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 - 스웨덴의 국민연금

좌파가 신자유주의적 연금개혁 수용한 이유

[오마이뉴스 2004-12-09 14:49]

[오마이뉴스 오건호 기자]최근 진보진영과 학계에서는 한국자본주의의 개혁모델을 놓고 논쟁이 한창입니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7년이 지나면서 영미식 주주자본주의로 상징되는 한국경제구조에 대한 비판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꾸준히 제기되는 것이 이른바 '스웨덴 모델'입니다. 는 국제사무직노조연맹 한국협의회(UNI KLC)와 스웨덴 올로프팔메센터의 도움으로 지난 10월말부터 일주일여동안 국내 진보진영 학자 등과 함께 스웨덴을 다녀왔습니다. 는 5회에 걸쳐 국내 전문가들과 함께 한국 자본주의 대안적 모델로서의 스웨덴과 한국현실을 집중 조명합니다.... 편집자 주


ⓒ2004 오마이뉴스 김종철

지난 10월 25일 오후 스웨덴 시내 한복판에 자리잡은 공공연맹 중앙본부 빌딩 회의실. 스웨덴 연금제도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사회단체 간부에게 물었다. 새로운 국민연금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연금제도를 우리에게 설명하던 그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대답한다.


뒤에 앉아 토론을 듣던 '좀더 좌파'라고 알려진 간부는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다. 또 다른 간부는 '새로운 연금체계가 복잡해서 이해할 수 없다'며 은근히 불만을 나타낸다. 10년 이상의 논란 끝에 1998년 스웨덴 국민연금이 대폭 개편되었다. 다시 5년이 지나고 있지만, 아직도 변화의 한가운데에 있는 듯했다.


스웨덴 국민들은 은행에 개인예금을 하지 않는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저축이 미덕'인 사회에서 자라난 필자에겐 생소한 일이지만, 사회복지가 정비되어 있어 저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리라.


한국방문단을 안내하는 스웨덴 공공연맹 간부에게 확인 겸 물었는데, '우리도 저축을 한다'며 뜻밖의 말로 시작하더니 감동으로 마무리 짓는다. '우리는 개인예금은 하지 않지만, 사회적으로 저축을 한다. 그것이 국민연금이다. 우리는 매달 연금을 예금하며, 이 돈을 우선 노인세대에게 드리고, 우리가 늙었을 때 후세대들로부터 되돌려 받을 것이다.'

스웨덴에서 공적연금이 도입된 것은 1913년의 일이다. 이어 1946년 스웨덴 시민이면 누구에게나 생활비 일부를 대가없이 제공하는 기초연금제도가 시작되었다. 1957년에는 연금액 수준을 높이기 위해 기초연금 이외에 소득과 연동된 비례연금(ATP)이 새롭게 추가됐다.

이로써 기초연금과 비례연금으로 구성된 '스웨덴 국민연금'의 틀이 갖추어졌다. 지금까지 스웨덴 연금은 소득대체율 70%의 높은 급여 수준, 연금보험료의 사용자 전액 책임, 가입자 특성을 고려한 다양한 급여 형태 등 가장 모범적인 연금제도로 평가받아 왔다.

이러한 스웨덴 연금이 큰 변화를 겪고 있다. 그 변화는 크게 세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모든 시민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이 저소득계층에게만 제공되는 최저연금으로 전환되었다. 둘째, 임금의 총 18.5%에 해당하는 보험료 중 2.5%를 자신의 노후를 위하여 개인별로 투자회사에 적립하도록 했다. 셋째, 사용자가 전담하던 연금보험료 방식을 노사가 절반씩 책임지도록 바꾸었다.

1984년부터 연금개혁위원회가 설치되어 연금개혁을 논의하기 시작하였고, 15년 후인 1998년에 연금법이 개정되었으니 변화의 폭만큼 시간도 오래 걸렸다. 그만큼 진통을 겪었다는 이야기다.

스웨덴 연금에 변화를 요구한 것은 고령화 문제였다. 스웨덴은 이미 1975년에 세계에서 가장 먼저 고령사회(65세인구가 14% 이상)에 도달하였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보험료를 내는 사람은 줄어들고 연금을 타야할 인구는 늘어나니 연금재정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당연했다.

