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약이 알고 싶다_37번째] 아이 설사에 늘 먹이던 그 약... 갑자기 '19세 미만' 금지된 이유

아이 설사에 늘 먹이던 그 약... 갑자기 '19세 미만' 금지된 이유

- 아이를 위한 약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필자는 기름지거나 소화가 잘되지 않는 음식을 먹고 탈이 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구토하거나 설사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그때마다 늘 찾는 상비약이 있다. 포장을 뜯으면 은은하게 달달한 바닐라향이 나고, 몸이 허한 상태에서 그 엄청난 단맛의 약을 먹으면 묘하게 낫는 기분이 든다. 배앓이를 하는 아이들에게 달달한 맛을 선사하는 이 약의 이름은 '디옥타헤드랄 스멕타이트(상품명: 스타빅·포타겔 현탁액)'다.

스멕타이트는 급·만성 설사에 흔하게 사용하는 약이다. 그런데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아래 식약처)가 19세 미만 소아·청소년 대상 적응증을 삭제했다고 알려지면서 약국가에서 큰 논란이 되고 있다. 수십 년간 아이들의 배탈을 달래온 약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약이 된 점토, 중금속 위험 우려에 휩싸이다

스멕타이트의 뿌리는 뜻밖에도 '흙'이다. 과거 여러 나라에서 중독을 예방하거나 설사를 치료하기 위해 점토를 먹는 관습이 있었다. 1977년 프랑스의 제약회사 입센은 이 무기질 점토 성분이 강력한 흡착 특성을 가지고 있어 장내 박테리아, 바이러스, 독소를 빨아들여 몸 밖으로 내보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고, 이를 약으로 개발했다.

약 자체는 몸에 흡수되지 않는다. 독소만 흡착해 대변과 함께 빠져나가고, 장 점막과 유익균을 보호하는 효과까지 있었다. '몸에 남지 않고 나쁜 것만 데리고 나간다'는 이 단순한 원리 덕분에 스멕타이트는 매우 안전하고 효과적인 지사제로 오랜 기간 각광 받았다. 아이가 배탈이 났을 때 부모들이 별 걱정 없이 먹였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2019년에 상황이 바뀌었다. 원개발국인 프랑스의 국립의약품건강제품안전청(ANSM)이 스멕타이트의 납 흡수 이행 위험성을 검토한 결과, 만 2세 미만 소아에게서 혈중 납 흡수 이행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ANSM은 만약을 방지하기 위해 예방 조치로 '만 2세 미만 소아, 임부 및 수유부'에게 사용하지 말 것을 발표했다. 몸속 독소를 빼내기 위해 먹인 약이 오히려 중금속인 납을 몸속에 남길 수 있다는 소식은 한국에도 곧바로 전해졌고, 식약처는 부랴부랴 만 2세 미만의 사용을 금지시켰다.

이번 조치는 그 후속편이다. 프랑스 제품과 한국 회사들이 쓰는 원료가 다르기 때문에, 식약처는 사용하는 원료에 대한 소아 안전성 입증 자료를 국내 제약사에게 요구했다. 제약사들은 성인을 대상으로 혈중 납 흡수 이행 여부를 시험한 뒤 그 결과를 소아에게 외삽(과학적 근거 기반으로 결과를 추정)하는 방식으로 자료를 제출했다. 그러나 식약처가 이 분석 결과를 수용하지 않았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제약사들은 소아 대상의 제대로 된 시험 대신 성인 자료로 갈음하는 길을 택했고, 그것이 거부되자 적응증을 지키는 대신 포기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소아 임상시험의 비용 부담과 소아 시장의 낮은 상업성 앞에서, 이 약이 아이에게 정말 위험한지 확인하는 절차마저 포기한 것은 아닐까?

아이 낳으라는 나라, 아이 먹일 약은 없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아이들이 배탈이나 설사를 겪을 때 가장 흔하게 쓰던 약이 사용할 수 없게 되었는데, 대체할 약이 마땅치 않다. 그나마 라세카도트릴(상품명: 하이드라섹산)이 있지만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 하고, 비급여라 가격 부담도 크다.

수십 년간 어른들을 위한 만성질환 치료제 등 신약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어린이를 위한 약의 선택지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유는 결국 높은 개발비용과 낮은 상업성이다. 어린이는 임상시험 참여가 까다롭고 시장은 작다. 상업성이 우선되는 자본적 질서하에서 어린이를 위한 의약품 개발은 언제나 외면 받는다. 이는 국제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생률의 한국은 이 문제의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아이가 줄어들수록 시장은 더 작아지고, 시장이 작아질수록 약은 더 나오지 않는 악순환이다.

저출생 극복을 국가적 과제로 정부는 임신과 출산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아플 때 먹일 약은 시장논리로 사라지고 있다. 소아용 약에 관련된 공급부족은 지난 4년간 반복되고 있으며, 아예 시장에서 사라지는 약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를 시장의 문제로 방치되고 있으며 정부가 공적 해결방안을 마련하지는 않고 있다.

식약처의 이번 조치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약을 어린이에게 계속 쓰게 둘 수는 없다. 하지만 안전 조치와 함께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식약처와 보건복지부는 적응증 삭제 이후에 발생할 치료 공백에 대해 어떤 대책을 마련했는가? 소아 임상시험을 기피하는 제약사에 대해 인센티브든 의무화든 어떤 제도적 장치를 고민하고 있는가? 소아 대상 의약품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유럽과 미국이 특허 연장 등 보상책과 소아 임상 의무화를 함께 운영하는 동안에 한국은 무엇을 했는가?

어린이 약의 공백은 시장이 스스로 메우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 사태가 다시금 보여주었다. 안전하지 않은 약을 금지하는 것은 규제기관의 절반의 역할일 뿐이다. 나머지 절반은 안전한 약이 존재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아이에게 먹일 약이 있는 사회, 그것이야말로 가장 기본적인 저출생 대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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