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료 양적 확대 논쟁 격화 조짐


맞춤형 의료와 공익성 병상 확대 대립양상
정부재원 4조3000억 투입 범위도 논란거리
■ 공공보건의료 확대정책 문제는 없나



'막차에 너무 많이 실었다'는 지적이 말해 주듯 임기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공공보건의료 서비스 확충과 의료법 개정, 약제비 적정화 등 굵직한 이슈들을 꺼내 든 것이 참여정부 정책의 패착 요인 중 하나라는 지적이다. 일반적으로 정권 초기에 청사진을 제시하고 임기 내에 이를 정착시키는 것과 달리 정권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공공보건의료 확충 등 중요정책을 들고 나온 것에 대한 문제제기인 셈이다. 특히 정부가 4조3000억원을 투입해 공공보건의료를 확충하기로 하면서 양적 확대 필요성에 대한 논쟁이 격화되는 양상이다.





전문직능과 정부입장 대립 해소가 과제

■ 공공의료 확충 등 핵심 쟁점 뭔가 = 이와 관련해 최근에 눈길을 끄는 두 토론회가 열렸는데 하나는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열린우리당 윤호중 의원이 주최했다.


서울대 김상균 교수(사회복지학)의 사회로 진행된 토론에는 복지부 이영찬 보건의료정책본부장과 김원종 사회서비스혁신사업단장, 그리고 서울대 강신욱·이진석 교수(의료관리학) 등이 참여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또 다른 하나는 건강복지사회를 위한 모임과 의료와 사회포럼 등이 주최한 '공공의료확충 무엇이 문제인가'와 관련한 토론회로 이화여대 의과대 예방의학과 정상혁 교수 등이 정책방향에 대해 깊이 있는 의견을 개진했다.


이 토론회에서 정 교수는 정부가 도시지역 보건지소를 인구 5만 명당 1개소 수준으로 설치해 전국적인 보건소 및 보건지소 네트워크를 형성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이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발상이라는 논리를 폈다.


윤호중 의원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 보건복지부 이영찬 보건의료정책본부장은 이미 정립돼 있는 보건과 의료의 의미를 다시 분리하려는 발상은 동의할 수 없다고 전제하고 국가에서 통합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더 나아가 민간 의료의 시장실패를 조금이라는 보완하는 차원에서 공공의료 확충이 그 대안이 될 것이라며 의미의 구분보다는 어떤 방식으로 국민의 의료비 증가를 제어하는 것이 효율적인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특히 도시 지역 내 보건지소 확충에 반대하는 의견과 관련, 도시지역에도 분명히 저소득층이 존재하고 있고, 도시에 의사가 많아도 유효수요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도시 지역 내 보건지소 확충 등은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리고 시민사회단체의 정책브레인이자, 현 정부에서 보건복지인력개발원장을 지내는 등 보건복지분야에 있어 영향력을 행사해온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 이태수 교수는 공공의료는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이 교수는 국민건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행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끌어올리고 공공의료를 더 확충해야 한다며 현재 64%에 불과한 보장성을 80% 수준으로 올리고 진료비 총액상한제를 실질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흔히 정권 초기에 개혁 청사진을 제시하고 임기내에 이를 정착시키는 일반형태와 달리, 참여정부는 임기 후반에야 보건복지분야에 대한 개혁프로그램을 발동함으로써 실질적인 성과를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반면에 건강복지사회를 위한 모임과 의료와 사회포럼 등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이화여대 의과대 정상혁 교수는 정부가 도시지역 보건지소를 인구 5만 명당 1개소 수준으로 설치해 전국적인 보건소 및 보건지소 네트워크를 형성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이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발상이라는 논리를 폈다.


정 교수는 보건지소는 본인부담금이 낮은 만큼 의료이용이 증가할 경우, 건강보험 재정 지출 총규모가 의원을 이용한 것보다 훨씬 많아져 보험재정에 심각한 위기가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현재 의원급 의료기관의 외래 진료비(재진)는 8140원인데 반해 보건지소의 외래 진료비는 3460원에 불과해, 만약 도시 내 보건지소가 늘어나면 정부가 불공정 시장 환경을 조성해 민간과 공공의료 간 마찰을 일으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도시지역 내 보건지소 기능이 모호하고 진료 기능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으면서 인근 의원의 반발을 고려해 본인부담제 등은 의원과 같이 하겠다는 것은 진료 기능을 생각한 증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례로 정 교수는 현재 지방 사립대병원들이 국립대부속병원에 비해 현저히 낙후돼 가는 현상을 들며, 정부가 공적자금 등을 이용해 건강진단 등 보건예방활동을 하면서 이를 진료와 연계시키면 진료부문에서도 보건지소는 당연히 경쟁력을 우위에 점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 교수는 정부가 최근 공공병원을 전체 의료 비율 중 30%까지 확대하겠다는 방안과 관련해 공공병원을 확충하겠다는 것은 결국 민간의료기관의 진료행태를 적정하게 변화시키려는 의도라며 급성기병상은 이미 공급과잉인데 공공병원을 확충하면 오히려 민간의료기관의 붕괴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내놨다.


