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안내] 언론과 보건의료-보건연합주최

보건의료단체연합 3월 열린 강좌

주제 : 언론과 보건의료
강사 : 손석춘 (한겨레 언론매체 부장)
일정 : 3월 7일(목) 오후 8시
장소 : 연합 사무실

손석춘선생님과 관련하여 알고 싶으신 것이 있으시면 아래 사이트를 들어가 보세요.



http://myhome.hananet.net/~skywalker/NewMap/sonsc.htm


악의 제국/ 손석춘


제국주의. 그 말은 대한민국 국민에겐 낯설다. 하물며 `미 제국주의'란 더 말할 나위 없다. 적잖은 독자들이 거부감을 느낄 법하다. 서슬 푸른 친미사대세력은 도끼눈을 흡뜰 성싶다. 하지만 말은 바로 해야 한다. 제국주의든 미 제국주의든 그 말도 이제 시민권을 찾을 때가 되었다.
왜 우리는 제국주의를 마땅히 제국주의라고 비판하지 못했을까. 이 땅의 신문과 방송 때문이다. 이들은 군부독재가 쫓겨간 뒤 사상의 보안관을 자임하고 나섰다. 제국주의라는 말은 금기시했다. 하지만 엄연한 주권국가들을 `악의 축'으로 악패듯 죄어치는 미국의 조지 부시 정권을 보라. 그리고 국어사전을 들춰보라. `막강한 군사적 경제적 힘을 가지고 다른 나라를 억눌러 자기 나라의 이익을 실현하려는 경향.' 제국주의의 사전적 뜻과 부시 정권의 모습이 똑 맞아 떨어지지 않는가.

전쟁불사를 공공연히 선포하는 미국의 `불량한 태도'는 우리 겨레 앞에 먹장구름을 예보한다. 아프간을 초토화한 폭탄들이 텔레비전이 아닌 실제 우리 겨레가 살고 있는 안방에 쏟아질 수 있다. 날뛰는 부시의 광기 탓이다. `우방' 대한민국도 안중에 없다. 대체 이 땅이 뉘 땅인가. 그런데도 생게망게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부시의 불장난을 견제해야 할 섟에 한나라당과 는 거꾸로 기름을 붓는다. 북의 핵무기가 체제방어용이라고 말한 통일부장관을 훌닦는다. 경악했다며 가살피운다. 장관의 자질이 의심스럽단다. 실로 경악스럽다. 한나라당이 제1당이라는 사실이. 실로 의심스럽다. 발행부수 1위 신문의 자질이. 어쩌자는 것인가. 민족이 공멸해도 괜찮다는 것인가.

문제의 심각성은 한 철없는 신문사의 주필에 있지 않다. 조선일보와 늘 언행을 함께하는 이회창 총재의 방미행보도 되새김질해볼 때다. 그는 워싱턴에 내리자마자 작심한듯 `햇볕'을 비난했다. 햇볕으로 국민적 합의가 무너졌고 국민들이 불안해한다며 미국 매파들을 욜량욜량 찾아다녔다.

신문권력과 그에 편승한 원내 1당이 철부지처럼 냉전몰이에 나선 바로 그 순간, 영국의 한 방송사는 고발프로그램을 방영했다. “모두 죽여라.” 미군의 만행으로 이 땅의 어린이도 여성의 몸도 갈기갈기 찢겨졌다. 충북 영동만이 아니었다. 포항 앞의 흰모래와 초록 바다는 핏빛으로 붉게 물들었다. 마산의 민간인들도 집단 학살을 당했다. 달려가는 소녀를 사격해 악몽에 시달리는 한 미군의 증언도 생생하다. 증언은 이어진다. 흉측한 폭탄 파편이 살 곳곳에 박힌 이 땅의 여인들이 줄이어 화면에 나온다. 를 국내 뉴스방송에서 몇 초 동안 `구경'해야 하는 심경은 참담하다. 왜 이 나라 방송은, 왜 이 나라 신문은, 그들의 가슴저린 증언을 담아내지 못했는가. 기자로 살아가는 것이 더없이 참담한 오늘이다. 독자 앞에, 역사 앞에 석고대죄하고 싶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엔 전쟁을 위협하며 대한민국엔 낡은 전투기를 팔겠다는 미 군산복합체의 장삿속이든, 공화당의 검은돈 추문을 벗어날 속셈이든, 곧 이 땅을 밟을 부시에게 겨레의 뜻을 결연히 보여줄 때다. 이회창 총재와 수구언론이 여론을 왜곡한다면, 김대중 대통령이 눈치만 살핀다면, 누가 나서야 할까. 민주·진보세력과 청년이다. 이 땅에서 어떤 불장난도 용납할 수 없다는 겨레의 결기를 부시가 깨닫게 해줘야 한다.

그래서다. 건전한 보수주의자들에게도 정녕 묻고 싶다. 여성과 어린이까지 마구 학살하고 백범암살에 개입하고 그런데도 사과할새로에 진상을 은폐하고 더 나아가 새 전쟁을 꿈꾸는 미국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악의 제국'보다 더 적실한 이름이 있는가. 그 제국주의에 추파를 던지고 용춤추며 나라와 겨레는 결딴나든 말든 제 잇속만 자자손손 챙기겠다는 수구세력에게도 우리 모두 제 이름을 불러줄 때다. 매국매족세력이라고.

손석춘/ 여론매체부장s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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