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법 관련 2

'의심스러우면 안전에 유리하게' (법률신문 2004. 8)

김중권 (중앙대학교 법과대학, 부교수)

Ⅰ. 藥事法의 位相

약사법 제1조의 목적규정에 비추어 보면, 용어상으론 동법이 위험방지법과 명백한 관련성을 갖진 않지만, 임무상으로 보아 동법이 넓은 의미상의 위험방지와 관련이 있음은 동법의 보호목적의 측면에서 자명하다. 따라서 약사법은 체계상으론 예방적?계속적 생산품(제조물)통제란 의미에서 국가의 위험방지법에 속한다.

약사법은 안전성과 관련해서 危害란 용어를 사용할 뿐, 통상의 危險(Gefahr)과 구별되는 리스크(Risiko, risk)에 상당하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국민보건에 위해를 끼친 경우뿐만 아니라, 끼칠 염려가 있는 경우에도 의약품의 제조 등이 금지됨과 아울러 허가취소 등이 행해짐(약사법 제56조와 제69조 등)을 생각하면, 국가의 의약품통제가 리스크행정에 속함은 자명하다. 그리고 의학?약학지식과 의학?약학정보가 부단히 새롭게 전개되고, 의약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에 관한 형량?비교가 지극히 어려운 점에서, 의약품에 관한 국가의 판단은 리스크결정에 해당한다. 요건데 약사법은 식품위생법과 더불어 오늘날 안전행정 및 리스크행정을 전형적으로 대변한다. 졸고, 리스크행정의 대표인 의약품법에 관한 소고, 법학연구(충북대 법학연구소) 제9권, 1997, 215면이하; 약사법상의 의약품(특히 신약)제조허가의 특질과 입증책임에 관한 소고, 공법연구 제27집 제2호, 1999.6, 493면이하). 리스크법에 관해선 조홍식, 리스크법, 법학(서울대 법학연구소) 제43권 제4호, 2003, 27면 이하; Stoll, Sicherheit als Aufgabe von Staat und Gesellschaft, 2003. 참조.

Ⅱ. 國家의 醫藥品監視의 모습
리스크조종의 기능을 수행하는 국가의 의약품감시는 서로 상이하게 맞물린 여러 통제영역에서 각기 모습을 달리 하지만, 크게 예방적 제조허가(승인)-市販前統制-와 일정 기한이 지나서 의약품을 관찰하는 재심사(재평가를 포함해서)-市販後統制-가 핵심적인 내용이다. 이밖에도 제조심사, 의약품검사의 규율화, 실제복용(처방의무와 약사의무)과 관련한 규정이 보완적 감시영역에 해당한다.

예방적 제조허가결정과 대개 그에 이어서 진행되는 의약품감시, 이 양자는 긴밀한 관계에 있다. 제조허가(승인)는 순전히 잠정적인 허용 즉 이른바 暫定的(假) 行政行爲에 해당한다. 제조허가는 지속적인 재심사의 범주에서 언제든지 수정될 수 있다. Udo Di Fabio, Risikoentscheidungen im Rechtsstaat, 1994, S.307ff.

제조허가의 잠정성으로 말미암아 동허가는 결코 실제적으로 중요한 실체적인 존속보호와 신뢰보호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제조허가(승인)받은 의약품은 재심사의 범주에서 염려(혐의)상황이 인정되면, 부관이 부가될 수 있거나 허가취소나 업무정지를 통해서 판매금지될 수 있다(약사법 제69조 제1항 참조). 그런데 제약회사로선 재심사에 따른 시판후조치와 관련해서 신뢰보호든 손실보상이든 주장할 수 없다. Ramsauer, Die staatliche Ordnung der Arzneimittelversorgung, 1988, S. 74.

사실 유효성과 부작용리스크에 관해선, 의약품시험단계에서보다 시판후단계에서 통제가 더 효과적으로 행해질 수 있다. 당초의 제조허가과정에선 주로 유효성 물음이 그 당시 임상시험의 수준에 맞춰 시험대에 오르지만, 재심사의 경우에는 시판후에 갑자기 출현하거나 누적된 부작용이 중점 검토되어야 한다. 의약품에 관한 리스크분석의 신뢰성은 본질적으로 실제복용사례가 많아야 얻어질 수 있으며 또한 의약품제조허가가 잠정적 성질을 지니기에, 사후통제가 예방적 감시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Ⅲ. 리스크決定으로서의 醫藥品製造許可