특히 민간병원이 영리를 추구하는 것은 공공병원과 달리 자본을 자체 조달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라며 이를 비난하기에 앞서 민간병원이 진료행위에 별 차이가 없음에도 공공병원에만 시설지원을 하는 차별부터 없앨 것이라고 밝혔다.


정 교수는 국공립병원은 대부분 자본투자를 정부가 하고 적자도 정부가 결손 처리해 도산을 방지해주는 반면, 민간병원은 모든 자본투자를 개인이나 법인이 하고 적자가 누적되면 도산 처리돼 병원이 문을 닫고 있다고 주장했다.


공공의료확충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정 교수는 보건지소 등 공공보건기관의 역할도 현재의 직접적인 진료서비스에서 탈피해 공공보건서비스 기획, 협력, 조정, 평가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재편해야 하는 것이 개발도상국형 보건소에서 '선진국형 보건소'기능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도시형 보건소 기능과 모델이 핵심 쟁점
■ 공공의료기관 양적 확대 문제없나 = 정부가 4조3000억원을 투입하는 공공의료 확충계획을 수립했으나 공공의료기관의 양적 확대에 대한 필요성을 인정받기 어려우며 이보다는 현재 공공의료기관의 문제를 해결해 성공 모델을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공익성 병상의 경우 현재 12% 수준을 30%까지 확보하고, 도시형 보건지소의 본격적인 확충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국립의료원을 국립중앙의료원으로 위상을 높이고, 국립정신병원, 국립암센터, 국립재활병원 등에서 시작해 지역거점병원, 도시형 보건지소, 진료소 등으로 연결되는 공공의료 전달체계를 구축할 것을 제안하는 목소리도 높다.


특히 경제부총리에 이어 '사회부총리제' 도입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사회부총리가 복지부장관을 겸함으로써 경제부총리와 함께 중앙정부의 정책균형을 확보하고, 현실적으로 사회정책 예산 배정권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반면 한국개발연구원(KDI) 윤희숙 연구위원은 '공공의료기관 양적 확대의 필요성에 관한 실증적 검토'보고서에서 인구 대비 병상 수를 맞추는 단순한 병상확대 정책보다 맞춤형 의료정책으로 대처를 주장했다.


특히 지금까지 성공적이지 못했던 공공의료기관의 규모와 수를 확대하면 성과도 크게 개선될 것이라는 주장은 공감을 얻기 어렵다고 밝혔다.


윤 연구위원은 입원서비스 이용을 위해 환자들의 생활권 밖으로 이동 여부를 측정한 결과 지역 간 격차가 크지 않다며 지역 간 격차 해소를 위해 정부의 의료 공급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근거가 미약하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민간 의료기관 주도의 의료시스템에서 지역 간 격차가 크다는 문제는 통념일 뿐이라며 전국 시군구 단위 243개 행정구역을 대상으로 지역주민이 해당 구역을 벗어나지 않고 입원진료를 받은 기간의 비중을 조사한 결과 50% 이하인 지역은 전체 243개 행정구역 중 1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출퇴근이나 쇼핑 등 일상생활권 내에서 진료받은 비중의 지역간 격차를 나타낸 지니계수는 0.12로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했을 때의 0.33보다 크게 낮아졌다.


이는 생활권 내 인구이동이 의료기관의 입지에 이미 반영돼 있다는 의미라면서 정책적 배려는 단순한 병상 확대가 아니라 해당 지역에서 필요한 수요를 파악해 맞춤형으로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그는 지적했다.


더욱이 의료비용을 줄이기 위해 공공의료기관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우리나라에서 공공의료기관이 질적으로 뒤쳐질 뿐 아니라 진료 행태 역시 민간기관과 다른 차이가 없다며 정부가 직접 서비스 공급에 나서기보다 재원조달과 성과 모니터에 집중하는 선진국 추세를 참고해야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윤 연구위원은 '공공보건의료 확충 종합대책'은 인구 5만∼30만명 지역을 거점으로 공공병원을 1개씩 운영함으로써 의료서비스의 지역별 격차를 해소하고 과잉진료로 인한 의료비 증가를 견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취약한 환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의료비용의 부담이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지원을 위해서는 의료기관 확대보다 의료보장을 확대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지적했다.


선진국은 정부가 재원조달과 성과 점검은 담당하되, 직접적인 서비스 공급은 지양하는 `재원조달과 공급의 분리'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고 소개했다.


윤 연구위원은 더구나 지금처럼 공공의료기관의 질적 우수성이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규모와 수만 확대하면 민간병원의 퇴출로 이어져 감정적이고 이념적인 대립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공공의료기관이 의료비 억제기능을 수행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지만, 이를 위해서는 우선 현재 질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공공의료기관의 문제점을 개선해 성공모델을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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