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연재/ 약알고먹자] ‘장수 의약품’도 다시 보자

[약알고먹자] ‘장수 의약품’도 다시 보자 
 
 
수십년 동안 ‘한국인의 두통약’으로 쓰였던 ‘게보린’은 올해 3월부터 짧은 기간만 사용할 수 있는 약으로 허가사항이 변경됐다. 이 약에 들어 있는 특정 성분이 혈액질환이나 의식 장애 같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사례로 ‘콘택 600’이 있다. 50년 넘게 사용됐던 이 약은 2004년 이른바 피피에이(PPA) 사건으로 유명세를 더했는데 드물지만 부작용으로 뇌졸중이 생길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돼 아예 허가가 취소됐다.
보통 판매된 지 오래된 의약품들은 장기간 쓰이면서 그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된 약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수십년 전 허가를 받을 당시 기술과 제도상의 미비점 때문에 현대 의약품 개발의 당연한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는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처음부터 완벽한 약이 출시되면 좋으련만 의약품은 그 속성상 오랜 기간 사용을 통해 부작용 사례가 쌓이면서 안전성에 대해 끊임없이 재평가를 받아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다른 사례로 오래된 약이지만 최근 들어 사용량이 크게 늘어난 ‘트라마돌’이라는 진통제가 있다. 단일 성분으로서는 미국과 영국 등에서 16살 이상이 5일 이내로만 쓸 수 있도록 허가됐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2살 이상에서 기간에 대한 제한 없이 허가됐다. 이 약은 모르핀이나 코데인과 같은 마약성 약물과 화학적으로 비슷한 특성을 갖고 있어서 그 중독성이 끊임없이 제기돼 온 약물이다. 그러다 최근 트라마돌과 다른 성분을 복합해 ‘울트라셋’이라는 상품으로 다시 시장에 등장한 이후 널리 쓰이는 진통제가 됐다.

이 울트라셋에 포함된 또 하나의 성분은 아세트아미노펜(AAP)으로 역시 잘 알려졌고 흔히 쓰이는 진통제인 ‘타이레놀’의 성분이다. 미국 식품의약청(FDA) 자문위원회는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이 심각한 간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수차례 경고해 왔다. 지난달에는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도 의·약사들에게 안전성 서한을 배포해 이 성분을 비롯한 진통제 성분을 처방할 때는 부작용에 더욱더 유념해 줄 것을 당부했다. 더불어 진통제 전반에 대한 안전성 검토를 진행중이라고 밝혀 조만간 그 결과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오래되고 널리 쓰였다는 이유만으로 해당 약품들의 안전성을 결코 담보하지는 못한다. 약품 안전성에서도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구호가 새삼스럽지 않다.

송미옥/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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