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메테우스 칼럼] 한미FTA와 보건의료체계의 미국화

금민 씨가씀




세계교역의 50%는 지역자유무역협정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고, 그 수는 193개이다. 그 중에서 미국을 당사자로 하는 협정은 나프타(NAFTA)를 별도로 할 때 9개이다. 1995년 출범한 다자간 통상질서인 WTO가 난항을 거듭하자 부시 행정부는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인 FTA 체결에 중점을 두어 왔다. 다자간 협상에서는 개발도상국들이 그룹별 대응을 하여 미국의 압력과 요구를 완화시킬 수 있는 반면에 미국과 체결된 대개의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에서는 미국식 스탠더드가 일방적으로 관철되었다. 한국 정부는 미행정부의 무역촉진권한(TPA)이 소멸되는 시점인 2007년 6월 30일까지 FTA협상이 마무리해야 한다는 시간표에 따라 한미FTA를 서둘러 왔다. 여기에서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농민과 공공 서비스 부문 노동자들과는 아무런 토론 과정도 없었다,

향후 한국의 미래를 결정할 중대 사안인 한미FTA에 대한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의 자각도는 매우 낮은 상태이다. 물론 한미FTA에 대한 반대 여론도 여러 형태로 꾸준히 제출되어 왔다. 준비되지 않은 졸속협상이라는 비판, 공론화와 사회적 합의도출을 무시한 진행 등에 대한 비판 등이 있었다. 그러나 반대 여론이 문제 삼는 것은 대외 협상의 방식과 국론 수립과정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협상과정에서 한국 정부에 의해 이미 충족된 예비조건, 양허안 등 협상내용 자체는 과연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한미FTA 협상내용은 수많은 반론에 직면해 있고 협상결과는 폭발적인 사회적 갈등을 야기할 것이다. 아래에서는 한미FTA에 대한 반론들을 살펴보고, 한국 사회의 대다수 구성원들이 한미FTA를 반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혀 볼 것이다.

한미FTA는 ‘경제적 국익’에 위배된다는 반론

FTA라는 틀 자체를 거부하는 입장을 논외로 할 때 대다수의 반론들은 주로 '경제적 국익'에 초점을 맞춘다. 한미FTA는 경향적으로 무역수지적자와 금융투기화를 초래하고 대미 경제적 종속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반론이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나 국제경제연구원의 예측에 근거한 주한 미상공회의소 2005 정책보고서가 반론의 근거로서 주로 인용된다. 거기에 따르자면 한미FTA로 미국의 대한국 수출은 43-54%증가하는 반면 한국의 대미 수출은 21-23% 증가할 것이며, 한국의 수출량 증가폭의 2배 이상 미국의 수출량이 증가하여 FTA 발효 후 4-5년 후에는 현재 한국의 대미무역흑자 규모는 100억 달러에서 적자로 돌아설 것이라고 한다.

'경제적 국익'에 초점을 둔 반론들은 아세안이나 중국 등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는 국가와 우선적으로 FTA협정을 체결한 이후에 강대국과의 무역경기장에 출장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선진국 미국 캐나다와 개도국 멕시코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10년을 분석하면서, 거대경제권과의 FTA는 선진국의 거시경제적 변동에 상당한 취약성을 보일 것이므로 FTA다변화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2004. 11. 연구자료도 기술지수가 94. 9.인 미국과의 FTA는 4.73%의 사회후생 증대효과 있고 산업생산효과는 오히려 -27. 37%라고 보고한다. 반면에 중국의 기술지수는 51. 7로 사회후생효과와 산업생산효과가 각각 22. 99%, 27. 78% 증대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우리나라보다 기술력이 낮은 나라와 우선적으로 FTA를 체결할 것을 조언하고 있다. 여기에 대한 정부의 반론은 미국과의 FTA가 국가 경제의 체질을 강화시킬 것이며 중국이나 일본이 대미 FTA를 체결하지 못하고 한국만이 동북아에서 유일하게 대미 FTA를 체결한 상태는 한국 경제에 유리한 입지를 제공할 것이며, 향후 중국이나 아세안과 FTA협정을 확대해 갈 발판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피해부문의 문제

