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진영, 법인세 부유세 집착보다 소득세에 집중해야



조태근 기자

정기국회가 시작되면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감세경쟁에 돌입했다. 경기침체를 명분으로 일단 세금을 깎아 국민의 환심을 사 보려는 데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감세’라는 프레임을 공유한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각기 깎자고 나서는 세금의 구체적인 항목은 상당히 차이가 있다. 한나라당이 기업이 내는 법인세와 종합부동산세 등 부자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세금을 내리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면 민주당은 한시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부가가치세와 소득세 인하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다.

감세 vs 복지의 전통적 프레임

그 동안 진보진영은 보수정당의 ‘감세’ 주장에 대해 감세보다는 복지 확대가 중요하다는 원론적인 입장으로 맞서왔다. 그러나 구체적인 세목들을 어떻게 늘이고, 또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와 주장은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 사실이었다.

이러한 시점에서 그간 복지국가를 연구해 온 정세은(충남대), 이상이(제주대) 교수의 연구결과(도서출판 산책자 『한국 사회와 좌파의 재정립』수록 논문)는 주목할 만하다. 두 연구자는 ‘증세=진보’, ‘감세=보수’라는 일반적인 시각과는 달리 덴마크와 스웨덴 등 북유럽의 복지국가를 모델로 소득세 누진율을 크게 높일 것을 주문하면서, 법인세와 재산세에 대해서는 오히려 현행보다 세율을 낮출 수도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두 연구자는 우선 OECD통계를 인용해 한국이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할 때 GDP규모에 비해 국가재정이 매우 적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한국은 GDP대비 국가재정지출이 30%(이하 2007년 기준)으로 스웨덴(56%), 프랑스(53%) 등은 물론 미국(36.6%), 일본(37.8%)에 비해서도 매우 낮다는 것이다.

이는 이른바 선진화로 가자면 ‘감세 경쟁’이 아니라 ‘증세 경쟁’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통계라고 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대체로 진보진영 내에서 폭넓은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소득세 누진율이 가장 중요

눈에 띄는 것은 두 연구자가 ‘증세’ 필요성을 조세 항목별로 분석한 부분이다.
두 연구자는 건강보험 등 사회보장 분담금을 제외한 조세수입항목을 소득세(개인소득세,법인세 등), 재산세(부동산세 등), 소비세(부가가치세 등)로 나누어 분석한 후, 이 중 선진국들과 한국이 가장 큰 격차를 보이는 부분이 개인소득세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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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국가들의 GDP 대비 조세수입 항목 구성, 2004년 (%) / 도서출판 산책자 『좌파의 재정립』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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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소득세가 총조세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이 13.6%(이하 2004년 OECD)인데 반해 덴마크는 무려 50.7%에 달한다. 그 다음으로 높은 미국이 34.7%이며, 스웨덴은 31.4%를 기록했다. 한국이 복지국가 전략을 추구하자면, 개인소득세 수입을 지금의 3~4배로 대폭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소득이 높은 계층에게 부과되는 최고한계세율도 큰 차이가 난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35%만 세금을 내면 되지만, 미국은 60%, 스웨덴은 55%를 세금을 내고 있다.

'복지국가=선진국'으로 가는 재원이 소득세, 특히 부유층으로부터 징수하는 소득세로부터 나올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인 셈이다.

부가가치세, 법인세 등의 소득재분배 효과는 크지 않아

반면 두 연구자는 그 동안 진보진영이 소득세 인상과 함께 강조해왔던 부가가치세 인하, 법인세 인상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부가가치세의 경우 한국은 총조세수입에서 소비세(주로 부가가치세)의 비중이 36.3%로 OECD 국가들 중 가장 높았다. 그러나 이 비중은 선진국들에서도 높아서 OECD 평균이 32%에 달하며, 복지 선진국인 스웨덴(26%), 덴마크(33%) 등도 높은 편이다. 두 연구자는 이러한 조사결과 위에서 “부가세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던 기존의 진보 측 논리는 큰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법인세 부분도 특기할 만하다.

2004년을 기준으로 한국과 일본의 경우 총조세수입 중에서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12.1%, 16.2%였다. 미국과 영국이 한국보다 낮은 8%이며, ‘놀랍게도’ 북유럽국들의 법인세 비중은 6%대이다. 대표적 복지국가들이 OECD평균보다 오히려 낮은 것이다.

두 연구자들은 “북유럽의 경우, 법인세가 매우 낮은 수준이지만 사회적 평등 지수는 세계적으로 높은 지역이란 점을 감안하면, 개인소득세(개인 소득에 부과)와 달리 법인세(기업소득에 부과)엔 계층간 소득재분배 효과가 크지 않다고 유추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부유세? 글쎄...

민주노동당이 2004년 총선에서 내건 ‘부유세’에 대한 두 연구자들의 평가도 그리 좋지 못하다.

두 연구자는 복지국가라고 해서 반드시 재산세가 높은 것도 아니라면서 복지 후진국인 미국과 영국은 총조세수입에서 재산세의 비중이 12%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으며, 오히려 복지 선진국인 스웨덴과 덴마크는 가장 낮은 수준인 3% 대라는 조사결과를 대비시켰다. 일본과 한국의 재산세 비중은 10~11%로 OECD내에서 그리 낮은 편이 아니었다.

결국 “높은 재산세율이 복지국가의 필요조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두 연구자는 결론적으로 근로소득, 재산에 따른 이자소득, 부동산 등의 이전에 따른 양도소득, 상속 증여소득 등 소득에 대한 세금을 강화하면서 법인세와 재산세에 대해서는 관대한 접근을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두 연구자들의 논문은 사민주의라는 북유럽의 경험을 근간으로 작성되었다는 점에서 한국사회에 곧바로 이식하는 것은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증세 vs 감세’의 ‘불리한’ 논쟁 구도에서 진보진영이 이명박 정부의 공세에 맞설 수 있는 중요한 단초를 제공해 준다.

그 단초는 바로 ‘구체성’이다.

기사입력 : 2008-09-01 16:23:20
최종편집 : 2008-09-01 22: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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