었다.

"우리들은 지금 단 몇 초 동안도 저들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저 동지들은 앞으로 남은 평생을 저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고, 저들의 가족 역시 자기 남편, 자기 아버지의 괴물처럼 변해 버린 모습을 보며 평생 동안 살아야 합니다.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저들이 누구의 일을 하다가 저렇게 되었습니까? 대답해 주십시오. 회사 일을 하다가 저렇게 된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성형수술비를 지급하고, 다시는 저런 동지들이 생기지 않도록 필요한 안전 조치를 하자는 것인데, 당신들은 지금 그걸 못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게 말이 됩니까? 한 가지만 부탁합시다. 당신들의 아들을 우리와 함께 일하게 해 주십시오. 아시겠오? 당신들 아들 데려다가 일 시켜 보란 말이야. 헐벗고 굶주린 우리 노동자 말고, 당신들 아들 데려다가 일 시켜 보란 말이야. 고개 들어! 고개 들고 이 사람들을 한번 똑바로 쳐다보란 말이야! 이 개새끼들아! 고개 똑바로 못 쳐들어?"

감정을 이기지 못한 노조 간부가 말 끄트머리에 소리를 높이며 욕을 뱉었으나, 아무도 말대꾸를 하지 못했다. 노동자들이 착용하고 있던 의족과 의수, 목발들이 기다란 탁자 위로 '우당탕' 내동댕이쳐졌다. 더운 여름이어서 의족, 의수와 연결되었던 근육들이 두부처럼 허옇게 불어 터져 있었다. 회의장에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화상으로 얼룩지고 땀으로 불어 터진데다가 뭉툭하게 잘려 나간 팔 다리에서 풍기는 역겨운 냄새만 가득했다.

그것은 차라리 시작에 불과했다. 결정적인 것은 그 다음이었다. 노동자들 중에서 한 사람이 자신의 눈에 손가락을 '퍽' 찔러 넣더니 의안을 빼 내어 탁자 위로 내 던졌다. 뒤 이어 또 한 사람이 자기 눈을 찔러 의안을 빼 내 탁자 위로 던졌다. 커다란 눈 알 두 개가 탁자 위를 굴러갔다. 모두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10년쯤 전, 어느 재벌 회사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되어 있다는 그 회사의 각종 안전보건 규정들은 그날 그렇게 한꺼번에 만들어졌다. 노동자의 건강을 지키는 일조차 투쟁을 통하지 않고는 얻어지지 않다. 아직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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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은 나눌수록 강해진다 (2002/02/12)



박노해 시인과 한 사업장에서 잠시 일했던 내 친구가 있다. 그 역시 열성적인 활동가이기도 했지만, 박노해와 한 사업장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도 박노해 시인이 수배될 때마다 죽도록 고생을 해야 했다.

얼마 전 그는 우여곡절 끝에 부채를 몽땅 떠 안는 조건으로 한 중소기업을 인수했다. 이를테면 돈 한 푼 없이 '자본가'의 반열에 들어선 것이다. 그가 처음 회사를 인수했을 무렵 우리 연구소에 와서 푸념하기를...

"회사에 완전히 골수분자가 네 명 있는데 말이야. 참 고민이야. 전혀 대책이 없어."

"골수분자라니?"

"노조 위원장, 부위원장, 회계감사, 그리고 사무국장... 먼저번 사장이 이 사람들을 해고도 해보고, 구속도 시켜보고, 폭력배들 시켜서 죽지 않을 만큼 뚜드려 패기도 하고... 할 거 다 해봤는데도 전혀 요지부동이었다는군. 그 친구들만 없으면 정말 사업 한 번 제대로 해 보겠는데..."

친구는 정말로 난감해하는 듯했다. 그런데, 한 달쯤 지나서 그가 만면에 웃음을 띠고 나타났다.

"노동자들이 매에는 강한테 돈에는 약해. 내가 그걸 몰랐어."

"무슨 소리야?"

"만 원짜리 현금 다발로 오천만 원씩 사장실 탁자에 쌓아 놓고 한 명씩 불렀지. 돈 무더기가 탁자 위에 이 만큼은 되더군."

