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광고의 폐혜

한국인의 두통약 '게보린'의 정체는…

[안종주의 '위험사회'] 약 위험 불감증에 걸린 한국 사회

기사입력 2010-08-24 오전 9:36:48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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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약을 좋아한다. 오랜 옛날부터 '약'하면 보약을 떠올린다. 우리나라 사람치고 보약 한 첩 먹어보지 않은 사람을 보기 힘들 정도다. 요즘 10대, 20대는 보약 먹는 것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여전히 자녀에게 보약을 먹이는 30~40대 학부모들이 많다.

물론 보약의 개념은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 키 크게 해준다는 약, 머리를 좋게 해준다는 약, 살을 빼준다는 약 등등. 약의 종류도 많고 한약과 양약을 가리지 않고 먹는다. 과거 한약은 주로 몸이 허약한 사람이나 마른 사람들이 살찌기 위해 먹었다면 요즘은 거꾸로 어린이들 몸이 뚱뚱해 살을 빼기 위해 한약을 먹인다.

한국인만큼 약을 좋아하는 국민도 찾아보기 어렵다. 유럽 선진국 국민은 병이 났을 때 의사로부터 대개 2~3알 정도의 약을 처방받아 복용한다. 반면 한국인은 평균 5~6알 정도의 약을 받아 복용한다. 심지어는 약을 적게 주거나 처방해주지 않는 의사는 실력 없는 의사로 소문나고 그런 곳에는 환자가 두 번 다시 들르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거의 모든 처방에 신경 안정제나 위 보호제, 소화제 등이 들어간다. 서양인은 일반 감기에 걸리면 안정을 취하면서 물을 충분히 마시고 집안 습도를 잘 조절해주고 영양 섭취에 신경을 쓰는 것으로 대처한다. 하지만 한국인은 병원을 찾아가 주사 한 방 맞고, 이런 저런 성분의 약을 몇 알 씩 처방 받아 4~5일, 길게는 열흘씩 병원과 약국을 오간다. 링거액이나 알부민을 투여 받는 경우도 있다. 이런 잘못된 처방에 대해 의사는 환자 탓, 환자는 의사 탓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약 위험 불감증에 걸린 사회이다.

한국인들이 가장 즐겨 먹는 약 가운데 하나가 진통제(두통약)와 소화제일 것이다. 과식했다 싶으면 소화제를 찾고 머리가 좀 아프다 싶으면 두통약을 찾는다. 적절히 심신을 안정시키고 약간의 운동을 하면 좋으련만 움직이기 싫고 쉽게 상황을 벗어나려 약에 의존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제약 회사들의 대대적인 광고도 한몫하고 있다. 수십 년간 유명 연예인 등을 내세워 '펜잘' '게보린' '사리돈'을 텔레비전신문 등 대중매체를 통해 외쳐대니 소비자들은 그 부작용을 생각하지 않는다. 너무나 익숙한 약 이름에 약국에 들어서자마자 자기도 모르게 바로 "〇〇 주세요"라고 말한다.

약은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만 사용해야 한다. 약은 독이기 때문이다. 독은 양이다(poison is quantity)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고 한꺼번에 많이 먹거나 장기 복용하게 되면 몸에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음료수처럼 사마시는 박카스와 같은 자양강장제도 한꺼번에 여러 병을 마시거나 하루에 여러 병을 마시게 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운 등의 부작용을 경험하게 된다. 술도 한두 잔은 때에 따라 보약이 될 수도 있지만 많이 마시면 건강을 해치고 심한 경우 생명까지 앗아가지 않는가.

최근 필자의 귀를 의심케 하는 뉴스를 접했다. 학생들이 공부하기 싫어 조퇴하거나 등교하지 않기 위해 진통제인 '게보린'을 과량 복용하는 일이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원조는 누구이고 언제부터인지는 알 길이 없다. 아마 이 약을 과량 복용한 학생이 그 부작용으로 몸에 이상이 생겨 실제로 학교를 못나오거나 수업 도중 부작용이 심하게 나타나 조퇴한 것이 이곳저곳으로 퍼지고 마침내 확산 속도가 빠른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퍼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게보린을 과량 복용할 경우 소화관 내 출혈, 급성 간부전 등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식품의약품안전청은 경고했다. 소화관 내에서 과다 출혈이 발생할 경우 피를 토하게 될 수 있고 짧은 시간에 많은 출혈이 있으면 오래 서 있으면 저혈압·어지러움·메스꺼움·식은땀 등이 동반되기도 한다.

