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그린 VS PBM<BR>“의약품 유통시장을 장악하라”

대형 약국체인 월그린이 전성기를 구가 중이다. 하지만 처방약 우편주문이라는 복병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
미국 최대 약국체인 월그린(Walgreen)은 그야말로 성장의 본보기다. 월그린 주가는 지난 20년 사이 3,000% 이상 상승했다. 103년 전통의 월그린은 2003 회계연도에 동일 매장 매출이 9% 증가했다. 현재 현금 보유액은 10억 달러이고 매장 수는 4,336개. 오는 2010년까지 3,000개 매장을 더 열 계획이다. 그러나 이처럼 행복한 성공 스토리에 찬물을 끼얹는 요소가 있다. 의약품이용관리업체(PBM)가 바로 그것이다.

PBM은 민간 의료보험인 건강관리기구(HMO)와 기업들에 처방약 비용 절감을 둘러싸고 조언한다. 비용 절감 방법 가운데 하나는 당뇨병 치료제나 콜레스테롤 강하제처럼 장기 복용해야 하는 처방약을 환자가 우편으로 수령하게 하는 것이다. 환자가 우편주문을 늘릴수록 소매약국은 매출이 줄어들 수 있다. 지난해 8월 31일 만료된 2003 회계연도에 월그린의 매출 325억 달러 가운데 62%가 처방약에서 비롯됐다.

문제는 그뿐이 아니다. 처방약 우편주문으로 환자들이 월그린 매장을 찾지 않을 경우 매장에 진열된 립스틱이나 비치볼 같은 다른 물건은 팔리지 않는다. 처방전과 무관한 상품은 월그린의 연간 순이익 12억 달러 중 50%나 차지한다. 그렇다고 월그린이 내일 당장 무너질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지난해 월그린의 처방약 매출은 18% 증가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처방약 우편주문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월그린의 CEO 데이비드 버나워(David Bernauer)는 “경쟁이 되는 쪽은 누구든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가을 미국 자동차 노조(UAW)가 계약을 새로 체결하면서 산하 노조원 77만5,000명이 장기 처방약 우편주문으로 돌아섰다. 컨설팅업체 휴잇 앤 어소시에이츠(Hewitt & Associates)가 최근 조사한 결과 조사대상 648개 기업 가운데 절반이 우편주문을 고려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PBM이 어떻게 이처럼 강해졌을까. PBM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다. PBM은 애초 약국 ·위해 클레임 조율에 나섰다. 이어 제약업체와 의약품 가격을 협상하고 기업 ·보험사 건강보험도 설계해주며 우편판매 매장까지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그 과정에서 월그린처럼 약국들로 이뤄진 소매망도 구축했다. 환자들은 PBM의 소매망으로 항생제처럼 당장 필요한 의약품을 구입할 수 있다.

우편주문 가운데 절반 이상을 세 PBM, 즉 익스프레스 스크립츠(Express Scripts) ·메드코 헬스 솔루션스(Medco Health Solutions) ·케어마크(Caremark)가 장악하고 있다. 세 PBM의 매출을 모두 합하면 월그린의 배에 이른다. 이들 PBM 트리오는 우편주문으로 더 많은 이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월그린도 처음에는 보조를 같이했다. 일회성 주문의 경우 PBM들과 공생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월그린은 지난 20년 동안 우편주문 사업을 독자적으로 운영해 왔다. 매출은 10억 달러로 미미하지만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월그린은 95년 자체 PBM인 월그린스 헬스 이니셔티브스(Walgreens Health Initiatives)도 출범시켰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한 가지 있다. 월그린이 PBM 혁명에 가담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반기를 들고 있다는 점이다. 우편주문 사업도 관리하는 월그린스 헬스 이니셔티브스의 그레고리 워슨(Gregory Wasson) 사장은 우편주문은 사실 약을 싸게 사는 방법이 아니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수치는 밝히지 않았지만 “비용에 약간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경제학자 로버트 메이니스와 로욜라대학 법학 교수 제임스 랑겐펠드가 발표한 연구 결과는 워슨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약국들로부터 지원받은 이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약을 한 가지만 살 경우 약국보다 우편주문이 더 쌀지 모르지만 처방약 우편주문의 평균 약값은 약국보다 비싸다. PBM이 일반 의약품보다 훨씬 비싼 브랜드 의약품을 권하기 때문이다. 그 대가로 PBM은 브랜드 의약품 제조업체에서 커미션을 받는다. 실제로 미 법무부는 메드코를 기소했다. 모기업이었던 머크(Merck)가 만든 의약품을 가장 먼저 추천한 혐의 때문이다. 노조 ·주 당국 ·소매업체도 PBM들을 제소하고 있다. 혐의는 약값 과다청구에서부터 반독점법 위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월그린은 기술자와 첨단 기술로 약국에서 파는 의약품 가격을 저렴하게 유지한다. 첨단 기술로 약사에게 어느 처방약부터 조제해야 할지 알려줘 효율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약사의 시간당 임금은 42달러, 기술자는 16달러다.
PBM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케어마크는 지난해 미 회계감사원(GAO)이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를 인용, 우편주문 가격이 브랜드 의약품의 경우 소매가보다 27%, 일반 의약품의 경우 53% 싸다고 지적했다. PBM들을 대변하는 의약품의료관리협회(PCMA)의 마크 메릿(Mark Merritt) 회장은 월그린의 주장이 “어리석고 터무니없는 것”이라며 “미국의 기업과 보험사들 모두 같은 생각”이라고 반박했다.

