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 - 초밥 좋아하세요?

나는 요즘, 한 4년 전쯤 충격과 전율 속에 읽었던 만화책 을 다시 읽고 있다. 내가 하고 있는 프로그램에서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초밥을 가장 잘 만드는 맛 집을 찾았던 것이 계기가 된 것이다. 판형도 두툼한 애장판으로 바뀌어서 그런가,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새로운 재미와 처음 읽었을 때 느꼈던 감동을 다시 한번 맛보며 현재 '전국대회'편 2권째를 보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프로그램 자문위원단인 조리학과 교수, 음식전문기자, 음식동호회장 등의 의견을 들어 결국은 의 대표적인 초밥 요리사 안효주씨를 선정했는데, 안효주씨는 의 한국 편의 모델이라는 것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에 한번은 꼭 만나보고 싶었던 분이기도 했다.


그런데 미스터 초밥왕을 읽으면서 계속 드는 생각은 세키구치 쇼타의 요리수업에서 강조되는 건 비싼 고급의 재료가 아닌 비록 싸고 보잘 것 없는 재료를 가지고 만들었더라도 만드는 사람의 먹는 사람에 대한 애정과 정성이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음식은 정성만 있으면 된다는 것인지, 비싼 음식을 파는 맛 집은 문제가 있는 것인지, 더 좋은 재료를 찾기 위해 들이는 노력은 가치가 없다는 것인지, 재료가 좋으면 양념도 그다지 많이 필요 없을 텐데 갖은 양념을 곁들이는 것은 혹시 원재료의 부실함을 가리기 위함은 아닌지, 과연 좋은 음식이란 무엇인지, 바람직한 맛 집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 건지 등등의 그야말로 두서없는 생각의 파편들이다.


이러한 의문들에 대한 답은 일단 안효주씨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구해보기로 하자.


안효주씨는 요리사의 길에 들어서기 전엔 권투선수를 했다. 혹시 초밥을 만드는 빠르면서도 섬세한 손동작이 권투에서 도움을 받은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요리사의 길로 접어들고 나서 1985년부터 신라호텔의 일 식당에서 초밥을 만들면서 이름을 날리게 되는데 신라호텔을 찾는 손님들은 거의 모두가 안효주 라는 이름 석자를 보고 왔고, 안효주씨가 작년에 독립하여 지금의 를 차렸을 때 신라호텔 일 식당 고객의 80%가 빠져나갔다고 한다.


안효주씨는 어떻게 해서 한국의 미스터 초밥왕이 된 것일까. 안효주씨가 주방에서 초밥을 쥐고 있으면 미스터 초밥왕을 읽은 손님들이 와서 '그 만화 읽어보셨어요?'라고 하도 물어봐서 자기도 손님들과 대화가 되려면 읽어야겠다 싶어서 봤더니 일개 만화의 초밥에 대한 무한한 깊이에 놀라게 된 것이고, 만화에 나오는 초밥들을 실제로 만들어 보게 되면서 한국의 미스터 초밥왕으로 불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이 원류이고 우리나라(가자미식해 같은 것)를 거쳐 일본에 들어가 오늘의 스시가 된 초밥을 안효주씨는 어떤 과정으로 만들고 있을까.


초밥집을 들어가면 앉을 수 있는 곳은 대개 초밥을 만드는 주방 바로 앞의 바와 테이블 해서 두 곳이다. 여러분은 주로 어디에 앉으시는지. 만일 조금이라도 맛있는 초밥을 드시기 바란다면 주방 바로 앞에 앉는 것을 권한다. 초밥의 밥은 사람의 체온과 같은 때 가장 맛있는데 약 36도 정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초밥을 지극히 사랑하는 분들은 바에 앉아, 조리사가 말아주는 초밥을 바로 손으로 먹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약간 떨어진 테이블에 앉는다면 그곳까지 가는 몇 초 동안 맛이 변질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초밥을 구성하고 있는 밥, 생선, 고추냉이 등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무엇일까. 혹시 생선이 아닐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안효주씨에 따르면 초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밥으로 한 60% 정도의 비중을 가지고 있으며, 생선은 35%, 나머지 5% 정도가 고추냉이, 간장, 생강 등이다.


