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와 소득수준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진행한 실증연구라고 하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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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할수록 암 잘 걸리고, 더 빨리 죽는다
김철웅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보건정책학교실 박사
소득수준이 암발생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까? 어찌 보면 상식적인 질문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엔 이에 대한 실증연구가 없어 자신있게 대답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이제 이 문제에 대한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서 소득 수준과 암발생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소득수준과 암발생과의 관계
외국에서는 그 간 사회계층별 암 발생률 및 사망률 등이 보고되고 있는데, 사회경제적 하위계층이 상위계층보다 전체적으로 암 발생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997년 21개 국가, 37개 인구집단의 24개 암에 대한 파지아노의 연구를 보면, 일부 암을 제외하면 낮은 사회계층일수록 암발생율이 높았다. 남자의 경우, 낮은 사회계층에서 코, 후두, 폐 등 모든 호흡기의 암과 구강암, 인두암, 식도암, 위암 발생률이 높았다. 여자의 경우에도 낮은 사회계층에서 식도암, 위암, 자궁경부암의 발생률이 높았다.
외국의 경우엔 이 ‘건강불평등 문제’의 해결을 당연히 국가보건정책의 주요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영국은 국가의 주요목표로 “(1) 최빈자의 건강을 향상시키고, (2) 건강 불평등의 크기를 줄이는” 것을 설정했다. 미국의 보건부가 2010년까지 달성해야 할 핵심적인 건강목표 두 가지 중 하나는 “성, 인종, 교육 수준, 소득수준, 지역 등에 따른 건강 불평등을 제거하는” 것이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21 전략’에서 보건 목표를 새로이 제시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목표는 ‘건강 불평등’과 관련된 것인데, 이는 ‘국가 간 건강 불평등’과 ‘국가 내 건강 불평등’으로 나누어졌다.
구체적으로 세계보건기구는 각 국가들이 불이익을 당하는 집단들의 건강 수준을 향상시키는데 주력, 궁극적으로는 모든 회원국들에서 ‘사회경제적 집단 간 건강 격차’를 적어도 25% 수준으로 감소시킨다는 세부 목표를 설정한 바 있다.
이처럼 국가의 건강목표로 건강 불평등의 완화 및 제거를 주된 목표로 설정하고 있는 국가는 영국, 스웨덴, 스페인, 네델란드, 리투아니아 등이다. 반면, 국내에서는 건강불평등에 대한 연구결과조차 접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가난할수록 암에 많이 걸리고, 일찍 숨지는 ‘암불평등’이 우리나라 암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처음 확인됐다. 필자는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센터 이상이 소장과 함께 2001년도에 암으로 진단받은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와 기초생활수급자 49,277건을 보험료를 기준으로 6개의 소득계층으로 구분, 치명률(암발생률과 암진단 후 3년 이내에 사망할 위험을 통계화한 수치)의 차이를 분석했다.
가난할수록 암에 더 많이 걸리고
암 발생률에 대한 연구결과를 보면, 보험료를 기준으로 남자의 상위 20% 소득계층의 전체암 발생률이 인구 10만 명당 226명인 반면, 최저소득층인 기초생활수급대상자는 379명으로 상위 20% 소득계층에 비해 1.7배로 나타났다. 여자는 1.5배 더 많이 발생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주요 암종별로 소득계층 간 발생률의 차이를 보면, 상위 20% 소득계층에 비해 기초생활수급자인 남자의 경우, 식도암 3.3배, 간암 2.3배 등 폐암, 췌장암, 위암 발생률이 높았다. 고소득층에서 더 많이 발생한 암으로는 전립선암, 직장암, 결장암 등이 있다.
저소득층 여자의 경우, 상위 20% 소득계층에 비해 자궁경부암이 2.1배, 간암이 2배, 폐암이 1.8배였다. 고소득층 여자에게서 더 많이 발생한 암은 결장암과 갑상선암이었다.