친구는 손으로 둥그렇게 반원을 그리며 탁자 위에 돈이 쌓인 모습까지 그려 보였다.

"그 골수분자들을 한 명씩 사장실로 불러서 말했지. '사표를 쓰면 지금 당장 이 돈을 드리겠습니다. 여기 가방까지 이렇게 마련해 두었습니다. 이 돈을 가방에 넣어서 들고 나가시기만 하면 됩니다. 신중하게 잘 생각하십시오. 이 돈을 받는다고 당신들이 누구에게 해를 입히거나 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것이 정말로 가족과 자신을 위한 길인지... 잘 생각해서 현명한 선택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랬더니 전부 다 넘어가더라는 것이다. 한참 고민하다가 받는 사람에... 기다렸다는 듯이 덥석 받는 사람에... 차이는 있었지만 네 명이 모두 오천만 원씩 받고 사표를 쓰더라는 것이다.

"2억 원으로 간단히 해결했다니까..."

친구는 아예 손을 터는 흉내까지 냈다.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자네가 10년 넘는 세월 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는, 내가 계속 옆에서 지켜봤으니까 잘 알지. 자네가 고생한 것으로만 치자면, 안기부에 들어가서 출세를 한다고 해도 욕할 수는 없네. 하지만 정도 것 해. 정도 것 하라구."

그리고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

'앞으로 내가 너한테 밥을 얻어먹으면... 개다.'

"노동자가 매에는 강하지만 돈에는 약하다"는 것은, 징역을 자기 집처럼 들락거리고, 몇 번씩 해고당하고, 죽지 않을 만큼 얻어터지면서도 절대로 굴복하지 않는 노동자가 돈의 힘에 굴복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말일 것이다. '매에도 강하고 돈에도 강한 노동자'들을 나는 얼마든지 보아 왔으니까...

노동조합 간부가 돈에 약하기를 바라는 자본과 권력이 서로 손발을 맞추면서 개발해 낸 방법이 바로 '손해배상청구 민사소송'이다. 파업으로 발생한 기업의 손실 수백억 원을 몇 명의 노조 간부에게 덮어씌우는 것이다. 십수년의 노동자 생활이 남긴 전 재산인 전세 보증금이나 코딱지만한 아파트 한 채를 우리나라에서 자본과 권력이 손발을 맞추며 노동자로부터 빼앗아 가기는 누워서 떡 먹기보다 더 쉽다.

회사가 노조 간부들을 '업무방해'로 고소하면 권력은 기다렸다는 듯이 노동자들을 구속해서 꼼짝 못하게 만들고, 자본은 노동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면서 동시에 전세 보증금이나 아파트에 가압류 조치를 취한 후 넌지시 요구한다.

"사표 내고 회사를 떠나겠어? 아니면, 전재산을 날리겠어? 선택은 자네한테 달렸어. 사표를 쓰면 당장 오늘이라도 고소와 소송을 취하하지. 괜히 가족들까지 고생시킬 필요는 없잖아?"

사표를 제출하지 않고 끝내 버티는 노동자에게 대한민국의 훌륭한 판사들은 회사가 입은 손해를 노동자가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다. 어떻게 해야 할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어쩌다 집에 일찍 들어간 날이었다. 설겆이를 하던 안해는 "웬일이냐?"고 반가워하다 말고 아들 아이에게 말했다.

"지운아, 전화기 코드 빨리 빼 놔라."

아들 녀석은 '무슨 뜻인지 알았다'는 듯이 웃는 얼굴로 맞장구를 치며 전화기 있는 쪽으로 가는데 마침 전화기 벨이 울렸다. 안해가 웃는 얼굴로 아이들에게 말했다.

"저건 분명히 아빠 전화일 거야."

아들 아이가 전화를 받았다. 과연 그랬다.

"아빠, ○○노동조합이래요. 전화 받으실 수 있어요?"

나는 손발을 씻다가 대충 마무리하고 나와서 전화를 받았다.

