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 대만에서 배우자.


한겨레 10/13일 기사 한번보세요.


건강보험, 대만에서 배우자


정부 의지·의료계 협조로 선진 의보 결실

우리나라가 1989년 모든 국민의 손에 의료보험증을 쥐여준 이른바 전국민 의료보험 제도를 달성하였을 무렵, 대만은 고작 국민의 절반만이 의료보험증을 직종 조합별로 보유한 의료보장 후진국이었다.

대만 보건당국인 위생서는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세계 각국의 의료보장 제도를 조사하러 다녔으며, 우리나라도 수시로 드나들었다. 그들의 노력은 95년 전민건강보험법으로 열매를 맺어,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의료보장 제도를 둔 나라로 우뚝 섰다. 이제 의료보장 후발국들이 대만의 제도를 배우기 위해 몰려들고 있고, 대만 보건 당국은 이들에게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잘 짜인 선진 의료보장 제도가 나라의 위상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대만 건강보험 제도가 세계적 제도로 발돋움하는 동안 우리는 의료보험의 관리운영 방식을 통합할 것이냐, 그대로 조합별로 할 것이냐를 두고 지난한 논쟁만 일삼았다. 그러는 사이 89년 이래 지난 15년 동안 건강보험 제도의 보장성은 여전히 50%대에 머물고 있다. 반면에 대만 전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은 90%이고, 암 등 중증질환자는 사실상 무상의료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의료의 기술적 수준이 세계적으로 높은 나라에 속한다. 대만의 의료수준도 우리보다 결코 뒤떨어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대만의 국내총생산 대비 국민의료비 수준은 2003년 현재 6.0%로 우리나라의 6.2%보다 낮다. 보험료는 우리보다 조금 더 내지만 보험 혜택인 보장성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대만 의료체계가 그만큼 더 효율적이란 얘기다.

왜 그럴까? 대만 정부는 우선 보건의료의 사회 전체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강력한 정책 개입을 추구하고 있다. 의료계도 소위 통제된 의료수가 속에서도 대국적 견지에서 국민건강을 위해 협력할 때는 확실히 협력하고 있다.

공공부문의 비중이 보건의료 재정과 공공의료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우리보다 크다는 사실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의료비 지출 중 공공부문 지출의 비율은 53%(2001년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최저수준)로, 대만의 65%에 비해 크게 낮고, 공공의료의 비중도 우리나라가 병상 기준으로 10% 수준이나 대만은 33%나 된다. 대만의 대형 병원들은 거의가 다 공공병원이다.

우리는 지난 5년 동안 7개 질병군에 대해 시범사업을 해오던 포괄 수가제의 본 사업 시행을 무작정 미루고 있다. 과잉진료를 부추기는 행위별 수가제의 병폐는 누구나 인정하고 있되, 그 해법을 토론하는 데는 정부도 의료계도 나서려 하지 않는다.

의료계는 연간 진료비 총액을 미리 정해 운영하는 방식의 총액계약제도 반대하고 있다. 정부는 이것들이 필요함을 알고는 있으되, 이해 당사자들의 처지를 고려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대만은 단일보험자 방식의 통합 의료보험을 선택하였고, 세계적 수준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이제 대만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암 등 중대 질병에 대해 과감하게 무상의료의 이상을 거의 실현하고, 포괄 수가제를 53개 질병군에 두루 적용하였으며, 총액계약제를 모든 의료 분야에 걸쳐 시행하고 있는 대만 전민건강보험의 모습에서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가 나아가야 할 길을 이미 보고 있는 것이다.

이상이 /제주대의대 의료관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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