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유산유도제는 허가로 완성되지 않는다. 이용단계의 벽을 세우지 마라!

[성명] 유산유도제는 허가로 완성되지 않는다. 이용 단계의 벽을 세우지 마라!

- 원내 조제.원내 투약 방식을 철회하고, 건강보험 급여화하라.

 

지난 7월 이재명 대통령이 임신중지 의약품(이하 유산유도제) 도입 문제의 해결을 주문한 뒤 도입 절차에 속도가 붙고 있다. 오랜 시간 기다려 온 유산유도제가 국내에 도입될 가능성은 커졌지만, 정작 이용자의 손에 닿기까지 또 다른 높은 벽이 세워질 조짐이 보인다. 특히 2년간은 원내 조제로, 그 뒤에는 원외 처방으로 도입을 추진한다는 소식은 우리가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음을 보여 준다.

유산유도제 도입 그 자체는 분명 중요한 변화다. 그러나 도입이 곧 접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장소에서 약을 받을 수 있는지, 누가 조제할 수 있는지, 병원에서 반드시 복용해야 하는지, 몇 차례 의료기관을 방문해야 하는지, 비용은 얼마인지에 따라 약은 허가되고도 사실상 이용하기 어려운 의약품이 될 수 있다.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는 그동안 임신중지의약품의 국내 도입뿐 아니라, 필요한 사람이 실제 이용할 수 있는 조건으로 도입되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하지만 현행 언급되는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원내조제가 기본값이 되지 않아야

유산유도제의 원내 조제에는 여러 우려사항이 존재한다. 첫째, 원내조제 방식은 의약품이 갖는 유용함을 반감시킨다. 대표적으로 일본이 원내조제 방식으로 약을 사용하고 있다. 특히 입원 또는 병상이 있는 시설에서의 관찰 조건 하에 임신중지의약품을 쓰고 있으며, 지정된 의료기관이 매우 제한적이다. 또한 최소 3회 이상 병원을 방문해야 하는 등 당사자에게 불편함을 강요하여 강력한 장벽이 되고 있다. 원내 조제는 반복 방문과 장거리 이동 부담 때문에 지방 거주자나 노동시간을 조정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큰 장벽이 된다.

둘째, 원내 조제는 비급여 의약품의 가격을 통제하기 어려운 구조를 만든다. 원내 조제로 결정되면 기존에 임신중지 수술을 제공해 온 병원에 약의 가격 결정권을 넘기게 된다. 약의 도입은 임신중지를 원하는 사람들의 경제적 장벽을 낮춰야 하지만, 병원에 가격 결정권이 넘어가면 그런 효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실제로 원내 조제를 실시하고 있는 일본에서는 약물 임신중지에 드는 비용이 수술 비용에 준해 결정되고 있으며, 총 100만 원을 훌쩍 넘는다.

일본 자료에 따르면, 유산유도제 허가 이후 1년간 사용건수는 1,440건이며, 이는 2023년 일본의 전체 임신중지 건수 126,734건 대비 약 0.1% 수준에 불과했다.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일본 방식을 채택하는 것은 정부가 안전한 임신중지가 아니라 어려운 임신중지를 하기 위함과 다름 없다.

그리고 2년이라는 유예기간도 석연치 않다. 정부는 2년이 지나면 원외처방으로 전환된다고 설명하지만, 유예기간에 대한 명백한 사유는 밝히지 않고 있다. 정부가 생각하는 사유가 2년 내에 해소될 수 있는 사유가 아니라면, 우리는 2년 뒤 전환이라는 약속을 결코 믿을 수 없다.

임신중지 의료를 건강보험으로 보장하라

유산유도제의 도입과 함께 반드시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과제는 바로 건강보험 급여화다. 법과 제도뿐만 아니라 경제적 장벽을 낮추는 것도 임신중지를 보장하는 방법일 것이다. 급여화는 임신중지를 필요한 의료로 인정하고 경제적 장벽을 낮추는 핵심 수단이 된다. 세계보건기구의 임신중지 보장을 위한 권고사항이기도 하다.

유산유도제가 도입되면 비급여 시장에서 회사와 병원이 원하는 가격에 약값이 결정될 것이다. 독점적 시장에서 비싼 가격은 당연한 수순이다. 정부가 그냥 시장에 맡겨선 안된다. 건강보험의 급여평가와 약가협상을 거쳐 공적인 가격결정 체계 안에서 관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비급여 상태가 장기간 사용이 지속되면 비싼 가격을 고착되고 의료기관별 가격격차에 따른 혼란은 시민들이 그대로 떠안게 된다. 오랜기간 허가가 지연된 만큼 지금 당장 급여화를 위한 단계에 착수해야 한다.

또한 임신중지가 필수 의료서비스로 사람들에게 인식되기 위해 건강보험 적용은 필연적이다. 건강보험은 단순히 비용을 나누어 부담하는 제도가 아니라, 사회가 어떤 행위를 '필요한 의료'로 공식 인정하는지를 보여주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임신중지를 건강보험에 포함하는 것은 임신중지를 예외적 의료가 아니라 성과 재생산건강 의료의 일부로 공적으로 보장한다는 의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질 높은 임신중지 의료를 단순히 의학적으로 안전한 의료로만 정의하지 않는다. 효과적이고 안전할 뿐 아니라 시의적절하고, 비용을 감당할 수 있으며, 지리적으로 접근 가능하고, 형평성과 당사자 중심성을 갖춘 의료여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임신중지 의료가 여성에게 경제적 곤란을 초래하지 않아야 하고, 다양한 의료 전달 방식과 자가관리를 포함해 실질적인 접근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현재 논의되는 유산유도제 도입 방안은 정작 약을 이용해야 하는 사람의 현실을 얼마나 고려하고 있는가.

의약품의 성공적 도입은 필요한 사람의 손에 실제로 의약품이 도달할 때 완성된다. 처음 만들어진 이용조건은 이후 제도의 기준이 되고 이를 다시 바꾸는 데에는 더 큰 사회적 비용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유산유도제가 처음부터 ‘제대로’ 도입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 이용가능성을 보장하라!

 

 

2026년 9월 11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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