1. 리스크決定의 意義

행정당국이 앞당겨진 위험방지 즉, 위험혐의의 영역이나 위험혐의의 앞영역에서 리스크축소의 관점에서 어떤 활동을 했을 때, 이를 행정법상의 리스크결정이라 할 수 있다. 리스크결정은 위험방지조치상의 특별한 유형이거나 최소한 위험방지조치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 전통적인 위험방지의 조치와 비교해 보건대, 리스크결정의 공통된 특징은 손해(피해)발생의 개연성을 판단함에 있어 인식상의 불확실성의 정도가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아울러 원인과 손해결과간의 상호관련성이 완화됨 역시 리스크결정의 또 다른 공통된 특징이다.

요건데 ⅰ) 개연성판단이 경험이나 확고한 통상의 지식에 의거해선 더 이상 불가능할 정도로, 위험방지의 임무가 앞당겨지고 있으며(개연성문턱의 낮춤), ⅱ) 국가의 결정이 내부나 외부의 학술전문가의 도움아래서만 내려질 수 있으며, ⅲ) 결정과 결정근거의 명료성이 없으며, ⅳ) 평가?비교에 의거하지 않고선 국가의 조치가 나오지 않거나 평가?비교하는 효능과 리스크의 분석이 법률적으로 요구되고 있으며, ⅴ) 개별적 행위(혹은 부작위)와 가능한 손해에 관한 인과적 귀속가능성이 개입요건에 반드시 들어 있지 않을 경우에, 내려지는 결정을 리스크결정이라 할 수 있다.

2. 醫藥品製造許可의 리스크決定的 特徵

의약품의 안전성 개념을 이해함에 있어, 위험(Gefahr)이 개연성있는 손해(신체훼손)발생으로서 응축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식의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위험문턱(경계선)보다 훨씬 이전에 리스크가 완화?축소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해야 한다. 약사법은 체계상으로 위험혐의와 예방의 분야에서 통용되기에, 리스크가 제지되지 못하고 단지 완화될 수밖에 없다거나 혹은 어떠한 리스크는 수인될 수 있다거나 여부를 결정하여야 할 경우에도 통용된다.

혐의상황에서 행정청이 취할 대처방안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 독일 의약품법은 제1조의 입법목적에서 리스크징표에 상당하는 개념을 사용하였다. 안전성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동법이 규정한 세 가지 기준 즉, 품질, 유효성, 의혹없음(염려없음, 좁은 의미의 안전성)은 기능상으로 위험개념을 대신한다. 사실 독일 의약품법상의 이러한 징표는 실정법상으로 규정된 리스크요소에 해당한다. 우리의 약사법의 경우에도 신약제조허가를 비롯한 동법상의 일련의 행위의 결정적인 규준은 바로 안전성과 유효성이기에, 독일과 사정이 다르지 않다.

약사법상의 개개 행위의 성립징표 특히 유효성과 의혹없음(안전성)을 해석함에 있어, 반드시 효능과 리스크간에 형량을 해야 한다. 약제의 효능이 개입요건을 심대하게 상대화하고, 그리하여 위험도그마틱상으로 행위성립요건의 측면에서 개연성예측만이 논의되는 경우엔 이미 형량이 강제된다 하겠다. 그리고 의약품이 지닌 효능과 리스크간에 형량이 반드시 행해져야 한다는 점에서, 의약품에 관한 국가의 통제에는 다음의 사실을 고려에 넣어야 한다. 즉, 가능한 손해의 발생이 불확실하다는 점, 리스크로부터 불가피하다는 점과 리스크정도를 조종?형성하는 결정을 내리도록 요구된다는 점이 그것이다. 따라서 예방적 성격의 제조허가거부나 재심사후의 조치인 제조허가철회?업무정지가 적법하게 이루어졌는지 여부는 일원론적인 위험평가에만 의거해서 판단할 순 없다.

3. 醫藥品의 副作用리스크(安全性)의 문제

일찍이 1950년대말 수천건의 기형아출산을 가져온 Thalidomide 藥禍事故가 보여주듯이,의약품의 부작용리스크에 관한 판정은 의약품통제의 아킬레스건에 해당한다. 규정에 맞춰 의약품을 복용한 결과 인간과 동물의 건강을 저해하는 영향이 생겼을 때, 이것이 예기치 않은 부작용이나 유해한 효과에 해당한다. 어떤 의약품을 예방적으로 판정할 때, 예기치 않은 부작용의 출현과 빈도를 명확히 언급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동물실험의 결과가 인간에 대해서 그대로 재현되지 않는 것이 상례이고, 신약에 관한 임상시험상의 사례건수가 통계적으로 충분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내기에는 턱없이 적기 때문이다.