"두통, 치통, 생리통에 게보린" "한국인의 두통약" "두통엔 게보린"이라는 문구광고 카피를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청소년도 이런 광고에 무방비로 노출돼 왔다. 김동현, 김영란, 송재호, 강남길, 하희라, 임현식, 박원숙, 이경실, 클론, 서경석 등 대중과 친숙한 스타들이 1980년대부터 줄지어 게보린 광고 주인공으로 나왔다.

청소년들은 너무나 잘 아는 스타들이 귀에 못이 막히도록 외치는 약 이름이어서 과량 복용해도 잠시 학교를 쉬거나 수업에 빠질 수 있는 정도로만 생각하지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으리라는 것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으리라.

제약 회사마다 효자 품목이 있다. 그 품목이 그 회사의 살아 있는 역사나 다름없는 품목도 있다. 동아제약의 박카스에 해당하는 것이 삼진제약의 게보린이다. 1977년 게보나라는 이름으로 나와 1979년 게보린으로 이름을 바꾼 뒤 30여 년간 한국인의 대표적인 진통해열제로 자리매김했다.

1982년부터 TV 광고를 했다. 게보린을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1996년부터 6년 연속 한국능률협회가 선정한 진통제 부문 브랜드 파워 1위를 차지했다. 2001년에는 연간 매출 100억 원을 돌파했다. 삼진제약에서 게보린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해열진통제에는 아세트아미노펜을 단독으로 사용한 단일 제제인 타이레놀과 아세트아미노펜, 이소프로필안티피린, 그리고 무수(無水) 카페인을 일정 비율로 배합한 복합 제제인 게보린, 사리돈 에이 등이 있으며 아세틸살리신산 성분의 아스피린, 이부프로펜, 덱시부프로펜 성분의 해열소염진통제 등이 있다. 게보린과 같은 약은 사리돈에이를 비롯해 10여 제품이 있다. 그런데도 마치 게보린만 문제인 것처럼 부각된 것은 그만큼 게보린이 제품 선전 광고 카피처럼 '한국인의 두통약'처럼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 등 여러 선진국에서는 해열진통제 성분 가운데 이소프로필안티피린은 부작용이 심하다는 판단에 따라 이들 성분의 해열진통제는 판매금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8년에 이소프로필안티피린의 부작용 문제를 '건강 사회를 위한 약사회'가 줄기차게 제기한 이후 해마다 안전성 논란을 빚고 있다.

2008년 당시 종근당은 이소프로필안티피린이 문제가 되자 자사 해열진통제 제품인 펜잘에서 발 빠르게 이 성분을 뺀 펜잘큐를 제조·시판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중앙약사심의위원회 자문 결과를 토대로 이소프로필안티피린 함유 의약품의 효능·효과를 '진통 및 해열시 단기 치료'로 제한하고, 15세 미만 소아는 투여를 금지시켰으며, 수회(5∼6회) 복용해도 나아지지 않으면 복용을 중지하고 의사 또는 약사와 상의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런 조치는 15세 미만인 중학생들이 이를 오남용하는 사건들이 불거지면서 아무런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돼버렸다.

학생들의 게보린 오남용 사건을 보면서 게보린 또는 이소프로필안티피린 제제에만 비난의 화살을 돌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성분의 해열진통제도 정도 차이만 있을 뿐 부작용이 있으며 특히 과량 사용할 경우 그 정도가 심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해열진통제뿐만 아니라 모든 약은 부작용을 지니고 있다고 보는 것이 약화를 막는 좋은 자세이다.

몇 십 년씩 별 탈 없이 잘 사용하던 약도 뒤늦게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는 부작용이 뒤늦게 나타나 빚어진 경우도 있지만 그 동안 부작용 사례를 쉬쉬하거나 체계적으로 수집해 분석하지 않은 때문일 수도 있다.