어떤 경로가 '경제적 국익'에 합당한지에 대해 따지는 것이 이 칼럼의 목적은 아니다. 분명한 점은, 총량으로서 '경제적 국익'을 계량하기도 어렵겠지만 단지 그와 같은 관점에서 한미FTA를 바라보는 것은 한미FTA가 초래할 한국사회 내부 변화에 대한 관심을 가리는 효과를 낳을 것이라는 점이다. 한미FTA가 한국사회에 미칠 충격은 엄밀히 계량하여 예측할 수 없겠지만 농업공황, 영화를 비롯한 문화산업위기, 공공부문의 민영화와 질적 저하 등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이다. 더 중요한 점은 일정한 경제적 효과가 있다 하더라도 그 편익이 배타적으로 4대 재벌에 집중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한미FTA는 가뜩이나 심각한 사회양극화는 한국사회 모든 부문으로 확산시킬 것이다.

그래서 한미FTA에 대한 두 번째 반론은 한미FTA가 사실상의 구조조정이며 산업별, 계층별로 수혜자와 피해자의 대립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점에 주목한다. 한국에서 IMF 이후 몇몇 대기업의 수출 증대가 노동자의 소득증대와 중소기업의 일자리 창출로 연결되는 선순환구조는 파괴되었다. 반면에 여전히 노동자의 90%가 중소기업에 고용되어 있는 상황에서 공공 서비스업의 대대적인 구조조정, 중소기업의 도산은 비정규직을 증가시키고 결국 한국 경제는 '고용 없는 경제성장'을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미국식 스탠다드에 입각한 한미FTA는 한국 사회를 통합이 아니라 해체와 사회 양극화의 벼랑으로 내 몰아갈 것이다.

신문보도에 따르자면, 한미 FTA 체결에 의한 수출 증대로 혜택을 입게 될 기업들이 이 가운데 일부를 피해 분야를 위해 내놓으라는 보수정치권의 요구가 있었고, 이에 대해 재계가 난감해하고 있다고 한다. 설령 대기업이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보수정치권의 문제인식은 한미FTA가 초래할 사회변동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와 같은 방법으로 재원을 조달할 수 있다 할지라도 결코 농업과 서비스 부문, 문화산업 등에 걸쳐 있는 전사회적 조정비용을 충당할 규모가 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한미 FTA가 발생시킬 사회변동은 산업별, 계층별로 수혜부문과 피해부문이 나누어 질 것이라는 문제, 피해부문의 보전문제 이상의 차원을 가진다.