"모처럼 집에 일찍 들어가셨을 텐데... 죄송합니다. 지금 쟁의대책위원회 회의 중인데 몇가지 물어봐야 할 일들이 생겨서..."

"무슨 일인데?"

"우리 지난번에 쟁의 결의했잖아. 오늘로 냉각기간 끝나고 내일 아침부터 전면 파업에 들어가기로 했거든. 그런데 우리 현장에는 용역회사에서 파견 나온 노동자들이 많아요. 썩을 놈의 용역회사가 모두 40개나 들어와 있다구. 물론 모두 불법 용역이지. 그 사람들은 비조합원이거든. 조합원들이 100% 파업에 참여해도 용역회사에서 보낸 사람들이 계속 일을 하면 회사는 아무런 손실도 입지 않게 되고 파업은 전혀 효과가 없어요.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내일 아침에 대의원 이상 간부가 모두 현장에 각목 들고 들어가서 그 친구들을 전부 몰아내고 파업을 시작하기로 했는데... 그렇게 하면 나중에 어떻게 되지?"

상황이 매우 다급했던지 평소 나하고 흉허물없이 지내던 그는 반말과 존댓말을 되는대로 섞어가면서 설명을 했다. 주변에서 동료들이 계속 얘기를 하고 있어서 크게 소리를 지르듯이 말을 했다.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답했다.

"어떻게 되긴... 회사가 노조 간부들을 업무 방해로 고소하겠지."

시끄러워서 잘 안 들린다고 그가 동료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야, 너거들 좀 조용히 해봐라. 전화 소리가 하나도 안 들리잖아. 우리를 업무 방해로 고소한다구? 그러면 어떻게 되는데?"

"요즘 같은 분위기로 봐서... 아마 구속되겠지."

"구속되면 어떻게 되는데?"

"음... 노조 간부들 중에 전과 있는 사람 있나 한 번 알아 봐요."

그가 큰 소리로 동료들에게 묻는 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생생하게 들렸다.

"야, 너희들 중에 전과 있는 놈 있냐? 전과자 있으면 빨리 솔직히 털어놔 봐."

뭐라고 술렁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잠시 후 그가 다시 전화기에 나왔다.

"전과 있는 놈은 없다는군."

"교통사고나 폭행으로 벌금 냈던 거까지 모두 포함해서 다시 한 번 알아 봐요. 즉결로 구류 살거나 경범죄로 범칙금 낸 것은 말고..."

그는 다시 동료들에게 큰 소리로 묻고 나더니 내게 말했다.

"그런 것도 없대. 모두 깨끗하다는군."

"그러면 초범이니까... 모두들 집행유예로 나오지."

"집행유예로 나온다구? 재판은 끝까지 받아야 한다는 얘기 아냐? 집행유예로 나오려면 얼마나 걸리는데?"

"아마 두 달이나 석 달은 걸릴 껄..."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가 동료들에게 신나서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 됐네. 두 달이면 나온대. 야, 됐다. 두 달이면 모두 집행유예로 나온대. 그러니까, 들어가 있는 우리나 남아 있는 임시 집행부나 모두 두 달만 버티면 되는 거야."

그가 전해 주는 말을 듣고 노조 간부들이 모두 신나서 한 마디씩 하는 왁자지껄한 소리가 전화기를 통해서 고스란히 들려 왔다. 그날 그 자리에 최소한 두 달의 징역살이를 겁내는 노동자는 없었다.

다음날 아침, 그 노동조합에서 또 전화가 왔다.

"우리가 파업을 하면 회사가 노조 간부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하겠지?"

"아마 그렇겠지."

"우리가 지금 쟁의기금으로 모아 둔 돈이 모두 8천만 원 가량 되는데, 이 돈은 어떻게 되지?"

"그 돈이 지금 어디에 있는데?"

"은행 통장에..."

"회사가 법원을 통해서 은행 계좌를 가압류하겠지."

"가압류하면 어떻게 되는데?"

"회사가 가압류를 풀어줄 때까지는 한 푼도 못 쓰지."

"그럼 큰 일 아냐? 이거 큰 일이네. 뭐 뾰족한 수가 없을까?"