이 연구에서 발병원인까지 직접 다루지는 않았지만, 외국의 연구에서 보면, 낮은 계층의 암발생률을 높이는 이유는 크게 다음의 세 가지다.
①흡연, 음주, 운동 등의 건강저해 행위, ②주거환경 등 물질적 조건, ③스트레스 등 사회심리적 요인.
따라서 저소득층에서 암이 많이 발생하는 이유로는 높은 흡연율과 과도한 음주율, 상대적으로 불편한 주거환경, 더 많은 스트레스 등이 제기되고 있다. 저소득층의 경우 ‘운동 실천률’이 낮다는 것도 중요한 원인이다.
이번 연구의 결과, 남자의 전립선암과 여자의 갑상선암은 고소득층에 많이 나타나는 통계수치를 보였다. 하지만 이는 실제 그렇다기보다 고소득계층일수록 저소득층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더 쉽고 빈번하게 의료시설을 이용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생명에 지장이 없는 초기 단계에 발병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예를 들면, 전립선암은 노인암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전립선암의 2/3가 65세이상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전립선암의 발생은 많은 경우 증상이 없는 환자의 선별검사, 근본적인 전립선 제거수술 또는 부검을 통해 잠복해 있던 암을 발견함으로써 확인되어진다. 이는 갑성선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고소득층에서 전립선암(남자)과 갑상선암(여자)이 많이 나타나는 이유는 암발생 위험의 실제 차이라기 보다 이 계층이 능동적으로 검진에 참여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고소득층이 저소득층에 비해 건강검진 및 암선별검사에 참여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고 판단된다.
가난한 암환자일수록 더 빨리 죽는 현실
발생률의 소득계층 간 차이의 경우, 최저소득층과 최고소득층의 차이만이 두드러지고 나머지 중간계층과 최고소득층의 차이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치명률 즉 암을 진단받은 사람 중 3년이내에 사망한 사람의 비율은 최저소득층과 최고소득층의 차이뿐 아니라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소득계층인 중간계층 모두에서 1.3배에서 2배에 이르기까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하위 20%소득계층의 경우 남자 2.06배, 여자 1.49배로 가장 높다.
발생률은 암 종류별로 소득계층간 양상이 다르게 나타났지만, 암이 이미 발생한 상황에서 사망할 위험인 치명률은 거의 모든 암종에서 저소득층이 더 높아 저소득층일수록 더 빨리 사망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특이한 것은 조기진단이 가능해서 치료가 상대적으로 용이한 유방암과 자궁경부암에서 가난한 암환자의 사망위험이 더 크게 나타났다. 반면 췌장암, 폐암, 간암, 담낭암 등 생존율이 낮은 암에서 치명률의 차이가 낮았으며, 많은 경우엔 통계적으로도 유의미하지 않았다.
치명률을 예측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는 얼마나 일찍 진단받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저소득층의 경우 고소득층에 비해 검진기회가 낮아서 생존율이 높은 유방암과 자궁경부암에서조차 조기암 단계가 아닌 진행된 암단계에서 진단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는 이미 손 쓸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또한 같은 암단계에서 진단받았다고 하더라도 의료비, 간병비 등이 저소득층에 더 큰 재정적인 부담으로 작용해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할 수 있고 그 결과 소득계층 간 불평등이 생겼다고 판단된다.
그 외에 의료급여대상자보다 건강보험 지역가입자 하위 20% 계층의 사망위험이 더 크게 나타났는데, 이는 건강보험 하위 20% 계층이 의료급여대상자에 비해 암조기검진 또는 치료과정에서 본인부담이 더 크게 작용하므로 적극적인 치료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가난 때문에 암불평등을 감수해야 하는가?
이번 연구결과 자체를 의심할 수 없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오는 것이 자연스럽다. 소득수준이 낮으면 암이 더 많이 발생하고, 더 빨리 죽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가?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은 다음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보시기 바란다.
①감수해야 한다 ②부당하므로 감수할 수 없다.