사회복지의 붕괴와 보건의료체계의 미국화

한미FTA가 초래할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공공 서비스 부문의 민영화이고, 미국식 스탠더드가 강제될 경우에 발생할 사회복지 문제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수혜자의 재원을 동원하여 피해 부문을 지원한다는 안이한 발상이 전혀 통할 수 없다. 한미 FTA 서비스 협상에는 ‘시청각서비스 등 문화산업’, ‘의료’, ‘공교육’, ‘상/하수도를 포함한 환경서비스’, ‘에너지서비스’, ‘철도·체신·통신 등의 공공사업’등이 포함된다. 개방과 민영화는 공공서비스 전반의 질적 저하와 비용증가로 이어질 것이고 사회양극화를 확대하고 빈곤계층의 삶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사회복지의 붕괴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될 부문은 보건의료 영역이다. 미국은 그간 한국의 약가정책과 의약품 정보보호 등의 수정을 요구하는 압력을 꾸준히 행사해 왔다. 한미 FTA에서는 보험약가 산정과 약가재평가, 대체조제, 참조가격제 등 다양한 시행제도들에 제동을 걸 것이며, 수입의약품 제한규정이 철폐되고 의약품 허가나 유통 관련 규정 등도 미국의 의도대로 정해질 것이 분명하다. 한미 FTA는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의약품 지적재산권 방어를 강화하여 높은 약가를 매길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고 국내 보험약가에도 영향을 미쳐 국민의 의약품비용 지출이 증가될 것이다. 이와 같은 예측은 이미 미호주 FTA에서 드러난 결과이다. 한미 FTA는 한국이 독자적인 약가정책을 전개할 수 없게 만들 것이다. 민중의 의약품 접근권이 크게 후퇴할 것이며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국내 제약시장을 장악하게 된다. 정부 관료조차도 2010년이 되면 국내 제약시장의 70%를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약가와 지적재산권을 둘러싼 이와 같은 상황전개가 한미 FTA가 한국의 보건의료체계에 미칠 한 측면이라면, 다른 한 측면은 의료보험에 대한 투자의 자유화, 의료시장 개방, 곧 영리의료기관의 허용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공공 의료보험의 무력화, 의료보험의 주도권이 시장에 넘어가게 되는 상황은 의료상업화와 전반적으로 맞물리면서 가뜩이나 심각한 상태에 처해 있는 의료서비스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며, 막대한 의료비를 대다수 국민들이 부담해야 하게 될 상황이 초래될 것이다. 결국 한미 FTA를 통해 의료비 급증과 공공 보건의료 체계의 악화와 위축이라는 악순환을 겪게 되며, 이를 통해 보건의료 부분의 공공성과 형평성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될 것이며 민중의 보건의료 접근성은 극단적으로 악화될 것이다. 한미 FTA는 의약품 시장, 의료시장을 미국에 내어주는 것뿐만 아니라 보건의료 체계 자체를 미국화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매우 간명해진다. 한국은 과연 GDP의 15%라는 막대한 의료비를 쓰면서도 4.800 만 명이 아무런 의료보험이 없고, 개인파산의 절반이 의료비 때문인 시장만능주의적 미국식 의료제도를 채택할 것을 강요받아야 하는가?

한미FTA와 한반도 정치

경제관계의 심화는 군사정치적 동맹의 항구화를 위한 전제 조건이다. 양자간 FTA가 군사정치적 지정학적 요인에 의해 추진된 가장 전형적인 경우는 미-요르단 FTA이다. 한미FTA에도 마찬가지로 군사적, 지정학적 요소가 작용하고 있다. 한미FTA에 대한 많은 반대 여론은 한미FTA를 전략유연성 협상과의 연관 속에서 바라보며 군사적 지정학적 대미종속의 항구화 문제를 비판한다. 미국은 한미FTA를 통해 한미일 공조체제를 형성하여 중국을 견제하고 동북아 패권 유지에 유리한 입지를 점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미국이 한국에 넘겨 줄 대가가 일부의 분석처럼 북핵문제의 해결, 제2차 남북정상회담의 개최, 북한에 대한 경제봉쇄의 해제라면 한미FTA는 좀 더 많은 복잡한 층위를 가지게 된다. 현재의 대북봉쇄와 긴장고조를 염두에 둔다면 한국은 많은 것을 얻는 듯하다. 그러나 한미FTA와 전략유연성 협상을 통해 한국이 미국의 동북아 전략의 ‘말뚝 국가’로 고착 되고, 향후 미중 대립이 격화되는 상황이 전개된다면, 설령 북핵문제가 해결되더라도 한반도 및 동북아의 평화체제의 수립은 요원한 목표가 된다. 아울러 설사 북미 수교 등을 포함한 완전타결에 의한 동북아 평화체제의 수립이 한미FTA와의 교환조건이 된다 하더라도 한국의 보건의료 체계를 미국화하고 사회복지 부분에서 삶의 질을 결정적으로 후퇴시킬 내용이 한미FTA에 포함되어서는 절대 안 될 것이다.

한미FTA, 왜 반대해야 하는가?

한미FTA 반대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로부터 초래될 사회변동 문제이며, 사회양극화, 생태환경 문제, 교육부문의 기회균등 원칙의 파괴, 보건의료 체계의 시장화 등이 예측된다. 물론 여기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문제는 보건의료 체계의 미국화 문제이다. 국민의 건강권 보장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보건의료 문제를 중심으로 하는 한미FTA 반대운동은 분명 다른 부문의 문제와는 달리 몇몇 의료자본을 제외한다면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건강세상네트워크,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등, 이미 한미FTA 반대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보건의료 단체들은 보다 적극적인 대국민 홍보활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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