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자에게 전가된 '첨단재생'이라는 위험한 베팅
지난 9일, 서울행정법원은 한 줄기세포 치료제를 둘러싼 소송에서 제조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네이처셀의 관계사(알앤엘재생의학연구소)가 20년에 걸쳐 개발한 퇴행성관절염 치료제 '조인트스템'의 품목허가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반려하자, 회사가 그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낸 소송이었다. 환자 자신의 지방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하여 배양한 뒤 무릎에 주사하는 이 치료제는 3상 임상시험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효과를 보였다. 법원은 그 점을 근거로 식약처의 반려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허가 심의 과정의 회의록을 들여다보면, 판단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의약품을 허가한다는 것은 본래 이익(효과)과 위험(위해)을 저울 양팔에 올려 무게를 다는 일과 같다. 심의에 참여하여 허가를 반대했던 위원들이 주목한 것도 아마 그 저울이었을 것이다. 한 전문가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통증 점수가 한 칸 정도 줄어든 정도라면 수술을 기준으로 의미 있는 차이라 보기 어렵다'라는 요지의 지적을 했다.
더 큰 문제는 저울의 반대 편인 '위험'의 무게이다. 이 줄기세포 치료는 환자의 몸을 절개해 지방세포를 채취하는 침습적 시술을 동반한다. 게다가 세포 배양과정을 거쳐, 무엇보다 몸속에서 끝없이 증식할 가능성을 품은 '죽지 않는 세포'를 관절에 집어넣는다. 일반적인 진통제나 연골 주사와는 위험의 성격 자체가 다르다. 효과가 기존 치료제와 비슷한 수준이라면, 이 남다른 위험을 감수할 만큼의 더 큰 이익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 회의에 참여한 위원들의 생각이었다.
이 글의 목적이 1심 판결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왜 수많은 사람들이 이토록 줄기세포 치료제에 열광하고 큰 기대를 거는지, 그리고 그 과도한 기대가 의약품 검증의 저울을 어떻게 기울게 만들고 있는지 짚어보려 한다.
제론이 약속했던 불멸
줄기세포가 매혹적인 이유는 '아직 아무것도 아닌' 상태이기 때문이다. 특정 세포로 운명이 확정되지 않았기에 원리상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한히 증식할 수 있다. 이 '무한한 가능성'은 현재 재생의학이 파는 상품의 원천이다. 100여 년 전 병리학자들이 암세포를 '무한히 증식할 수 있는 세포'라 정의하며 두려워했던 것과 달리, 오늘날의 무한 증식은 새로운 기대로 둔갑했다.
이 기이한 역설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회사가 있다. 바로 미국의 제론(Geron)이다. 제론은 1995년부터 인간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뛰어들며 재생의학의 기수로 떠올랐다. 놀라운 점은 이 회사가 수십 년 동안 단 하나의 신약도 상업적으로 성공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가진 것은 미국 특허상표청의 관대한 해석 덕분에 의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배아줄기세포주를 분화시킬 수 있는 배타적 권리와 '실현되지 않은' 수백개 특허, 그리고 '언젠가는 될 것'이라는 약속뿐이었다.
그럼에도 제론은 1996년 나스닥에 상장해 30년 가까이 살아남았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2009년 미국 바이오 전문 매체 <더스트리트>는 제론에 대해 "정말로 탁월하게 잘한 단 한 가지는, 줄기세포 열풍의 파도를 올라타 그 기세로 막대한 돈을 끌어모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제론이 개발한 약물들은 좀처럼 임상 초기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고, 데이터는 번번이 실망스러웠다. 결과가 발표되기 전까지 주가가 오르다가, 결과가 공개되면 주가가 떨어지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특별한 자산 없이 누적적자가 5억 달러에 달했음에도 끊임없이 새 주식을 찍어내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던 동력은 실적이 아니라 '기대'였다.
완성된 약은 팔면 그만이지만 '곧 될 것 같은' 약은 팔지 않아도 값이 높게 매겨진다. 미국 제론이 뚜렷한 결과물 없이도 오랜 기간 회사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무한히 증식하는 줄기세포를 연구한다며, 실체 없는 기대감으로 주식을 무한히 증식시킨 셈이다. 결국 제론은 2011년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을 포기하고 항암제 연구에 돌입했고, 설립 34년만인 2024년에야 비로소 첫 신약(혈액암 치료제)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항암제임에도 생존율 개선이나 질병 진행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논란이 있었고, 이후 매출이 기대에 못미쳐 주가가 크게 하락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제론의 궤적을 보면 네이처셀의 허가 심사 논란이 낯설지 않다. 하나의 줄기세포 치료제를 오래 붙들고, 그 잠재성에 대한 기대로 자본과 주가를 움직여 온 길이 흡사하다. 다만 네이처셀에 대한 진짜 평가는 '언젠가'라는 약속이 아니라 '완성된 효과'로 허가받은 뒤에야 가능할 것이다.
정부는 왜 위험한 베팅에 앞장서는가
국가가 첨단 바이오 신약 개발을 대대적으로 지원할 때, 시장은 들끓고 난치병 환자들은 희망을 품는다. 하지만 그 핑크빛 기대가 과학적 근거로 뒷받침되지 못할 때 사회는 깊은 트라우마를 겪는다. 2005년 온 나라를 들썩이게 만들었던 황우석 사태가 남긴 교훈이 그러하다.
그런데 최근 정부는 다시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려는 모양새다. 지난 21일 정부는'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기본계획'을 의결하며 대대적인 규제완화를 예고했다. 무릎 골관절염 등에 대해 정부 주도로 대규모 임상연구를 진행하고, 이 초기 연구 단계에서 환자 치료로 이어지도록 문턱을 낮추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심지어 면역 세포 치료제 등에 대해선 위험도를 중위험에서 저위험으로 낮추고, 치료계획 심의 신청 시 선행 임상 연구 없이 기존 문헌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다.
본래 '임상연구'란 본격적인 상업용 임상시험(1~3상)에 돌입하기 전, 극소수 환자를 대상으로 안전성과 가능성을 탐색하는 걸음마 단계다. 그런데 이번 기본계획은 이 불확실한 초기 데이터만 가지고 비중증질환 환자가 직접 수백수천만 원의 돈을 내고 약을 투여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앞서 조인트스템 심의에서 전문가들이 그토록 신중하게 이익과 위험을 저울질했던 이유조차 치워버리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검증된 효과가 아니라 아직 실현되지 않은 잠재성을 근거로 환자에게 약을 제공하려 셈이다.
이것은 환자의 건강과 지갑을 볼모로 잡은 국가 주도의 위험한 베팅이다. 효과조차 불확실한 데다 침습적인 시술에 몸을 맡겨야 하는 환자들에게, 과연 부작용에 대한 투명하고 객관적인 설명이 제대로 주어질 수 있을까?
우리는 무한히 증식하는 줄기세포가 던지는 화려한 약속에 쉽게 현혹되곤 한다. 하지만 그 약속이 현실의 벽에 부딪힐 때, 생명과 직결된 대가는 고스란히 환자 개인의 몫으로 남을 뿐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부는 시장의 과도한 기대를 차분히 가라앉히고, 가장 냉정한 잣대로 과학적 근거를 따져 물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위험한 베팅에 앞장서는 모양새다. 정부가 규제의 빗장을 풀며 투기판을 부추기는 사이, '불멸의 약속'이 만들어낸 청구서를 받아드는 것은 결국 힘없는 개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