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입장에서 검토해 볼 건강보험체계
(현상, 원인과 대안을 중심으로)
이평수 : 국민건강보험공단 가입자지원상임이사
대한의사협회(이하 “의사협회”)가 주최한 제12차 의료정책포럼으로 “국민을 위한 건강보험체계 개편방안” 토론회가 지난 9월 11일에 개최되었다. 당시 토론자로 참여한 필자는 발표 및 토론 과정에서 건강보험제도에 대한 문제인식과 해결방안에 상당한 시각 차이가 있음을 느꼈다. 이에 따라 의사들과 의사협회에 건강보험체계 개편에 관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몇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본고에서 제시하는 의견은 보험자 등 특정 분야의 입장이 아니고 사회제도로서 건강보험의 건전화를 위한 객관적인 의견임을 밝혀둔다. 아울러 이 제안이 우리나라 건강보험 및 의료의 발전은 물론 의사들과 의사협회의 발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Ⅰ. 의사들이 건강보험에 대하여 느끼는 현상과 원인은?
포럼의 발표 및 토론 뿐 아니라 그간의 보도와 발언 등을 종합해 보면 의사들이 느끼는 직접적인 현상은 의료의 왜곡과 수입의 감소이고, 간접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의의(醫醫)간 갈등이다.
의료의 왜곡 현상은 의료의 본질을 외면하고 돈이 되는 행위를 선호하는 의사들이 늘어나는 추세라는 것이다. 전공의 모집 시 개업이 용이하고 수입이 보장되는 일부 진료과에 지원자들이 집중하고, 수련과정이 어렵고 수입이 보장되지 않는 진료과는 기피하여 미달사태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존의 개원들도 자신의 전문과목과 상관없이 돈이 되는 행위를 찾아 연수를 받으며, 심지어는 건강보조식품의 판매까지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결과 장기적으로 일부 진료과는 전문의가 없어서 진료가 불가능한 사태가 초래할 것이며, 의료의 질서가 파괴될 것이라는 것이다.
수입 측면에서는 의약분업 이후 외관상으로 일시적인 수입 증가가 있었으나, 이후 지속적인 감소로 의료업의 유지가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의원 및 병원의 폐업사태가 일어나고, 일부 의사는 세상을 떠나는 극단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현상의 지속은 국민들이 의료서비스를 받을 기회를 잃게될 것이라는 우려도 하고 있다.
“의의(醫醫)간 갈등”은 의사들이 직접적으로 나타내지는 않지만 상당히 심각한 현상으로 보인다. 갈등의 대상도 다양하다. 크게는 의원과 병원 간, 의료행위의 행태에 따라 과도하게 수입을 추구하는 의사와 의료의 본질을 유지하려는 의사 간, 이 결과 수입의 다소에 따른 의사 간, 전문진료과 간 그리고 세대간의 갈등도 있다. 요즘 들어서는 의료에서도 'perfect game'이라는 신조어가 나오고 있다. 하루 종일 한 명의 환자도 진료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경우 환자가 많아 수입이 좋은 의사들과의 심적인 갈등은 심각한 수준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의사들은 그 원인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우선 건강보험제도의 도입 시부터 의료를 공공재로 간주하고 의료의 사회성을 강조하는 의료에 대한 시각이 근본적으로 잘 못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시장경제의 원리 보다는 규제와 처벌 등으로 의료를 통제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재정이 부족한 상태에서 원가에 못 미치는 수가로 진료행위 및 진료비 청구를 규제하는 것이 의사들이 겪는 고통의 주원인이라는 것이다. 또한 상대가치점수의 진료과목 간 불균형도 의의간 갈등 및 의료왜곡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내부적 조정기전이 작동하지 못하는 것도 2차적인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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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의사협회가 제시하는 건강보험체계 개편 방향에 대하여
의사협회는 위에서 본 현상과 원인의 치유에 대하여 건강보험체계의 개편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제시된 주된 내용과 그에 대한 의견은 다음과 같다.