우편주문 PBM들은 90일분 처방전을 쥐고 있다 약국으로 한꺼번에 주문한다. 월그린은 ‘어드밴티지 90’이라는 프로그램 아래 할인 가격으로 의약품 90일분을 공급한다. 어드밴티지 90은 다소 성공했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어드밴티지 90으로 손해를 본 곳은 우편주문 업체가 아니라 할인을 하지 않는 다른 소매 매장이라는 점이다. 월그린이 대형 PBM들에 강압적인 방법을 쓸 수는 없다. 따라서 월그린은 우회적인 방식으로 그들 업체에 접근하고 있다. PBM들 가운데 처방약의 경우 우편주문을, 일회성 의약품의 경우 약국을 이용하게 하는 업체가 있다.

월그린은 지난해 12월 이들 업체를 블랙리스트에 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환자들이 일회성 처방전을 갖고 오면 보험으로 처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월그린의 계획이 역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응급 처방전으로 페니실린을 구하기 위해 월그린 매장에 갔다 거절당했다고 생각해보라. 버나워는 고객이 보험사에 강력히 항의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면 PBM도 소매업체의 처방약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성난 소비자가 다른 약국으로 발길을 돌릴 가능성이 더 많다.

버나워는 PBM들이 월그린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장담할 수는 없다. 월그린 매장이 미국 전역에 존재하지만 약국은 월그린 말고도 5만 개나 더 있다. 슈퍼마켓 약국도 점차 강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한 PBM은 월그린과 손잡지 않고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월그린 없이 네트워크를 구축한 대형 고객들이 있다는 것이다.

다른 방법이 모두 실패할 경우 규제에 의존할 수 있다. 월그린은 다른 소매업체들과 손잡고 미시간주의 법안을 지지해 왔다. 이 법안은 PBM들이 우편으로 제공하는 90일분 할인 처방약을 소매업체에도 적용하는 방안까지 내놓도록 규정하고 있다. 우편판매의 가격우위를 없애기 위해서다.

미 연방 당국도 구원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노인 4,000만 명에 적용되는 의료보험 메디케어(Medicare)는 지난해 후반 새로운 처방약 혜택안을 도입했다. 메디케어는 노인들의 의약품 우편주문을 의무가 아닌 선택 사항으로 못박을 계획이다. 이에 따라 미 연방공정거래위원회(FTC)는 PBM의 시장지배력 남용 가능성을 조사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5만 개 소매업체의 어깨에 힘이 좀 들어갈 듯하다.




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미시간주의 약사들이 “해도 해도 너무한다”고 아우성쳤다.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미시간주 의회까지 들렸다. 약사들의 불만은 PBM이 소매업체에 양자택일을 강요한다는 점이다. PBM이 제시한 계약안에 따르면 약값을 둘러싸고 소매업체가 우편주문 업체와 경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약국들은 PBM의 부당 행위로 올해 미시간주에서 매출 20억 달러와 일자리 3,000개가 사라질 것이라고 투덜거렸다.

지금 같은 뜨거운 정치 계절에 민감한 사안이 발생한 셈이다. 의원들이 걱정스러운 나머지 ‘고객 처방 보호법’이라는 5개 법안을 일괄 제출했다. 법안은 PBM에 대한 규제와 회계 투명성뿐 아니라 공정 경쟁도 강조하고 있다. 회계 투명성의 경우 PBM은 제약업체로부터 받는 리베이트를 장부에 자세히 기재해야 한다. 미시간과 비슷한 법안을 제출한 주가 20여 개다. 하지만 미시간주는 보험사로 하여금 소매 약국과 우편주문 업체에 비용을 동등하게 배분토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다른 주보다 한 발 앞서고 있다.

소매업계는 법이 시행될 경우 90일분 처방약도 우편주문 업체처럼 싼값에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환자들에게도 큰 이득이 아닐 수 없다. 반면 PBM들은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면 약값이 결국 오르고 보험료도 상승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월그린은 법안을 지지하는 소매업계 ·의학계의 로비에 뒤늦게 동참했다. 지난 2월 월그린의 CEO 데이비드 버나워는 “법안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며 “통과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이 바뀐 듯하다. 월그린의 대변인이 “법안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통과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힌 것이다.



Shar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