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되는 질병

  '무시되는 질병'과 수많은 무명 스타들
  
  나는 나중에라도 '시장성'이 입증되어 결국 21세기 최고의 신약 기술이라는 찬사를 받긴 했다. 하지만 나 같은 스타 하나 배출되기 위해서 수많은 무명 약들이 눈물 흘리는 게 또 이 바닥 생리가 되어버린 지 오래라, 별별 사연들이 다 있다. '무시되는 질병(neglected disease)'이라는 말 들어는 봤는지? 질병 사이에도 사농공상에 천출의 씨가 따로 있다는 이야기다.
  

▲ 전세계 의약품 시장의 규모. 미국, 일본, 유럽, 캐나다를 합치면 81%다. 제약회사는 저개발국에서 약을 얼마나 파느냐에 관심이 없다. ⓒ2001년 민중의료연합 여름아카데미 자료집

  전세계 의약품 시장의 규모. 미국, 일본, 유럽, 캐나다를 합치면 81%다. 제약회사는 저개발국에서 약을 얼마나 파느냐에 관심이 없다. (출처 : 2001년 민중의료연합 여름아카데미 자료집) 말라리아, 결핵, 수면병 같은 질병들은 가난한 국가에서 많이 발생해서 치료제에 대한 개발이 거의 이뤄지지 않아. 매년 170만 명 이상이 결핵으로 희생당하고 있는데 지난 25년 동안 결핵 치료제는 오직 세 개만이 개발되었다. 내가 아는 결핵 치료제 녀석 하나는 허구한 날 한숨만 쉬지. 이제 좀 쉬고 싶다고. 수십 년 동안 딸랑 셋이 교대 근무하며 세상 모든 결핵 환자들을 커버하는 게 오죽이나 힘들겠어. 이제 젊은 애들이 나왔으면 싶은 거지. 그런데 얘들 소속사가 아주 악질이야. 걔네들 셈법에 의하면 하나 더 늘릴 때 수지타산이 맞지 않은 거다. 연구해서 젊은 친구 키울 생각이 없는 거야. 결국 지금도 계속 셋이서 교대제로 일하는 중이지.
  
  수단에서 다섯 명에 한 명 꼴로 발병해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수면병 치료제인 DFMO의 이야기는 더 가관이다. 이 녀석은 신데렐라의 전형인데, 좀 우스꽝스러운 신데렐라다. 수면병을 치료하는 DFMO는 1999년에 무대에서 끌려 내려왔어.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약 팔아봤자 살 수 있는 사람이 없거든. 그런데 어느 날부터 유럽 등지에서 이 친구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어 깜짝 놀랐지. 다른 매니저가 데려가 여성의 얼굴에 바르는 제모 크림으로 변신을 시켰더구먼. 그 순간에도 아프리카에서는 DFMO가 없어 수 천 명이 수면병으로 죽고 있었지. 세상에 얼마나 대단한 털이기에 사람 목숨 구하는 약이 털 깎는 동동구리무가 되어버리나.
  
  이런 무시되는 질병들은 전 세계에서 발병하는 질환의 약 10%를 차지하고 있어. 하지만 1975년에서 1999년 사이에 개발된 1,393개의 약물 중 오직 1% 만 이러한 질병을 치료하는 약이다. 그래서 매일 35,000명의 환자들이 이러한 병으로 죽어가고 있지. 물론 그 사이에 털 없애는 약, 털 심는 약, 털 색깔 바꿔주는 약 등등 온갖 털 약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던 거고. 이제 "털보다 생명이다"라는 말이 필요할 것도 같네.
  
  자기가 키웠다는 거짓말
  
  이렇게 구린 사정 다 알지만, 나를 스타로 만들어주겠다는 데 거부하기 힘들더군. 자본주의에 살고 있는 게 죄일 뿐이지. 그래서 그 녀석과 1991년에 계약을 맺은 거다. 계약하면서 자기가 나의 데뷔를 확실하게 받쳐주겠다고 하더라고. 그 때부터 그 녀석 말을 의심했어야 하는데…….
  
  노바티스는 나를 신약후보물질로 선정하기 위해 1993년부터 1998년까지 미국 국립암재단지원을 받은 오레곤 암센터의 과학자들과 연구를 진행했다. 노바티스는 지금도 자기가 나를 키웠네 마네 난리를 떨지만, 이것 보라고! 저 놈은 처음부터 자기 주머니에서 돈을 쓰지 않았던 게야. 미국 국민들의 세금이 나의 데뷔를 위해 쓰인 거지.
  
  이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약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데뷔하기 전인 2000년에 미국 국립보건연구소에서 발표한 자료가 있다. 이 바닥에서 전설의 판매기록으로 유명한 5인조 그룹이 있어. 멤버 이름은 각각 잔탁, 조비락스, 카포텐, 바소텍, 프로작이라고 하는데, 걔네들도 데뷔할 때 소속사에서 제대로 해 준 것은 없다는 거야. 개발 과정에서 투여된 공적 자금 비율이 77%에서 많게는 95%에 이르렀다고 하더라고.
  