방향 1. 건강보험의 패러다임을 전환하여야 한다.
인구, 질병, 소득, 의료수요 및 국내외 경제환경 변화 등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효율성 제고를 위한 시장적 접근이 필요하며, 이를 위하여 민영화, 분권화, 책임의식 및 경쟁의식 강화가 필요하다.
☞이러한 개념의 적용은 제도의 운영이라는 측면에서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제도 자체 즉, 건강보험이라는 사회보험은 효율성 보다는 형평성이 강조되어야 한다. 건강보험은 능력에 따라 부담하고 필요에 따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건강보험제도의 형평성을 전제로 건강보험제도의 운영에 효율성 등의 개념이 도입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나, 제도 자체의 이념이 효율성일 수는 없다.
방향 2. 국민의 의료보장을 위하여 보장율을 높이고 의료수가를 높여서 의료의 질을 향상시켜야 한다.
이를 위하여 건강보험은 기본적인 필수의료서비스만을 담당하고 고급서비스는 민간보험을 도입하여 국민이 직접 부담하게 하여야 한다. 또한 재정을 확충하여 저소득층과 노인에 대한 보장성을 강화하고 국가보건서비스는 건강보험과 달리 정부의 예산으로 제공하여야 한다.
☞의료보장의 보장율을 높이자는 것에 대해서는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방법론에는 차이가 있다. 필수의료서비스만을 건강보험이 담당하고 고급서비스는 민간보험으로 해결하는 방안 중 필수와 고급의 구분에 대한 실질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어야 할 의료서비스에는 건강을 위하여 제공되는 의료서비스 중 안전성과 유효성은 물론 경제성이 입증된 서비스가 포함되어야 한다. 보장율은 이들 서비스를 제공받을 경우 어느 정도를 건강보험이 부담하는 가가 될 것이다. 따라서 건강보험의 필수서비스와 대칭되는 서비스는 고급서비스가 아니고 경제적이지 못한 낭비적인 서비스가 될 것이다. 이러한 의미의 고급서비스라면 민간보험의 적용을 상관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보험제도 외에 보건의료정책 차원에서 소위 고급의료에 대한 안전성과 유효성은 물론 경제성에 대해서도 공식적인 검증이 필요할 것이다.
의료수가를 높여서 의료의 질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것은 바람직할 수 있다. 그러나 의료수가의 수준을 정하는 기준은 재검토되어야 한다. 또한 공공보건서비스는 건강보험에서 제외하자는 것도 제기할 수 있는 사항이다. 그러나 현재의 건강보험이 전국민의 건강을 보장하는 것이 목적임을 감안하면 그 수단으로서 예방과 증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국가사업과 건강보험 사업이 얼마나 유기적인 연계성을 유지하면서 수행되느냐 하는 것이다.
방향 3. 의료산업의 육성과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하여 규제개혁과 왜곡된 제도의 정상화가 필요하다.
구체적으로는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는 요양기관의 신청에 따른 계약제로 전환하고, 수가는 최소한 원가를 보상하여야 한다. 더불어 건강보험에서 모든 의료행위를 규제하여 비급여의 적용을 제한해서는 안 되며, 복잡다기한 급여기준 및 진료비심사기준 등의 합리성과 투명성이 제고되어야 한다.