이 때문에 기초연금의 보편주의 원칙이 훼손되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기초연금을 최저연금체제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노인요양, 의료 등 현물적 노인복지가 잘 마련되어 있긴 하지만 안타까운 마음으로 설명을 들어야 했다.

보험료 2.5%를 개인별로 자체 적립하는 것도 의미심장한 변화이다. 이제 스웨덴 연금은 16%의 부과방식과 2.5%의 적립방식으로 구성된 수정부과방식 연금이 되었다. 내가 노인이 되었을 때 받을 연금액을 당시 젊은 세대의 보험료만으로 충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걱정이 자신의 연금을 일부 적립하도록 한 것이다.

최근 선진국 대부분이 연금제도를 완전부과방식에서 미래연금액을 일부 적립해 두는 수정부과방식으로 전환을 꾀하고 있다. 미래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스웨덴연금에서 독특한 점은 이 적립이 민간펀드회사에 개설된 개인계좌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일종의 강제적 개인적립연금(Premium Pension)이다.

연금보험료 책임이 사용자 전담에서 노사 반분으로 전환된 것도 큰 변화이다. 국경없이 오가는 자본의 세계화시대에 고용주의 높은 사회보장세가 계속 논란거리였다.

스웨덴 기업은 28%의 법인세와 별도로 자신이 고용한 노동자 임금의 33%만큼을 사회보장세로 납부한다. 고용주의 4대보험료가 임금의 10% 이내인 우리나라 기업인에게 상상할 수 없는 세금이다.

결국 스웨덴도 가속화되는 국제경쟁체제에서 '독자노선'을 포기하고, 외국에서 일반적인 연금보험료 노사공동부담 형태를 채택하였다. 보완책으로 보험료 부담이 가중될 가입자를 고려해 조세공제제도가 도입되긴 했지만.

스웨덴으로 향하면서 꼭 묻고 싶은 질문이 있었다. '사회민주당이 어떻게 신연금제도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고. 교육 강사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설명이나 또 다른 간부의 못마땅한 얼굴이나 모두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변화하는 인구 변화, 경쟁의 세계화에서 고육지책이었다는 것이다. 소득재분배와 형평의 시각에서 보면, 스웨덴 신연금제도가 과거제도에 비해 후퇴한 것은 분명하지만, 사회경제 환경의 변화를 무시할 수 없다는 해명이다.

오히려 스웨덴 연금에 큰 일이 생긴 것 아니냐며 노심초사하는 필자에 비해 이미 많은 시간이 흘러서인지 그들은 차분해 보였다. 풍랑이 거세지만 우린 계속 항해한다는 의지와 여유도 엿보였다. 그래서 필자도 '분'을 삼키고 판단을 보류하기로 했다.

돌아오면서 우리나라 국민연금을 생각했다. 우린 40년 이후의 고갈을 두고 논란을 벌이고 있다. 혹시 연금이 필요한 노인세대를 눈앞에 두고도 천문학적인 적립금을 쌓아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까?


장의 노인빈곤에 관심을 가지기 보다는 누적되는 연금기금의 운용과 40년 후의 고갈을 초미의 관심사로 몰아가는 우리나라의 '적립방식' 연금은 정말 선진적 방식일까?

지금 나의 보험료로 현 노인세대 연금을 지급하는 부과방식은 세대간 연대없이는 불가능한 제도이다. 스웨덴을 비롯하여 서구는 오래전부터 '고갈'을 아랑곳하지 않고 부과식 연금제도를 유지하였고, 이제 변화된 환경을 맞아 조금씩 적립금을 마련 중이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일종의 부과방식연금인 기초연금을 도입하여 현세대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 것이 옳지 않겠나?

고령화되는 미래사회를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반론이 들린다. 하지만 미래를 진정 생각한다면, 40년간 쌓아야 할 것은 적립금이 아니라 사회연대이다. 사회연대만 살아 있다면, 우리가 노동을 하는 한, 함께 사는 길은 있기 마련이다. 변화의 가운데에 서 있는 스웨덴 연금에서 인간이 만들어 낸 사회연대와 다가오는 미래의 도전을 전해 듣고 서울로 돌아왔다.

/오건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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