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약의 藥자지껄 #2
아이에게 처방약을 안전하게 먹이는 9가지 규칙!
아픈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가 약을 지어본 경험을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보셨을 겁니다. 약 봉투 속에는 대부분 시럽과 가루약이 들어있지요. 그렇다면 이 약은 과연 어떤 약들일까요?
아이들만을 위하여 만들어진, 아이들에게 잘 맞는 약이 따로 있을 거라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그런 경우는 사실 그리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 어른 약을 부수고 쪼개고 나누어 아이약을 조제합니다. 문제는 모든 약물학 책에서 강조하고 있듯이 ‘아이는 어른의 축소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약을 분해시키고, 흡수시키고, 배출하는 기관들이 아직 성숙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아이에게 약을 먹일 때에는 훨씬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처럼 아이약은 기본적으로 위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여기에 한 가지 위험이 더 덧붙여지지요. 바로 다제 처방입니다. 감기약을 예로 들어봅시다. 병원에 가면 항생제, 콧물약, 기침약, 해열제, 소화제, 정장제까지 이것 저것 섞어서 처방을 하지요? 이처럼 여러 종류의 약을 한꺼번에 처방을 하는 것을 다제처방이라고 합니다.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다제 처방 비율이 매우 높습니다. 특히 이 약, 저 약 한꺼번에 섞고 부숴서 조제해 주는 나라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기가 힘든 모습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한국에서 아이에게 약을 먹이는 것. 조금 더 신경쓰고,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겠지요? 그래서 건약에서는 아이에게 약을 먹일 때 최소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9가지 규칙을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1. 약이 꼭 필요한 경우인지 먼저 확인하세요!
어린이에게 가장 많이 먹이는 약은 감기약입니다. 콧물이 약간 흐르고, 기침을 시작하고, 열이 오르기 시작하면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아이 손을 잡고 병원으로 달려갑니다. 하지만 이미 2008년 미국 식품의약국은 2세 미만 어린이에게 감기약 사용을 금지시켰습니다. 캐나다와 영국은 2009년 6세 미만 어린이에게 감기약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지침을 발표합니다. 감기약이 어린이에게 별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목숨을 위협할 수 있는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12세 미만 어린이에게도 똑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아직까지 조사 중에 있습니다. 아이가 감기에 걸렸을 때 가장 좋은 약은 충분한 휴식과 수분 보충이라는 것은 세계보건기구에서도 인정한 진실입니다.
소아기와 청소년기에 가장 일반적으로 진단되는 정신과적 장애인 ADHD (주의력 결핍 과다행동장애)도 좋은 예입니다. ADHD는 그 원인이나 진단법이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치료 약물로는 뇌 속의 도파민 농도를 조절하는 메칠페니데이트 제제 (얀센의 콘서타 등)와 노르에피네프린을 조절하는 아토목세틴 (릴리의 스트라테라)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약물들은 심각한 심혈관, 간 질환을 일으키거나 성장 지체, 자살 충동 등의 부작용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아이가 주의력이 떨어지고 충동적으로 행동할 때는 우선 약을 복용시키기 보다는 상담 등의 비약물 치료부터 시작하라고 권유하고 있습니다. 약물 치료는 가장 쉬워 보이지만, 가장 위험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이를 위해서 약을 먹이는 많은 경우가 오히려 아이에게 해가 될 수 있습니다. 정말 내 아이에게 지금 당장 약이 꼭 필요한 것인지 한 번 더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2. 약을 사용해야 할 경우에는 낮은 용량부터 시도하세요!
약을 더 많이, 더 자주 먹는다고 해서 병이 더 빨리 낫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부작용 위험이 높아질 뿐이지요. 대부분의 약물 부작용은 용량 때문에 발생합니다. 정량을 초과하는 양은 독으로 작용할 뿐입니다. 특히 어린아이는 체중이 작고 내부 장기가 덜 성숙되어 있으므로 최소 용량부터 시도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예를 들어, 일정 범위 내의 용량으로 처방된 경우 우선 최소 용량부터 시작하세요. (예, 3-6ml 1일 3-4회로 처방되었을 때 3ml, 1일 3회부터 시작)
3. 되도록 원 포장으로 처방해 달라고 요청하세요!
