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슈, '타미플루' 딜레마 '나 어떡해' --약업


독점발매권 포기 종용 국제적 압력 직면

'로슈社가 앞으로 10년 동안 공장을 풀가동해 '타미플루'를 생산하고 비축해 두더라도 세계인구의 20%만이 이 약물을 투여받는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 인플루엔자 프로그램을 총괄하고 있는 클라우스 슈퇴르 박사가 6일 미국 캘리포니아州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미국 전염병학회 연례 학술회의 석상에서 언급한 말이다.

유일한 조류독감 치료제로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는 항바이러스제 '타미플루'(오셀타미비르)와 관련, 독점발매권을 보유한 로슈社가 국제적인 압력에 직면하고 있다. '타미플루'의 제네릭 제형 생산을 허락해 주도록 요구받고 있는 것.

그렇다면 마치 지난 1990년대에 AIDS 치료제 메이커들이나 2001년 탄저균 포자가 미국 의회와 일부 언론인들에게 배달되었을 당시 바이엘社가 겪었던 일을 로슈측이 똑같이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2001년 당시 바이엘은 생화학 테러에 대한 대비태세 확립을 지원하기 위해 항생제 '씨프로'(씨프로플록사신)를 절반 가격에 공급했었다.

국제연합(UN)의 코피 아난 사무총장과 각국 보건당국의 최고위급 관계자들은 한목소리로 '조류독감이 창궐할 경우 수 백만명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백척간두의 상황에서 1개 제약사가 생산한 제품의 효능과 생산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로슈측에 지적재산권의 포기를 종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UN의 아난 총장의 언급은 지난 6일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WHO 본부를 방문하던 기간 중 나온 것이어서 국제적인 이목을 집중시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타이완 질병관리센터(CDC)의 쿠오 추성 소장도 '로슈가 보유한 지적재산권과 타이완의 국가안위는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며 로슈측에 결단을 촉구했다. 그는 심지어 '타이완 과학자들은 이미 '타미플루'의 생산법을 파악하고 있는 만큼 허락만 떨어지면 2~3개월 이내에 제네릭 제형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장담하면서 '현재의 위기상황에서 WHO가 로슈측에 독점권 포기를 강권하지 않고 있는 것이 오히려 유감스럽다'고 피력했다.

쿠오 소장은 또 11일 가진 한 인터뷰에서는 '로슈측이 '타미플루' 생산의 난이도를 과장하고 있다'며 타이완이 '타미플루'를 신속하게 대량생산할 수 있을 것임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로슈측과 외부의 일부 전문가들은 제네릭 메이커들이 '타미플루'의 제네릭 제형을 신속하게 생산하고 공급할 수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타미플루'의 생산공정이 워낙 복잡한 데다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

WHO의 슈퇴르 박사도 '제네릭 메이커들이 '타미플루'를 카피하는데 성공하려면 최소한 2년 정도의 시일이 소요될 것'이라며 공감을 표시했다.

최근의 움직임과 관련, 로슈측은 10일 발표문을 내놓고 '타미플루'의 제네릭 제형 개발이 녹록치 않을 것임을 재차 시사했다. '타미플루'를 생산하려면 10단계의 공정을 거쳐야 하고, 이 중 한 단계는 폭발 위험성을 안고 있으며, 모든 공정을 마치는데 최대 12개월의 시일이 소요된다는 것이 그 요지.

따라서 제네릭 제형의 제조를 허용하더라도 생산체제를 구축하는 데만 3년 정도의 시일이 소요될 것이므로 최근 고개를 들고 있는 외부의 요구는 별달리 의미가 없다고 로슈측은 입장을 밝혔다.

이와는 별도로 '타미플루'는 1일 1회 5일간 투여분의 가격이 60달러를 상회하는 수준이어서 부담이 만만치 않은 편이라는 지적에도 무게가 실리고 있다. 애널리스트들은 로슈측이 '타미플루'를 각국 정부에 절반 이하의 '가격파괴' 수준으로 공급하더라도 정작 조류독감이 창궐하고 있는 해당 개발도상국 대부분은 사용할 엄두를 내기 어려운 수준이라는데 입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제약업계는 위급한 상황에서 치료약을 염가에 공급하거나, 제네릭 제형의 생산에 동의해 줄 경우 R&D에 투자할 여력을 상실하고, 첨단신약의 개발도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 제약협회(PhRMA)의 빌리 타우진 회장은 10일 공개한 성명서를 통해 '어렵고 많은 비용지출을 감수하면서 첨단신약을 개발한 제약기업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인센티브를 포기하도록 강요해선 안될 것'이라며 로슈측을 두둔했다.

미국 미시간大 의대의 아놀드 몬토 박사는 또 다른 맥락에서 설령 '타미플루'의 생산이 크게 확충되고 저가에 투여가 가능해지더라도 문제가 해결되지는 못할 것이라는 견해를 내비쳤다. '타미플루'가 대량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 조류독감이 창궐하기도 전에 바이러스가 내성을 키우게 될 것이므로 정작 실제상황이 도래하면 손을 쓸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편 로슈는 올해 상반기에만 '타미플루'로 4억5,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린 상태이다. 특히 2006년 중반까지 '타미플루'의 생산능력을 지금의 8배로 확충할 계획으로 있다.

이덕규 기자 (abcd@yakup.com)
입력 2005.10.12 08:38 PM, 수정 2005.10.12 08:4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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