밥은 쌀이 좋은 토양에서 난 것이라야 하고 고랭지가 좋다. 안효주씨는 일본의 니이가타에서 생산되는 일본 최고의 쌀 '고시히카리'도 써봤는데 물론 좋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뭔가 부족한 것을 느껴 현재는 쓰지 않고 있다고 한다. 쌀은 처음엔 안성에서 난 쌀을 썼고, 한국으로 들어온 일본산 쌀도 써봤고, 현재는 광양에서 나는 쌀을 쓰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전라도 고창에 더 좋은 쌀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해서 한번 가 볼 생각이라고 한다. 아마 안효주씨의 초밥에 어울리는 좋은 쌀 찾기 여행은 초밥을 만드는 한 영원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한편 좋은 쌀이라고 다 초밥에 어울리는 것은 아닌데 일반적으로 햅쌀은 초밥엔 맞지 않는다고 한다. 햅쌀은 수분이 많기 때문인데 전분이 빨리 녹아서 밖으로 배출된다는 것이다. 고슬고슬한 밥을 만들기 힘든 것이다. 다시 말해 초밥은 밥이 질어서는 안 되는 것이고 초밥은 입에 넣으면 침과 섞여 어우러져야 하기 때문에 묵은 쌀이 좋은 것이다.


이렇게 쌀을 대하는 데 있어서도 까다로운데 밥을 짓는 방식은 어떨까. 물은 수돗물이 아닌 미네랄이 함유된 생수나 약수를 사용한다. 물론 밥을 짓는 과정도 일반 식당에서 짓는 것과는 다르다. 밥을 짓는 과정은 3시간 정도 걸린다. 일단 쌀을 씻을 때 빨리 씻는 게 중요하다. 천천히 씻으면 쌀 특유의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첫 번째 물은 빨리 버리는 게 중요한데 그 물을 계속 쓰면 뜨물에서 나온 게 다시 쌀로 스며들기 때문이다. 두 번째 물도 빨리 씻고 버리고, 세 번째 물부터는 깨끗한 물이 나올 때까지 씻는다. 이렇게 해서 쌀을 씻으면 체에 밭쳐서 물을 빼내는 작업에 들어간다. 물을 빼는 시간은 계절마다 다른데 봄가을엔 40여분, 여름엔 30여분, 겨울엔 1시간 정도 뺀다. 밥솥에 밥을 짓는데 처음엔 센불, 끓으면 약불, 뜸은 센 불로 확 하고 약 불로 마무리한다.


다시 말해 물이 넘쳐흐를 때까지는 센 불이고, 수분이 없어지면서 약 불이고, 뜸을 센 불로 하면 수분이 증발되면서 결국 밥알이 서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밥을 짓는 데 사용되는 양은 한 번 지을 때 3.2킬로그램이 기본이다.


밥을 지었으면 이제는 초양념을 뿌리는 과정이다. 초양념은 밥이 뜨거울 때 뿌려야 한다. 식은 다음에 초양념을 부으면 밥 안으로 완전하게 퍼지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그냥 보통 그렇게 하듯이 주걱으로 마구 젓는 것이 아닌 주걱을 모로 세워서 저어가며 식혀야 한다. 이 과정은 초 안에 있는 수분을 날리는 과정인 것이다.


초양념은 식초, 소금, 설탕으로 이루어지는데 식초는 일본에서 들여온 것을 쓰고, 소금은 3년 동안 간수를 뺀 것이며, 설탕은 쓰지 않고 있다. 안효주씨의 소금에 대한 열정도 대단해서 얼마 전엔 볼리비아 소금을 주문해 놓았다고 한다. 이런 기나긴(?) 과정을 거쳐 초밥이 준비되면 이제는 생선이다. 스시효에는 수족관이 없다. 활어를 쓰지 않는 것이다. 숙성이 기본이다. 예를 들어 광어는 죽은 지 12시간 후가 맛이 가장 좋다고 한다. 생선에 함유되어 있는 이노신산이라는 맛을 내게 하는 성분이 있는데 이것이 12시간이 되어야 최고조에 달하기 때문이다.