약사법은 ‘국민보건에 위해를 끼칠 염려가 있는 의약품 등의 제조 등’을 금지하고 있으며(동법 제56조 11호), 독일 의약품법 역시 ‘정당화될 수 없는 유해효과에 관해 근거있는 혐의가 있을 때’를 승인거부사유의 하나로 규정하였다(동법 제25조 제2항 5호). 아울러 동법 제5조 제1항은 제약회사와 판매자에 대해 염려되는 의약품의 판매를 금지하였다. 사실 이러한 원칙적 금지는 승인(허가)절차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중요하다. 왜냐하면 의약품제조허가가 있다 하더라도 제약회사가 약사법 제56조에 대한 고려(원칙적 금지)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앞서 허가된 의약품조차도 언제든지 염려스럽게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약사법 제56조 11호와 제69조 제1항 4호에서 “국민보건에 위해를 끼칠 염려가 있는 의약품”이라고 규정함은, 이 경우 국가의 위험방지를 개연성단계의 아래로 앞당겼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한다. 정당화될 수 없는 부작용에 관한 근거있는 염려(혐의)가 있으면, 행정청은 제조허가를 거부할 수 있으며, 아울러 기왕에 허가되어 적법하게 시판중인 의약품에 대해서도 허가취소나 품목제조금지와 같은 시판후조치를 발할 수 있다.

여기서의 염려(혐의)를 인정하기 위해선, 단순한 추정에 의거하여 국민보건상의 위해(유해)가 발생했다는 막연한 염려(혐의)만으론 충분치 않다. 오히려 그 염려(혐의)가 학문적 지식이나 경험을 통해서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염려(혐의)가 근거있음을 인정하기 위해선, 있음직한 위해(유해)발생이 순전히 학문적?이론적 근거만 있어도 충분하다. 그리고 중대한 신체손상의 혐의가 있으면, 손상발생의 미미한 가능성만으로도 제조허가를 거부하거나 취소하는데 충분하다. 따라서 위험방지가 앞당겨져 있다 하더라도, 위험방지법에서 개연성충족여부를 판단하는데 통용되는 “역비례의 원칙”이, “(근거있는) 염려”의 존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적용되어야 한다.

그런데 의약품의 효능(유효성)과 리스크에 대해서, 학문적?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법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분석을 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이러한 어려움때문에 생명을 구하기 위해선 필시 어떤 사람의 죽음을 무릅써야 한다는 곤경에 처한다. 이런 맥락에서 일찍이 Berlin행정법원이 「비록 어떤 의약품으로 인해 사망사례의 혐의가 있더라도, 그 의약품이 생명에 매우 중요하고 대체불가능하다면 (그것을)시판되도록 내버려 두어도 괜찮다」고 판시하였다. VG Berlin vom 15. Jan. 1979-VG 14 A 4/79-.

Ⅳ. “의심스러우면 안전에 유리하게”

리스크결정에 내재하는 불확실성의 요소로 말미암아, 리스크행정의 핵심수단이 警告나 勸告와 같은 國家的 情報行爲이다. 마치 ‘전격제로작전’과 같은 우리의 전면금지조치와는 달리, 미국에선 유예기간을 충분히 주거나 자발적으로 사용을 줄여나가도록 권고하는 등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이번 “PPA파동”이 지난 번 “불량만두파동”처럼 비이성적이고 비전문적인 저널리즘의 횡행속에서 진행되어선 아니 된다. 이 글은 중요성에 비해 법학의 사각지대에 위치한 약사법에 관한 관심을 제고하기 위하여 준비되었다. 위험방지라는 국가목적이 과거엔 제한?축소적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오늘날의 리스크사회(Risikogesellschaft)에선 다른 국가목적에 대해 확고한 우위를 갖는다. 더욱이 사회안전망의 미비나 안전불감증의 일상화를 감안하면, 우리의 경우 “의심스러우면 안전에 유리하게”(In dubio pro securitate)란 표제가 국가활동의 출발점이자 목표점이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국가의 존재이유가 되어야 한다.

신문게재일 : 2004-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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