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티반 / 일동제약
임상 현장 혼란...응급실 필수 약이 사라지고 있다
- '버스 공영제'만큼 '공공 제약기업'이 절실한 이유
우리는 어디를 가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출근을 하고, 누구를 만나고, 물건을 사기 위해서.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도보 10분 이내에 정류장이 있고, 10분도 채 기다리지 않아 버스를 탈 수 있다. 하지만 이른바 '대중교통 취약지역'의 현실은 전혀 다르다. 정류장까지 30분은 걸어야 하고, 배차 간격이 1시간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2022년 국토교통부의 대중교통 현황 조사에 따르면 전국 229개 시군구 가운데 85개가 이 취약지역에 해당한다.
수익성을 따지는 민간 버스회사가 승객이 적은 농어촌 노선을 기피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운행할수록 손해가 나는 노선을 굳이 유지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그 지역 주민들의 삶은 어떻게 될까? 버스 노선이 사라지면 주민들은 당장 병원에도, 시장에도, 관공서에도 갈 수 없다. 이를 '이동권의 박탈'이라고 부른다.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 자유롭게 이동할,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권리가 침해당한 것이다.
이러한 시장 실패를 바로잡기 위해 일부 지자체가 선택한 방법이 '버스 완전 공영제'다. 이윤 창출이 아니라 '주민의 필요'를 기준으로 노선을 설계하는 방식이다. 2020년 7월 공영제를 도입한 강원도 정선군이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정선군은 지역별 생활권과 시장, 병원, 관공서를 촘촘히 연결하는 실용 노선을 새로 짰다. 그 결과, 2020년 53만 명이던 연간 이용객이 2024년에는 93만 명으로 훌쩍 뛰었다. 매년 14% 넘게 성장하며 4년 만에 거의 두 배가 된 셈이다. 주민의 수요에 맞게 설계된 공공의 개입이 만들어낸 성과다.
병원 응급실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생명을 다루는 병원 응급실에서 버스 끊긴 산골 마을과 같은 비극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임상 현장을 혼란에 빠뜨린 '로라제팜 주사제(상품명 아티반 주)' 공급 중단 사태가 그것이다. 고혈압이나 고지혈증 약은 수백만 명의 환자가 매일 복용하기 때문에 제약사 입장에서 확실한 수익이 보장된다. 그래서 1년 365일 품절을 겪는 법이 없다. 반면 응급실 필수 의약품은 늘 공급 불안에 시달린다. 언제든 쉽게 탈 수 있는 대도시 버스망과 달리 승객이 없는 시골 버스 노선이 겪는 위태로움과 유사하다.
로라제팜 주사제는 간질 발작으로 응급실에 실려 온 환자에게 단 한 번의 투여로 안정시킬 수 있는 생명과 직결된 응급약이다. 하지만 이윤 극대화를 좇는 제약기업들에, 오래되고 가격이 저렴한 이 약은 '운행할수록 손해'인 제품이다. 작년 한 해만 해도 한 제약사가 로라제팜 주사제를 포함해 9개 품목의 생산 중단을 선언했는데, 그중 5품목이 국가필수의약품이거나 진료 필수성이 높은 약이었다. 국내에 400개가 넘는 제약사가 난립하고 있지만, 정작 대체 불가능한 필수 약을 끝까지 책임지는 기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정부가 손을 놓고 있던 것은 아니다. 오래되고 저렴하지만 의료 현장에 꼭 필요한 약을 지키기 위해 '퇴장방지의약품' 제도를 운용 중이다. 원가가 오르면 이를 반영해 약값을 조금 올려주거나 보조금을 주며 제약사를 달랜다. 하지만 제약회사 입장에서 원가를 보전받더라도 수익성이 낮은 필수 약은 기업의 경영 판단에 따라 언제든 시장에서 자취를 감출 수 있다. 이윤을 중심으로 약을 공급하는 체계 안에서 이러한 문제가 늘 반복된다.
지난 4월 23일, 필수 의약품이 공급되지 않는 경우에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제약기업에 생산을 명령하고 그 비용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기업이 마음대로 약을 거두어들이지 못하게 하겠다는 강제 조항이지만, 과연 식약처가 민간 기업의 공장 가동을 실효성 있게 통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진짜 '혁신'은 천 원짜리 주사제의 안정적 공급
그렇다면 발상을 전환해 '공공 제약기업'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버스가 적자 노선에 공영 버스를 투입했듯, 텅 빈 응급실 진열장을 공공이 직접 생산한 필수 약으로 채우는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제약기업을 떠올릴 때마다 '혁신'이라는 수식어로 포장된 만병통치약의 서사에 집착한다. 하지만 병원과 환자들이 갈망하는 진짜 혁신은 1명을 치료하는 데 수십억 원을 요구하는 유전자 치료제의 화려한 등장이 아니라, 만드는 비용이 1000원도 채 되지 않지만 환자의 숨을 붙여놓는 생명줄 같은 약을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일이다.
게다가 이러한 오래된 약은 대단한 최첨단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연간 국가적 수요량도 어느 정도 명확하게 예측 가능하다. 전적으로 민간의 선의에 목을 매지 않고 공공이 수요에 맞게 생산을 감당할 수 있다.
다가오는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중교통 무료화 등 유권자의 눈길을 끄는 다양한 복지 공약들이 쏟아지고 있다. 인구 고령화 시대에 발맞춰 지역 주민의 '보편적 건강권'을 묻는 의제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역 응급실이나 분만실을 갖춘 병원도 필요하고, 촘촘한 지역 돌봄망 구축도 모두 시급하다. 그리고 그 기반에는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필수 의약품의 안정적 공급망'이 있다.
매주 1~2개의 필수 약이 슬그머니 시장에서 지워져 가는 아찔한 현실 속에서, 이번 선거가 우리 삶과 생명에 진짜 필요한 공공 인프라가 무엇인지 논의하는 공론장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