안효주씨는 매일 아침 수산시장에 가서 물건을 고른다. 자연산인 경우에는 노량진 수산시장을 주로 가는데 일본의 초밥 장인들은 생선과 대화를 하면서 좋은 생선을 고른다고 하지만 자신은 아직 그 경지까지는 달하지 못했다고 한다. 생선을 사오면 가게로 와서 포를 뜨고 나서 페이퍼 타월로 싸서 수분을 제거하고 일본에서 가져온 박스에 보관을 한다.


생선은 크다고 좋은 게 아니다. 밥하고 균형이 맞는 게 중요하다. 가끔 회전초밥집에서 초밥을 먹을 때 밥에 비해 생선이 접시의 양 끝에 닿을 정도로 긴 것들을 말하는 것이다. 초밥을 삼키고 나서 어느 순간 밥은 이미 넘어가고 생선만을 씹고 있다면 그 초밥은 생선이 밥에 비해 커 조화에 실패한 것이다.


재미삼아 에서 나오는 '밥알 개수 정확하게 집기'에 대해 물었더니 의외로 당연하다는 듯한 대답이 돌아온다. 보통의 손님들의 경우 밥알 개수는 16그램 350알 정도가 가장 적당하다고 한다. 손님의 체격이나 입 크기를 봐서 밥알 개수를 조절한다.


초밥을 먹는 방법은 몇 가지 간단한 원칙만 있으면 된다. 첫째, 주방 바로 앞에 앉아 있다면 손으로 먹는 게 기본이다. 둘째, 간장은 밥알 쪽이 아닌 생선에 묻혀야 한다. 밥이 간장을 흡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꼭 이래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권장하는 먹는 순서는 담백한 흰 살 생선부터 붉은 살, 조개, 알 등과 푸른 생선(고등어, 전어 등)의 순으로 먹는다. 맛이 엷은 것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드는 초밥 요리사 안효주씨에게 던진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뭐냐는 질문에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첫째는 위생이고, 둘째는 정성, 마지막이 맛이라는 것이다. 어떤 음식이 아무리 맛이 있다 해도 안전하지 않거나 불결하다면 가치가 없다고 본다는 것이다.


이제 미스터 초밥왕을 보면서 던진 질문에 대해 답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과연 좋은 음식이란 어떤 것인가.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식사를 대접한다고 했을 때 1인분에 10만원짜리 식사를 대접하는 게 좋은 것인가, 1인분에 5천원짜리가 좋은 것인가. 사실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대접을 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을 던져보는 것은 어떨까. 10만원이 넘는 을 보는 것과 7천원을 주고 을 보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 문화인일까. 당연히 이쪽이다 하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결국 좋은 음식을 구분해내는 방법은 만드는 사람과 먹는 사람 사이의 교감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건 아닐까.


안효주씨가 대표로 있는 에서 안효주씨가 만드는 초밥의 1인분은 12만원 정도라고 한다. 내가 가끔 용기를 내서 우리 동네에 있는 회전초밥집을 가게 되면 세 식구가 서로 눈치를 보며 돌아가는 접시의 색깔에 민감해 하며 천천히 먹어도 나오는 게 5,6만원인데 안효주씨의 초밥은 거의 네, 다섯 배에 달하는 가격이니 솔직히 엄두가 나지 않는 게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어떤 분야든 명품의 세계가 있는 것처럼 초밥의 세계에도 명품의 존재를 인정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밥 짓기만 2년을 하고, 주방에 들어가서 손님에게 초밥을 쥘 수 있기까지 최소한 10년은 걸린다는 초밥요리사의 세계와 끊임없이 더 좋은 재료와 최고의 맛을 만들어내기 위한 그들의 피 말리는 노력을 생각하면 최고의 초밥에는 그에 어울리는 가격도 있어야 하진 않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쇼타와 요리 시합을 하는 100엔 초밥집에서 일하는 오사카의 대표 사카다의 모습이 자꾸만 어른거리는 것은 왜일까?

/김영주 기자

Shar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