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연재/ 약알고먹자] 위험천만 ‘향정신성’ 비만치료제

[한겨레연재/ 약알고먹자] 위험천만 ‘향정신성’ 비만치료제 
 
 
 
봄인가 싶더니 어느덧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벌써부터 민소매 옷차림이 눈에 띄는 것이 올여름 더위도 맹렬할 것으로 보인다. 더위도 더위지만 이 여름을 맞이하면서 또 얼마나 많은 몸들이 ‘다이어트’ 때문에 고생할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언제부터인가 여름을 맞이하기 위한 필수 의식(?) 가운데 하나로 다이어트에 돌입하는 여성들을 약국에서도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그들 대부분은 건강을 위협하는 비만 상태가 아닌데도 팔뚝 살을 빼거나 허벅지와 종아리를 더 날씬하게 하려는 등의 이유로 병원과 약국을 찾고 있다. 대중매체에서 ‘얼짱’ 또는 ‘몸짱’을 부추기면서 더욱 심해지는 것 같다. 더 심각한 문제는 억지로 살을 빼기 위해 많은 여성들이 먹고 있는 살 빼는 약의 내용이다.

2007년 7월~2008년 5월 소비자시민모임이 비만 치료제에 대한 소비자들의 사용 행태 등을 조사한 결과 비만 치료용으로 처방된 약의 80.4%에 마약류(향정신성 의약품)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향정신성 의약품은 중추신경계에 작용해 환각, 각성, 중독성을 일으키는 약이다. 따라서 엄격한 기준에 따라 어쩔 수 없을 때에만, 그것도 적절한 기간만 써야 한다. 하지만 다이어트 약으로 쓰인 향정신성 의약품은 제약회사의 영업 전략과 손쉽게 살을 빼려는 사람들의 욕망이 맞아떨어지면서 폭발적으로 소비됐다. 살 빼는 데 쓰인 향정신성 의약품 생산 실적이 2001년 3억원에서 2006년 345억원으로 집계됐을 정도다.

더욱 놀라운 것은 뇌전증(간질)에 쓰이는 ‘토피라메이트’가 식욕억제용으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토피라메이트는 자살 충동 및 유발 위험성이 있어 뇌전증 환자에게도 신중하게 쓰는 약이다. 이 약의 부작용인 식욕 감소 등을 이용해 미국에서 비만 치료제로 임상시험을 하다가 ‘주부 치매’라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생기기도 했다. 물론 임상시험은 중단됐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지금도 버젓이 다이어트 약으로 쓰이고 있다.

이렇게 위험한 약들이 비만 치료에 마구 쓰이고 있는 데에는 제약회사의 영업 전략은 물론 의사, 약사 등 의료공급자, 이를 감시해야 하는 보건당국의 허술함 등이 모두 문제다.

이번에는 꼭 다이어트에 성공해야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우리의 건강한 삶을 위해 비만 클리닉으로 가려던 발걸음을 돌려 즐겁게 땀 흘리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운동을 하러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김현주/약사·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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