☞요양기관계약제는 장기적으로는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적용시기, 계약의 내용, 당사자 및 협상의 방법 등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수가의 원가보상에 대해서는 어떤 원가의 보상이냐에 따라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건강보험에서 모든 의료행위를 규제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는 이견의 소지가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 상황은 의료행위의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신뢰할 만한 입증 기능이 없고, 경제성 또한 입증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입증이 되지 않은 의료행위로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의료행위를 대체하거나 추가적으로 시행되는 것을 규제하는 것은 건강보험 가입자 보호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가 될 것이다. 급여기준이나 심사기준의 합리성과 투명성 제고 또한 당연한 요구이다. 그러나 행위별수가를 적용하는 현 상황에서 모든 의사들이 인정하고 만족하는 수많은 경우의 기준 마련은 가능하지 않다. 모든 의사들이 만족하는 기준을 마련하는 방법의 극단적인 상황은 아예 기준을 없애는 것이고, 보다 현실적인 대안은 이견을 좁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 또한 제도운영 측면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방향 4. 통합공단 조직은 운영의 효율성을 위하여 수 개의 조직으로 분권화하고, 건강증진사업과 수진자조회 등 불필요한 기능 확대를 중단하여야 한다.
☞통합공단은 전국민을 대상으로 건강을 보장하는 보험자이다. 따라서 공단은 국민의 건강과 가계를 보장하면서 재정도 효율적으로 운영하여야 한다. 통합공단이 조직이 거대하여 관료화하고 운영의 비효율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있다. 효율성은 하나의 조직 내지 기관을 기준으로 평가하면 이러한 지적은 맞을 수 있다. 그러나 국가사회적인 측면에서 볼 때 개개 조직이 효율적이면 이들의 집합체로서 국가사회 전체가 효율적인가 하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의료기관들 각각이 효율적으로 운영되어 수익성을 제고하면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건강보험을 위하여 지금 보다 많은 조직으로 분화된다면 전체적인 인력의 증가, 자격관리 및 이에 따른 보험료 징수의 중복성 그리고 증진과 예방을 비롯한 보험급여업무의 범위 축소 및 지속성의 한계 등이 예상된다. 더불어 사회연대성 및 보험재정 운영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효율성의 저하가 예상된다. 보험재정이나 보험료 조정 등이 통합 이전에 국가 차원에서 문제로 제기되지 않았던 것도 조합단위 효율성만을 추구하였기 때문이다.
공단이 건강증진사업을 수행하는 이유는 이미 언급한 바 있고, 수진자조회 또한 가입자의 보호를 위한 보험자의 의무이행 방법의 하나이다. 그러나 개인의 정보보호 및 무분별한 조회로 요양기관의 진료를 방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Ⅲ. 서로가 접근할 수 있는 건강보험체계를 위한 제안
건강보험은 국민 개인의 건강과 가계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이다. 그러나 제도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재정의 안정을 도모하여야 한다. 이를 위하여 건강보험은 제도의 형평성을 전제로 제도 운영의 효율성을 추구하여야 한다. 제도의 효율적 운영은 건강보험체계의 합리적 개편은 물론 보건의료공급체계의 합리적 개편도 전제되어야 한다. 이 같은 전제하에 건강보험과 보건의료공급체계의 개선방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1. 건강보험의 재정은 확충되어야 한다.
건강보험재정의 확충은 가입자인 국민에 대한 적정급여와 공급자인 의료기관에 대한 적정보상의 전제이다. 가입자들이 필요로 하는 수준의 급여를 제공할 수 있어야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확보되는 것이고, 공급자에 대한 적정보상이 있어야 가입자들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적정급여는 각 국가의 경제적 여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의료비의 70-80%를 보험이 보장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보고 있다. 적정보상 또한 사회적 합의가 요구되나 의료기관이 사회적 기관으로서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어야 할 개념적인 수준이다.
그러나 가입자인 국민 및 국가가 부담할 수 있는 재정의 규모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보험료 부담과 보장의 수준은 물론 수가수준에 대해서도 사회적 합의 등 상황에 따른 적정성이 거론되기 마련이다.
2. 건강보험수가(보상)수준은 조정되어야 한다.