어린이 약 중에는 시럽제가 많지요. 처방을 받아 약국에 가면 30㎖, 60㎖, 100㎖ 등의 시럽병에 약을 받아오게 됩니다. 대부분 약국에 들어오는 시럽제들은 1ℓ, 1.8ℓ 정도의 큰 병에 들어있기 때문에 덜어서 조제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 이물질 혼합, 개봉 후 변질 우려 등 위생이나 안전에 문제가 생기기 쉬워집니다. 따라서 요즘에는 소량 포장된 약들을 생산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병원에서 처방을 받으실 때 원 포장으로 처방해 달라고 요구하세요. 물론 환자들의 이런 요구를 받아들여 제약사에서도 더 다양한 소포장 생산을 해야 하겠지요.
4. 정확한 용량을 먹이세요!
종종 약국에서 아이에게 약을 먹이는 부모님들을 보면 약을 대충 가늠하여 한 스푼, 두 스푼 먹이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아이들은 몸무게가 작고 약물을 대사시키는 기관들이 덜 성숙한 상태이므로 아주 작은 용량 차이가 큰 부작용을 불러 일으킬 수 있습니다. 약국에 계량컵이나 계량 스푼을 달라고 요구하셔서 정확한 용량을 먹이도록 하세요.
5. 여분으로 받은 시럽병/계량스푼을 세척해서 사용하세요!
계량 컵이나 계량 스푼, 시럽병 등은 깨끗이 세척해서 사용하세요.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이런 제품이나 제품을 생산하는 곳에 대한 위생 검사나 관리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병원이나 약국에서 시럽병 등을 세척해서 제공하지도 않습니다. 당연히 먼지나 이물질이 묻어있을 확률이 높지요. 반드시 깨끗이 세척한 후 사용하도록 하세요.
6. 미리 약을 섞지 마세요!
가루약과 시럽약을 미리 섞어 달라고 요구하는 부모님들이 많습니다. ‘어차피 한꺼번에 먹일건데 미리 섞어두면 뭐 어때’ 라고 생각하시는 거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약은 화학약품입니다. 미리 섞었을 경우 어떤 화학 반응이 일어날지, 이것이 약의 효과나 안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릅니다. 약은 되도록 성분별로 따로 따로 받아가서 먹이기 직전 혼합하는 것이 그나마 가장 안전한 방법입니다.
7. 보관장소를 엄수하세요!
모든 약을 냉장고에 보관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일부 항생제의 경우 반드시 냉장고에 보관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약은 그늘진 실온에 보관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냉장고에 보관하면 습기가 차고, 효과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별히 보관장소나 방법에 대한 주의 설명을 듣지 않은 경우에는 그늘진 실온에 보관하세요.
8. 복용이 끝난 약은 버리세요!
조제한 약을 끝까지 다 먹지 않고 남는 경우가 많이 있지요. 그런 경우 보관해두었다가 나중에 비슷한 증세가 생겼을 때 다시 먹이곤 합니다. 하지만 그때 그때 증세에 맞춰 조제된 약이기 때문에 괜히 필요없는 약을 더 먹이거나 정작 필요한 약은 덜 먹일 우려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위에서 언급했듯이 대부분의 어린이 약들은 여러 가지 약을 혼합해서 조제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 그 안전성을 확신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복용이 끝난 약은 미련없이 버리시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입니다.
9. 약을 버릴 때는 약국을 이용하세요!
쓰고 남은 약을 일반쓰레기통이나 하수구, 변기에 버리곤 합니다. 이처럼 아무렇게나 버려진 약들은 환경오염을 일으킵니다. 2008년 대한약사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구리하수처리장 및 반포대교 남단 등 한강 6곳에서 항생제 등 11개 의약품 성분이 다량으로 검출되었다고 합니다. 실제 내가 항생제를 처방받아 먹지 않아도 식수원을 통해 먹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고 만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폐의약품은 가까운 약국으로 가져다 주세요.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2011. 0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