▲ 가장 많이 팔린 약 다섯 가지의 개발에 공적 자금이 투입된 비율. 77%에서 많게는 95%에 이른다. ⓒ인권오름

  그런데도 제약회사들이 마치 우리의 유일한 은인인 척 하는 것 보면, 북극에서 에어컨도 팔아버릴 천생 사기꾼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뭐 우리 입장에서는 데뷔를 해서 팬들의 기대와 지지를 배신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데뷔하기 전에 노바티스 같은 녀석들이 뭐라 뭐라 뻥을 쳐대도, 세상에 나를 알리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 눈엣가시쯤은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약회사들은 천생 사기꾼이라는 생각밖에…"

[인권오름] 불운의 스타 글리벡 <1>

기사입력 2008-04-11 오후 12:11:15 프레시안

 

▲ 제약시장이 다루는 질환영역 ⓒ인권오름

그림은 현재 제약기업들이 다루고 있는 건강문제들의 영역을 표시한 것이다.

A영역은 암, 심혈관질환, 정신신경질환과 같이 전 세계적으로 분포하면서 제약기업들이 가장 주요하게 연구하는 질병영역을 의미한다. 비록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에 고루 분포한다고는 하지만, 개발도상국 국민들은 의약품을 살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이들의 필요(need)는 상당부분 제약기업들에 의해 충족되지 못하고 있다.

B는 소위 '무시되는 질환들'의 영역이다. 여기에는 말라리아, 결핵 등이 속하게 되는데, 이 중 제약기업들이 실제로 다루는 부분은 한정적이다. 선진국에서도 어느 정도 유병률이 있다고는 하지만 개발도상국에 훨씬 더 많이 분포하는 질환들이기 때문이다. C는 '가장 무시되는 질환들'이다. 수면병, 샤가스병, 리슈마니아처럼 거의 개발도상국들에만 영향을 미치는 질병영역이고 이에 대한 연구개발은 거의 수행되고 있지 않다. Z는 치료적 목적이라기보다는 상태에 대한 것으로 탈모, 주름, 다이어트, 스트레스나 비행시차증 등의 영역이다. 선진국에 많은 비만약이나 우울증약 하나를 만들어 내면 훨씬 더 많은 돈이 되기 때문에 시장성이 없는 약은 제약회사의 개발목록에서 우선순위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희귀질환자들이나 무시되는 질환들을 가진 환자들은 그것이 제약회사가 "재화를 공급"하는데 있어 부당한 차별이라고 주장하기 보다는 그저 하나라도 만들어 주기만을 목매달고 기다리고 있다. 더구나 그렇게 만들어진 약값에 대해서는 토를 달 엄두도 내지 못한다.

 

질병과 차별, 이제 '법대로' 좀 해보자

[차별금지법안 뜯어보기] 병력(病歷)과 구조적 불평등

기사입력 2007-12-28 오후 7:04:42 프레시안/ 변진옥

 

 

[의학]제약사 ‘후진국病’ 치료약 외면  

  

외항선원 전모씨(53)는 지난해 7월 아프리카에 다녀온 뒤 열대성 질병인 말라리아에 걸렸다. 염산퀴닌 주사를 맞으면 쉽게 낫지만 약품을 전혀찾을 수 없었다. 결국 전씨는 한달만에 숨졌다.
앞으로 말라리아, 결핵, 수면병 등 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발생하는 이른바 저개발국 질병에 걸렸다가는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선진국의 제약회사들이 돈이 안되는 이들 의약품 개발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패트리스 트루일러 등 세계보건기구(WHO) 소속 6명의 연구자들이 의약전문 저널 란셋 최근호(6월22일자)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난 25년간 미 식품의약국(FDA)과 유럽 의약품평가국(EMEA)에 등록된 1393개 신약품 가운데 저개발국 질병용 의약품은 16개(1.1%)에 그쳤다. 16개조차도제약회사들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은 하나도 없고 어떤 형식이든 공공 재원을 얻어 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선진국에서 무시되고 있는 이들 질병은 저개발국에서는 치명적이다. ‘국경없는 의사회’에 따르면 아프리카에서 수면병 감염자는 50만명에 이르고 6000만명이 감염 위험에 처해 있다. 라틴 아메리카 인구의 25%가 수면병의 일종인 샤가스병 병원체가 우글거리는 환경에 살고 있지만 약이 모자라 어린이들만 치료를 받고 있다.

제약회사들은 “수요가 적은데 손해를 감수하고 약을 개발·생산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고 항변한다. 선진국에서는 이들 질병이 거의 사라졌고, 저개발국에 약을 팔더라도 시장이 좁고 구매력이 낮기 때문에 이익을 남길 수 없다는 이유다.

때문에 비만증 치료제 등 선진국형 질병 치료약은 속속 개발되고 있지만 열대질병 개발투자는 거의 중단됐다. 수면병 치료제 생산을 중단하는 대신 원료물질을 여성의 털과다증 치료제 생산에 사용하고 있을 정도.

연구자들은 “이 같은 편중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선진국들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며 의약품 전체 투자액 가운데 1%를 저개발국 질병에 투자하는 방안과 국제비영리단체 구성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동아일보 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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