보험수가 수준은 최소한 원가를 보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원가의 개념은 정립되어야 한다.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현재 발생하는 비용을 보상하는 실제원가의 반영을 보상을 요구할 것이다. 실제원가의 반영을 위해서는 해당 의료행위가 효율적으로 제공되며, 해당 기관이 효율적으로 운영된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즉, 필요 이상의 자원을 투입하거나 투입된 자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낭비적인 비용을 모두 원가로 보상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비용의 투명성이 확보되어야한다. 의료기관이 사용한 비용의 용도나 수준이 적정하다는 것이 객관적으로 입증되어야 한다. 의료기관의 다양성 또한 문제이다. 의원의 경우도 자원의 투입규모 등 운영규모가 다양하기 때문에 기준을 어떻게 설정하는 가에 대한 문제가 있다. 동일 진료과에서 동일 조건에서 진료하는 환자수가 다를 경우에도 그 기준에 대한 문제가 있다. 이제까지의 의료수가에 대한 논란은 이러한 측면에 대한 객관성 확보에 관한 것이었다. 결국 비용에 관한 객관적인 자료와 비용의 적정성이 확보되지 못함에 따라 원가에 대한 이견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적정 또는 표준원가의 활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의원의 경우 바람직한 형태의 표준의원을 설정하고 해당 의원의 운영에 소요되는 비용을 보상하는 방법이다. 표준의원의 설정 시에는 투입인력과 시설 및 장비의 규모를 정하고, 주어진 조건에서 진료하여야 하고 진료할 수 있는 적정 환자 수를 정한다. 표준의원의 운영에 소요되는 총비용을 바람직한 환자 수로 나누면 환자당 보상(수가)수준이 산정될 수 있다. 물론 표준의원에 적합한 자원의 투입규모와 비용 그리고 적정 환자수에 대한 논란은 극복되어야할 것이다.
결국 수가수준은 객관적인 자료를 근거로 사회적 합의에 의해 결정되어야 할 것이며,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수가의 원가보상이나 적정수가라는 것은 개념으로만 남게 될 것이다.
3. 건강보험 지불제도(보상방법)는 의료 정상화와 의료공급의 효율화를 위하여 개편되어야한다.
지불제도는 의료 현장에서는 진료의 양과 질 그리고 진료에 대한 보상의 적정화를, 보험재정에 대해서는 의료비의 적정화를 그리고 보험관리에 있어서는 관리의 효율화를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현재 활용 중인 행위별수가제는 이러한 조건에 적합하지 못하다.
행위별수가제는 의료현장에서 진료의 양을 늘리는 기전으로 작용하나 질의 보장에는 한계가 있다. 양의 증가가 질의 향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양적 통제가 불가피하며 그 결과 적정진료를 추구하는 많은 의사들에게 보상의 적정성에 대한 불만을 갖게 한다. 보험재정 측면에서도 양의 증가는 재정의 증가로 연계되어 재정의 예측과 통제 등 관리의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보험관리 측면에서는 보다 심각하다. 진료비는 행위의 종류와 양에 따라 결정되므로 제공된 행위의 종류와 양의 적정성에 대한 논란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급여기준이나 심사기준이 그것이며, 의사들이 요구하는 심사기준의 합리성과 투명성, 진료의 자율권, 규격진료 및 의사에 대한 규제 등 모든 불만이 행위별수가제라는 지불제도에서 연유된다.
따라서 현행 행위별수가제는 개편되어야 한다. 그러나 위에서 제시한 지불제도의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제도는 없어서 모든 지불제도에는 단점의 보완을 위한 추가적인 조치를 전제로 한다. 과소진료의 우려를 해결하는 질 관리 방안을 도입하는 것을 전제로 할 경우 포괄수가제가 우선 거론될 수 있다. 포괄수가제는 위에서 제시한 행위별수가제의 단점을 대부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의료계에서 불만이 많은 신기술에 대한 부분도 해결될 수 있다. 포괄수가제는 정해진 범위 내에서 안전선과 유효성을 전제로 한 진료의 자율권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지불제도의 개편방향은 우선 현행의 행위별수가 중 포괄이 가능한 부분은 일당, 방문당, 환례당 또는 두당 등으로 최대한 포괄화 하고 나머지는 행위별수가를 적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포괄수가제의 정착과 함께 총액관리(계약)제가 고려되어야 한다. 이 경우 포괄수가제는 총액을 배분하는 기준으로 활용될 것이다.