"방법은 딱 한 가지밖에 없어. 그 돈을 몽땅 현찰로 찾아서, 쥐도 새도 모르는 곳에 감추어 두는 거야. 그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야. 그 돈을 여러 개의 통장에 나누어 넣어 둔다고 해도 회사가 그 돈이 어느 은행에 있는지만 알게 되면 가압류할 수 있거든."

"그래? 그렇다고 그걸 몽땅 현찰로 찾을 수도 없고... 잠시만 기다려 봐."

그가 동료들에게 내 이야기를 전하고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그가 다시 내게 말했다.

"그럼 우리가 말이야, 은행 문 여는 대로 그 돈을 몽땅 현찰로 찾아 올 테니까, 당분간 그 돈을 좀 맡아 줘."

"아니, 이 사람아. 그렇게는 못 하네. 현금 8천만 원을 갖고 어떻게 밤에 잠을 자나. 나는 그렇게는 못하네."

"그럼 큰 일이네. 허, 거 참, 큰일이네..."

지하실의 사과상자에 수십억 원을 넣어 두는 사람도 있더라만, 나는 그때 창피하게도 돈 8천만 원에 벌벌 떨었다.

노동조합은 계획대로 파업을 진행했다. 법에 전혀 어긋나지 않게, 완벽하게 합법적으로 파업을 한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원초적 불능'에 가까운 일이기에 부득이 불법 파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40개나 되는 용역회사가 버젓이 들어와 용역 노동자를 공급하면서 '중간착취'를 하는 명백한 '불법'은 문제가 된 적이 없으나, 그 용역 노동자들의 업무를 방해하면서 진행된 노동조합의 파업에는 즉각 철퇴가 내려지기 마련이다.

회사는 당연히 노조 간부들을 업무 방해와 불법 쟁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경찰서에서 피의자 조사 출석요구서가 왔고 조합원들과 송별회까지 마친 노조 간부들은 "두 달 후에 보자."면서 모두 경찰서로 갔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노조 간부들은 구속되지 않았다. 저녁에 모두 웃으면서 나왔다. 웬 일이냐고 물으니까...

"자기들이 먼저 그러데. 아직은 그럴 분위기가 아니래나... 그냥 조사만 받고 나가시라고 정중히 말하데. 그래서 그냥 나왔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이와 비슷하게 파업을 진행한 다른 노동조합들은 초전에 박살나기 마련이었는데... 이 노동조합은 다른 노동조합과 무엇이 다르기에 간부들이 한 명도 구속되지 않을 수 있었는가...

그 노동조합은 애초에 쟁의를 결의하는 총회가 열렸을 때 다른 노동조합들과 달리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함께 결의했었다.

첫째,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당해서 재산상의 불이익을 입는 조합원이 생기면 그 손해는 조합원 전체가 공평하게 부담한다. 불이익이 발생한 달의 임급 지급 기일에 조합원 각자의 임금에서 일괄 공제한다.

둘째, 조합원이 해고되거나 구속되면 그 가족의 생계를 그 조합원이 해고되거나 구속되기 전과 같은 수준으로 보장한다. 그 비용은 조합원 전체가 공평하게 부담한다. 공제 방법은 첫째 항과 같다.

셋째, 구속되는 동지가 발생하면 구속된 동지 한 명당 하루에 조합원 다섯명 씩 면회한다.

총회에서 위와 같이 결의를 했다 해도 나중에 어느 정신 나간 조합원이 "나는 돈 한 푼도 못 내놔" 하고 버티면 곤란해지니까, 총회 자리에서 조합원들에게 위와 같은 내용을 모두 각서로 받아 버렸다. 그렇게 자필로 서약을 하고 나면 나중에 "나는 돈 못 내놔" 하고 버티더라도 임금에서 강제로 집행할 수 있으니까... 조합원들은 한 명도 빠짐 없이 위와 같은 내용의 각서를 썼다. 각서를 쓰지 않으면 맞아 죽을 분위기였으니 안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노동조합은 위와 같은 결의 내용과 함께 전체 조합원들을 다섯 명 씩 묶어 편성한 면회조 명단을 수십장의 대자보로 만들어 '회사를 완전히 도배하다시피' 붙여버렸다. 마치 노조 간부들이 어서 빨리 구속되라고 고사라도 지내는 것처럼... 노조 간부들이 구속되기를 바래서가 아니라 이를테면 '우리는 여기까지 준비하고 있다.'고 저들에게 보여 주는 것이다.