건강의 평등문제를 보는 데는 거칠게 나누어 두 가지 시각이 있다. 건강은 기본권이므로 개인적, 사회적 조건에 상관없이 가급적 평등해야 한다는 것이 그 하나다. 반면에 건강도 다른 사회적 혜택과 비슷하므로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차이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평등지향성이 강하다고들 하니 많은 분들이 평등지향적인 것 즉 선택지 ②를 골랐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생명보다 이윤을 앞세우는 현실에서 이런 주장은 그리 만만한 선택이 아니다. 정책은 더더구나 그렇다.
암 불평등대책은 크게 암발생의 불평등과 암치명률의 불평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암치명률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치명률의 중요한 예측지표인 저소득층의 조기암 진단률을 높이고,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다. 치명률에서는 빈곤층 뿐 아니라 중간계층까지 불평등이 존재하기 때문에 중간계층까지 포함하여 암을 조기에 진단해서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조기암진단사업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또한 암 진단받은 사람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해 건강보험의 급여를 확대하고, 의료비를 지원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할 것이다.
현재 정부에서는 조기암진단사업을 확대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때 주의할 점은 저소득층이 생계활동 때문에 조기암진단사업에 덜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런 점을 고려해서 저소득층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찾아가는 서비스’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암치명률의 불평등문제는 주로 보건의료부문내의 대책 즉 적절한 의료시스템의 구축만으로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하지만, 암 발생의 불평등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은 의료시스템의 구축만으로는 해결될 수가 없고 보다 범위가 큰 사회정책이 필요하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저소득 계층의 암발생률이 높은 이유는 삶의 다양한 영역이 저소득층에 불리하게 작용한 결과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담배를 끊고, 과도한 음주를 줄이고, 운동을 하도록 홍보 또는 교육하는 것만으로는 건강행태의 개선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예를 들면, 보다 효과적인 흡연억제정책을 형성하려면 사회계층간 흡연 관련 암발생률과 흡연율의 상대적인 차이를 분석할 필요가 있는데, 같은 흡연량이라고 하더라도 소득계층에 따른 암발생률의 차이가 다를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흡연 정도가 암발생의 사회경제적 차이를 얼마나 설명해주는갗이다. 직장의 유해환경, 불충분한 영양, 보건의료시설 이용의 차이 등 사회경제적 맥락을 함께 고려해서 정책수립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즉, 개인에 대해 홍보하고 교육하는 방안 이외에도 주택가 주변에 공원을 증설하거나 금연구역을 확대하는 등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더 나아가서 암 발생의 불평등 등 건강불평등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적 불평등 예를 들면, 사회계층간 소득격차, 교육격차 등을 줄일 수 있는 전사회적 차원의 대책이 요구된다.
건강 불평등 줄이는 사회적 대책 필요
최근 경제가 나빠지면서 빈부격차가 다시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중산층은 줄고 빈곤층은 자꾸 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심화됐으며, 경기침체로 인한 실직자 증가와 학력별 임금격차 확대 등이 주된 원인으로 파악됐다.
빈부격차는 이제 우리 사회가 내내 안고 가야 할 만성적인 문제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흔히 빈부격차라고 하면 의식주와 같은 외형적 차이에만 관심을 쏟는다. 그러나 빈부격차는 건강과 같이 눈에 띄진 않지만 인간의 삶에 극히 중요한 영역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것도 수명과 같은 근원적인 수준과 연관된다.
세계적으로 건강은 기본권이라는 생각이 점점 더 많은 지지를 얻어가고 있다. 이렇게 건강이 정말로 국민의 기본권이라면 암불평등을 비롯한 건강불평등 해소를 보건정책의 목표에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 또한 소득계층별 발생률과 치명률의 차이에 관한 통계를 생산하여 암정책의 효과를 모니터링하고, 소득계층별 차이가 발생하는 원인을 밝히는 추가연구를 기획할 필요가 있다.
가난할수록 암 잘 걸리고, 더빨리 죽는다
3월
30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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