4. 의료공급체계는 효율적으로 개편되어야 한다.
의료공급체계는 관련 인력, 시설 및 장비 등의 자원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의료공급체계의 효율성이라 함은 인력 등 자원의 전체적인 양이 충분하며, 이들 자원의 지역적 분포와 구성이 적정하며 자원간 기능과 역할의 분담과 연계가 적정하여 국민이 필요로 하는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경제적으로 제공하는 상태라 할 수 있다.
건강보험의 주된 기능이자 목표인 건강에 대한 보장은 의료공급체계를 통하여 달성할 수 있다. 따라서 의료공급체계는 건강보험의 전제이자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의료의 공급이 과잉일 경우에는 의료의 오남용으로 인한 보험재정의 낭비가 초래되며, 과소일 경우에는 가입자인 국민이 필요로 하는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거나 부실한 서비스를 제공받는 문제가 발생한다.
요양기관지정제와 행위별수가제를 활용하는 우리의 현실은 공급의 증가를 초래하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재정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리 현실적로는 매년 3,000명이상의 의사들이 의원을 새로이 개설하고 있고, 이들은 기존의 의원과 동일하거나 보다 많은 수입을 기대한다. 이들의 기대가 충족되기 위해서는 건강보험에서 매년 1조원 정도의 추가 재정이 필요할 것이다. 국민들의 의료이용이 제한을 받지 않는 상황에서 급여의 확대 등 별다른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이 정도의 추가 재정이 바람직할 것이냐 하는 의문은 당연할 것이다.
건강보험체계 뿐 아니라 국가의료체계 차원에서도 의료공급체계의 효율성은 강조되어야 하고 현재 당면하고 있는 의료의 왜곡, 재정의 낭비 및 의료 관련 당사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방안이기도하다. 현 단계에서 재정을 늘려야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재정을 아무리 확충한다 하더라도 건강보험 뿐 아니라 의료비로 투입할 재정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한정된 재정을 적정하게 배분하여 활용하여야 하는 것은 지속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이자 당면과제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의료공급체계의 효율화를 위한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의사인력의 양적 적정성에 대한 판단과 그에 대한 실천적 대안이 필요하다. 일부에서는 선진국에 비하여 의사인력이 부족하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보건의료 영역에서 의사들의 역할과 활동방법이 고려되어야 한다. 우리 현실과 같이 의사들이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만 전념하고, 의사들 간에 무한 경쟁이 일어나는 경우라면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의사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의사들이 진단과 치료 외에 예방과 증진활동을 적정 인구 집단을 대상으로 실시한다면 보다 많은 의사가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현재 상황의 지속 여부와 이에 따른 의사인력의 공급방안에 대한 대안이 시급하다.
또한 국가의료체계 뿐 아니라 의사들의 입장에서도 의사인력의 지역적 분포도 고려하여야 한다. 국가 전체적으로는 의사인력이 과잉이더라도 지역적으로 부족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도 대도시에 의사인력이 집중되어 있고, 의사간 경쟁도 치열한 상태이다. 외국의 경우는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지역단위로 의사 수를 제한하는 등의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따라서 의사인력의 양적인 측면에서 지역적 분포의 균형을 유지하는 방안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둘째, 의사인력 중 전문의인력은 수요를 판단하고 그에 상응하는 수의 인력을 양성하여야 한다. 현재의 전문의 양성은 사회적으로 의료공급에 필요한 수에 의하기 보다는 수련병원의 수련능력에 따라 결정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필요이상의 전문의가 배출되고, 이들은 수련 후 전문의로서 기능하지 못함에 따라 인력양성의 경제적 손실은 물론 의료의 왜곡과 의사간의 갈등 등 사회적 문제를 유발하고 있다.