파업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노동조합에 들렸을 때, 노동조합 위원장에게 "욕 보셨다."라고 인사를 건네며 악수를 나누는데 노조 간부 한 사람이 농담처럼 말한다.

"위원장님 이번에 꼭 구속되었어야 하는 건데, 구속도 안 되고 멀쩡히 저러고 다니네."

"그게 무슨 말이야?"

"위원장님이 이번에 구속만 되었어 봐요. 하루에 다섯명 씩 월차휴가 내서 교도소 구경 다니면서 얼마나 좋았겠냐구요. '가족과 함께 하는 역사 기행'은 저리 가라지. 정치학습 일상활동으로 그것처럼 끝내 주는 게 없을 뻔했는데..."

그렇게 말하는 노조 간부도 정말로 위원장이 구속되기를 바라는 표정은 아니었다. 내가 위원장에게 물어 보았다.

"업무 방해로 고소 당한 건 어떻게 되었어? 지난번에 조사 받으러 갔다 온 거 말이야. 두 달 후에나 보자고 '빠이빠이 쇼'까지 다 하고 경찰서에 들어갔다가 저녁에 나왔었잖아?"

"아, 그거요. 아직 모르십니까? 벌금 백만 원 씩 나왔어요. 그 벌금딱지를 경리과에 가서 휙 던져 주고 '알아서 하시오' 그랬더니 지들이 또 다 갖다 내데요."

"노동자한테 벌금 백만 원 정도 물릴 수 있는 죄질이면 징역 몇 년은 살릴 수 있었을 텐데... 세상 참 울퉁불퉁하네."

위원장이 웃으면서 내 말을 받았다.

"회사가 손해배상청구소송 하기만 기다리고 있는데, 영 기미가 없네요."

"손해배상청구소송은 또 뭐하러 기다려?"

"아, 그걸 모르시는구나. 요즘은 조합원들이 언제 노동조합에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느냐... 자기의 이해 관계와 직결될 때, 그때 바로 노동조합에 관심을 가장 많이 갖거든요. 회사가 노동조합을 상대로 수십억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느냐... 우리는 그 비용을 조합원 전체가 공평하게 부담하기로 진작 결의했으니까... 결의뿐만이 아니라 아예 서명을 받아버렸어요. 나중에 오리발 내미는 엉뚱한 조합원이 있을까 봐..."

"그러니까, 회사가 노동조합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한다는 것은 조합원들 모두에게 골고루 손해가 돌아가게 된다는 걸 의미한다 그거군요."

"맞아요. '노동조합 위원장이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당해서 전 재산이 몽땅 날아갔다더라'는 말을 듣고 눈 하나 꿈쩍 안하던 조합원들도 '내 주머니에서 이 달에 수십만원 빠져나간다더라' 그렇게 되면 이번에는 완전히 눈이 뒤집히는 거지요. 분노한 조합원들의 관심이 노동조합으로 다시 쫘악 모아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때는 그 관심을 바탕으로 정말 한번 더 붙어 볼 수 있는 거지요. 손해배상 청구소송 들어오기를 지금 우리가 오히려 기다리고 있다니까요."

나중에 노동조합 사무실 입구까지 나를 배웅 나온 위원장은 돌아서 가면서도 계속 "손해배상청구소송 꼭 들어와야 하는데... 짜식들이 그거 꼭 해야 하는데... 그러면 미친 척하고 다시 한 번 붙어 보는 건데..."라고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그 노동조합 간부들이 한 명도 해고되거나 구속되지 않고, 회사가 손해배상청구소송도 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엄중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이야기를 여기서부터 출발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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