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약의 藥자지껄 #1
‘건약의 藥자지껄’을 시작합니다.
건약이 알리고 싶고, 그리고 누구나 알았으면 싶은, 그런 약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려고 합니다. 좋은 약, 나쁜 약, 우스운 약, 불쌍한 약, 억울한 약 등등 약은 스스로의 역사와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약의 역사와 이야기는 우리에게 어떤 약이 위험한지, 안전한지 알아볼 수 있도록 합니다. 하지만 종종 이런 이야기들은 숨기고 감춰집니다.
안전한 약을 먹기 위한 우리의 노력, 건약의 藥자지껄이 시작합니다!
1. 게보린, 그대가 ‘유럽인의 두통약’이었더라면?
유럽연합 의약청은(EMEA)은 작년 10월 ‘다본’(Dextropropoxyphene)이라는 진통제를 유럽 시장에서 철수시키기로 결정했다. 다른 진통제보다 월등한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과량 복용에 의한 부작용은 심각했기 때문이다.
이어서 뉴질랜드도 올해 3월 이 약물에 사망선고를 내렸다. 사실 뉴질랜드 당국은 2006년 이 약의 부작용을 고려하여 약 사용에 제한을 두었다. 하지만 문제는 끝나지 않고 계속되었다. 물론 누구나 상상할 수 있듯이, 다본은 뉴질랜드에 있는 유일한 진통제는 아니다. 대체할 수 있는 진통제는 세상에 널리고 널려있다. 딴 약도 많은데 굳이 위험한 약을 먹을 필요가 있나? 뉴질랜드 정부는 이 원칙에 근거, 다본을 퇴출시킨다.
다본은 한국에는 없는 약이다. 다행이다. 하지만 문득 한 진통제가 떠오른다. 한국의 다본, 하지만 다본과는 전혀 다른 운명의 길을 가고 있는 약, 바로 게보린이다. 게보린은 2년 전 치명적인 혈액 질환과 의식장애, 혼수 등의 부작용으로 인해 퇴출 논란을 겪었다. 하지만 식약청은 15세 미만 사용 금지, 장기간 사용 금지를 조건으로 게보린을 살려두었다.
최근 청소년들이 학교에 빠지기 위해 게보린을 과량 복용한다는 뉴스 보도가 잇따랐다. 뿐인가? 부작용을 호소하는 소비자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식약청은 홈페이지를 통해 ‘과량 복용하지 않도록 주의’해 달라는 보도자료를 한 장 달랑 배포하였다.
위험 논란이 계속되는데도 식약청이 게보린을 살려두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한국에 진통제는 게보린 뿐이라서? 혹은 회사의 선전처럼 ‘한국인의 두통약’이기 때문?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게보린, 그대가 ‘유럽인의 두통약’이었더라면? 그래도 그대는 살아있을 것인가?
2. 피해자는 있으나 가해자는 없는 마일로타그.
2000년 5월 와이어스(현재 화이자)의 마일로타그라는 급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가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은 신속허가심사를 통해 60세 이상의 재발성 급성골수성백혈병 환자들에게 이 약의 사용을 허가하였다.
국내에서도 이 약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약이 모든 연령 환자들에게 효과가 있으며 부작용 또한 매우 경미하다는 임상 결과가 속속들이 나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일부 병원에서는 식약청 허가 사항을 훌쩍 넘어 처방을 날려댔다. 심지어 어린아이에게 이 약을 투여하기도 하였다. 이것이 속칭 ‘임의비급여’이다.
마일로타그는 그 비싼 약값으로도 유명하다. 일반 성인 환자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일회 주사 비용은 천만원에 육박한다. 보험 급여가 되지 않는 이 약을 투여받기 위해서는 천 만원을 바리바리 싸 짊어지고 병원에 가야한다. 혹은, 한도가 높은 신용카드 한 장 정도?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돈 가방도 신용카드도 무용지물이다. 이 약은 2010년 6월자로 퇴출되었다.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사망률도 높았기 때문이다.
와이어스(현재 화이자)는 2004년 마일로타그 임상시험을 시작했다. 하지만 여러 부작용과 효과 미비로 조기에 임상시험은 종료되었다. 그리고 결국 퇴출되었다. 여기서 질문 두 가지를 던진다.
매번 천 만원씩 환자들에게 받아가며 위험하고도 쓸모없는 약을 판매했던 책임을 그대, 화이자는 어떻게 질 것인가? 그리고 임의비급여라는 불법 냄새 솔솔 풍기는 이름으로 마일로타그의 사용 확대를 외쳐대던 전문가들, 당신들은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
2010년 8월 24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