▲ 1962년 태어난 탈리도마이드 기형아의 모습. 오른 팔이 거의 없고 다리는 발가락이 붙은 모습이다. ⓒwikipedia.org

약화 사고의 대명사는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 기형아 사건이다. 1953년 서독에서 입덧 방지약으로 만들어져 그뤼네탈이 1957년 8월1일부터 판매하기 시작했다. 각종 동물 실험에서 부작용이 거의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부작용 없는 기적의 약'으로 선전되었다. 처음에는 독일영국에서 주로 사용하다가 곧 50여 개 나라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60년부터 1961년 사이에 이 약을 복용한 임신부들이 팔과 다리 등이 없는 기형아를 출산하면서, 그 위험성이 드러나 판매가 중지되었다. 탈리도마이드에 의한 기형아 출산은 전 세계 46개국에서 1만 명이 넘었으며, 특히 유럽에서만 8000명이 넘었다. 미국에서는 단 17명밖에 생기지 않았는데, 판매 회사와 FDA 간 부작용 논쟁 때문에 시판이 미뤄졌기 때문이다. 탈리도마이드는 가장 비극적인 의약품 부작용 사례로 기록되었다.

우리 사회는 아직 이런 대형 약화 사고를 경험하지 않은 탓인지 약의 무서움을 잘 모르고 있다. 청소년 게보린 오남용 사건이 그 방증이다. 물론 이번 사건을 청소년들의 철없고 무분별한 짓의 탓으로 돌릴 수도 있다. 삼진제약이 이런 자세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태도로만 이번 사태에 대응하려 한다면 이는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의 원칙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것이다.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그 가운데에서도 위기 커뮤니케이션 때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위기를 잠재울 수도 있고 위험을 확산시킬 수도 있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식품 회사나 제약 회사가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일부 학부모들은 청소년 사이에 게보린 과다 복용 조퇴법이 이미 널리 펴졌는데 지금까지 회사와 정부는 무엇을 했느냐고 질타한다. 게보린을 자주 복용하는 어떤 소비자는 약 복용 후 종종 메스꺼움을 느꼈는데 이렇게 유명한 약에 위험성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고 불만을 드러낸다.

이런 불만과 비난이 모이고 모이면 위기가 될 수 있다. 제약 회사에게는 소비자의 신뢰가 중요하다. 돈만 안다거나 부작용을 숨기려 든다고 소비자들이 생각하는 순간 그 제약 회사가 제조·판매하는 약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이어진다. 효과적인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원칙이 여럿 있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청중, 즉 소비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건은 단지 제약 회사의 위기 또는 불신에 머물지 않고 의약품 제조·판매를 허가하고 부작용을 감시·관리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까지 불똥이 튈 수 있는 성격을 띠고 있다. 미국 등 일부 선진국에서는 게보린과 같은 약은 오래 전부터 판매 금지를 시켰다는 데 왜 우리는 아직 시판을 허용해주고 있느냐고 비판할 수 있다.

자칫 하면 혹시 제약 회사와 식약청 간 뒷거래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 제기까지 나올 수도 있다. 이런 오해를 막기 위해서는 해열진통제뿐만 아니라 앞으로 모든 약에 대해 함부로 먹지 말도록 하는 대대적인 공익광고를 벌여야 한다. 또 왜 지금까지 우리는 게보린과 같은 진통해열제를 시판하도록 허용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국민의 눈높이에서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기회에 제약 회사는 물론이거니와 식약청으로서도 어디까지 약 광고를 허용할 것이며 약의 부작용에 대해 언제,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청소년 때부터 약물의 오남용이 가져오는 심각성을 체계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해열진통제뿐만 아니라 항생제, 스테로이드제제, 비만 치료제 등에 대해서. 그리고 전문 의약품뿐만 아니라 일반 의약품도 오남용할 경우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전 국민 약 덜먹기 운동을 벌여야 한다.

의사들은 불필요한 약 처방 안하기 운동을 벌여야 한다. 약사들은 소비자들이 약을 오남용하지 않도록 복약지도 철저히 하기 운동을 벌여야 한다. 청소년 게보린 오남용 사건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는 지름길은 바로 이런 일들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목표는 약 좋아하는 한국인, 한국 사회라는 오명을 씻고 꼭 필요할 때 필요한 양만큼만 약을 복용해 약화 위험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안종주 리스크 커뮤니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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