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연재/ 약알고먹자] 신약에 밀리는 10원짜리 혈압 명약

[한겨레 연재/ 약알고먹자] 신약에 밀리는 10원짜리 혈압 명약 
 
 

 
과학과 의학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로봇이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길을 잘 몰라도 내비게이션이 우리를 목적지로 친절하게 안내한다. 이처럼 똑똑한 신제품들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느 사이 ‘구관은 퇴물, 신관이 최고’라는 확실한 신념을 갖게 됐다. 질병을 치료하는 약도 마찬가지이다. 오래되고 값이 싼 약들은 점차 퇴물이 돼 사라지고, 값비싼 신약들이 약장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고혈압은 전세계 인구 가운데 10억명을 괴롭히는 질병으로, 한국에서도 성인 3명 가운데 1명이 이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제약업계에서는 새로운 고혈압 치료제를 개발했다는 소식이 끊이질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수백 가지의 고혈압약이 팔리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1960년대에 고혈압 관리를 위해 최초로 쓰인 이뇨제이다.

하지만 어느새 우리 주변 사람들이 먹는 고혈압 치료제 가운데 이뇨제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일이 됐다. 이뇨제가 최근에 나온 신약들보다 효과가 떨어지거나 부작용이 많기 때문일까? 답은 모두 ‘그렇지 않다’이다.

1994~2002년 미국 국립심폐혈액연구소가 후원해 4만명이 넘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를 보면 이뇨제는 혈압을 낮추는 효과뿐만 아니라 혈압 때문에 생기는 심장 및 혈관 질환을 예방하는 데 있어 다른 신약들보다 탁월한 효과를 보인 것으로 나온다. 값도 싸면서 효과도 크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이 연구 결과에 따라 각 국가는 고혈압약을 쓸 때 처음 선택하는 약으로 이뇨제를 사용할 것을 권고했으나, 신약의 도도한 물결 앞에서는 백방이 무효한 상황이다.

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이유는 이뇨제가 단돈 10원일 정도로 싸기 때문이다. 이에 견줘 신약은 약값이 최대 백배가 넘는 것도 있다. 쉽게 말해 10원짜리 약 하나에서 나오는 이윤은 대략 1천원쯤 하는 신약에서 나오는 것에 비교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10원짜리 명약이 사라지고 있다. 유행처럼 왔다 사라지는 약들의 흥망성쇠가 그 효과나 안전성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이윤이 그 안에서 만들어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10원짜리 이뇨제가 그런 진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최근에 나온 것이 늘 건강에 최고는 아니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강아라/약사ㆍ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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