한편, 이러한 현상을 인식하고 해결방안을 도출하는 시각은 매우 심각한 상태이다. 건강보험 수가가 낮아서 일부 진료과를 지원하는 의사들이 없고, 이를 방치할 경우 우리나라 의료체계에 큰 차질이 올 것이라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우선적으로 생각해 볼 것은 진료를 받아야 할 환자(수요)가 많음에도 이들을 진료할 전문의(공급)가 부족한 것이냐 하는 것이다. 현실은 이와 반대로 수요(환자)가 없어서 수입이 떨어지는 현상이다. 그럼에도 수입의 보전을 위하여 해당 진료과에 해당하는 행위의 수가(상대가치)를 인상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적정 수의 환자진료에도 불구하고 수입의 문제가 있는 경우에는 당연히 수가 조정이 필요하다. 또한 환자수의 충분성이나 수입의 문제 보다는 수련과정이나 진료과정 상 어려움으로 사회적으로 필요한 만큼의 전문의 확보가 어려울 경우에는 근무조건의 개선, 보조인력이나 경제적 지원 등 별도의 대책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의사 또는 의료기관간 기능과 역할의 분담과 연계체계가 구축되어야 한다. 현 의료체계는 일반의와 전문의, 의원과 병원 심지어는 의원과 대학병원 간에도 경쟁의 상태에 있다. 이 결과 일부 의사는 “perfect'를 당하는 현상도 일어나고, 의료행위의 왜곡과 중복진료로 인한 의료의 신뢰 추락 및 의료비의 낭비가 발생하고 있다. 이는 의료인 및 의료기관간 기능과 역할의 분담도 없고 연계체계는 더더욱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우선 의원 간의 역할분담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일반의원과 전문의원을 구분하고, 일반의원에 대해서는 주치의등록제의 제도화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일반의와 내과 등 일부 진료과를 대상으로 주치의등록제를 우선 시행하고, 타과의 전문의도 희망에 따라 포함하는 방안이 있다. 주치의제도의 도입은 perfect를 방지하고 의료의 정상화는 물론 향후 의료시장개방에도 대비책이 될 것이다. 이 외에 그간 논의되었던 개방병원, 병원이나 보건기관 시설을 의원에 임대하는 방안의 구체화는 물론 더 나아가 의원과 병원의 기능과 개념을 정립하여 차별화할 필요도 있다.
의사들이 겪는 현실적인 어려움은 위에서 제시한 제안들이 조화롭게 개선될 때 근본적인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의료공급체계의 효율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건강보험 재정의 필요 이상 증가와 낭비를 억제할 수 없을 것이다. 동시에 지불제도의 개편 없이는 수가의 원가 보상은 요원할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건강보험체계와 의료공급체계의 조화를 이루려는 결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현재 거론 중인 민간보험, 요양기관계약제, 의료시장 개방 및 의료업에서 영리법인 등의 문제도 이러한 맥락이 감안되어야 한다.
Ⅳ. 의사와 의사협회에 대한 제안
의료는 국민생활에 필수서비스이다. 의사는 필수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가이다. 따라서 필수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가인 의사는 사회적으로 적절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이는 의사 및 의사협회가 사회적으로 신뢰받는 전문가 집단이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 의사 및 의사협회는 지금 당장 개인, 진료과 또는 의원이나 병원의 개별적인 입장 보다는 의료체계 전반을 아우르는 지혜를 발휘하여야 한다. 각자의 입장만을 강조하거나 고수한다면 국민의 신뢰는 물론 바람직한 제도로의 개선도 어려울 것이다. 의사협회는 내부적으로는 높은 도덕상과 자율통제 기능을 확보하여 올바른 의사상을 정립하고, 외부적으로는 전문분야인 의료에 대하여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전문가 집단으로 인정받고 활동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의사 입장에서 검토해 볼 건강보험체계
10월
04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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