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들이 영업시간 끝난 뒤에 하는 일...이대로 괜찮을까?
약국을 운영한 지 7년 차에 접어든 필자에게 있어 매일의 중요한 일과를 차지하는 업무는 바로 쓰레기 처리다. 약 포장재였던 각종 쓰레기들을 분리수거하는 일로, 박스/종이류는 물론이요, 플라스틱 약병과 시럽병, 드링크 유리병, 각종 비닐커버와 에어캡 등 거의 모든 종류의 쓰레기를 처리한다.
그뿐인가, 폐의약품 쓰레기 처리도 약국의 몫이다. 가정에서 복용하다가 남아서 더 이상 필요치 않은 약들, 기한이 지나 쓰지 못하게 된 약들은 일반쓰레기와 함께 매립될 경우 토양과 수질에 잔류하여 생태계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2026년 현재, 지자체마다 수거 방식은 다르지만 여전히 약국은 시민들에게 가장 익숙한 폐의약품 배출처다. 약국에 취합된 폐의약품도 그냥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알약은 포장재를 제거해 한데 모으고, 액체류와 가루, 외용제를 분류해야 한다. 특히 양이 많아지면 참을 수 없는 냄새를 풍기기 때문에 한두 달에 한 번씩 분류작업을 하곤 한다. 포장재 쓰레기와 폐의약품. '약국생활'과 '쓰레기'를 떼려야 뗄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우리나라 약국에서 물리적으로 행해지는 '조제' 과정은 사실상 의약품의 '재포장'에 가깝다. 대부분의 경우 기존 포장을 전부 해체하고 새로운 포장을 하기 때문에 기존 포장재는 폐기되고, 새로운 포장재를 소모한다. 이 과정에서 생겨나는 각종 쓰레기들은 약국에서 신경 써서 분리배출하는 노력이 무색하게도 거의 재활용이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종이박스는 코팅이 되어서, 비닐포장지는 재질을 알 수 없어서, 유리병은 규격에 맞지 않아서, 플라스틱병은 라벨을 제거하기가 어렵거나 플라스틱 분류표기가 되어 있지 않거나, 플라스틱 외 다른 소재가 결합되어 있는 등의 이유 때문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뉴노멀에 맞추어 약국을 탈바꿈해도 부족할 판에 우리네 약국은 단지 제 역할을 하는 하루하루 끊임없이 쓰레기를 양산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지만, 약사 개인이 무언가를 하기는 쉽지 않다(친환경 구강용품을 들여놓거나 약국 소모품을 친환경 인증 일회용품으로 바꾸는 정도로 만족할 수 있을 뿐이다).
의약품 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폐의약품의 양도 눈에 띄게 늘어나서 도매상 배송 시스템을 통해 폐기물량을 넘기는 것도 서로 민망한 일이 되고 있다. 약국 입장에서도, 도매상 입장에서도 의약품 폐기는 (강제)봉사의 영역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개선할 방법은 없을까?
플라스틱 포장재와 폐의약품 수거, 한국과 외국의 차이점
플라스틱을 한 번 살펴보자. 지금껏 제약/의료분야에서 플라스틱 사용은 '안전성'의 문제로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인식되어 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지속가능성' 또한 중요한 가치로서 대두되고 있으므로 그 둘 사이의 균형점을 찾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자원순환'과 '탈플라스틱'의 기조 아래 EU는 '포장및포장재폐기물규정(PPWR)'의 개정으로, 2030년까지 EU 제약시장에 유통되는 모든 포장재(약병 포함)를 재활용이 가능한 소재로 바꾸도록 하였다. 또한 플라스틱 포장재 제조 시에 일정 비율 이상의 재생플라스틱(Post-Consumer Recycled, PCR)을 2035년까지 반드시 포함하도록 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제품의 설계 단계부터 제품의 전 생애주기동안 발생할 수 있는 환경영향을 고려하여, 그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만드는 친환경적 설계 방식, 이른바 '에코디자인' 개념을 적용했다. '환경에는 덜 해롭게, 다시 자원이 될 수 있게'하는 설계 방식이다. 이미 만들어진 제품을 재활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설계 단계에서 재활용이 잘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의약품 포장재와 폐의약품의 수거에서 기본 원칙으로 자주 언급되는 것은 생산자 책임 재활용(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 EPR) 원칙이다. 제품의 설계, 포장재의 선택 등에서 가장 결정권이 큰 것은 제약생산자이므로, 생산자가 제품의 생산뿐 아니라 제품의 생애주기 전체(폐기와 재활용까지)에 일정 부분 책임을 지고 역할을 분담하는 체계를 말한다. 이를 통해 애초에 폐기물이 적게 나오는 전략을 취하게끔 유도한다. 그리고 포장재 재활용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재활용 부과금(재활용에 소요되는 비용 이상)을 생산자에게 부담하게끔 하여 이를 재원 삼아 재활용 시스템에 활용하기도 한다.
이는 비단 포장재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제품 자체에도 적용이 된다. 의약품은 재활용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에 폐기에 대해 이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는 탄탄한 EPR 기금을 통해 마련된 의약품회수 프로그램에 97.5%의 약국이 참여하여 2016년 한해에만 88.7톤에 달하는 폐의약품을 수거한 사례가 있다. 프랑스에서도 100% 제약회사의 재원으로 만들어진 EPR 기금과 비영리단체 사이클라메드(Cyclamed)의 사업을 통해 폐의약품수거 프로그램이 정착하여 2020년 기준 2만 개 이상의 약국 참여하여 2016~2019년 사이 연간 1만~1.1만 톤 정도의 수거량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제 우리나라가 서 있는 곳을 살펴보자. 우리나라도 2003년부터 EPR 제도를 시행하여 생산자에게 폐기물부담금을 부과하고 있다. 다만 폐기물부담금이 낮아 제약생산자들 입장에선 굳이 포장재 재활용이나 재생플라스틱 사용에 대해 고민할 동기가 낮은 상황이다. 플라스틱 폐기물부담금은 EU와 비교해도 1/4 수준이며, 2012년부터 동결되어 최소한의 물가상승률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기후에너지환경부는 최근 이를 단계적으로 현실화하겠다고 밝혔다).
폐의약품 수거 체계의 경우 각 지자체 조례로 지자체별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일관된 방식이 아니기에 대국민 홍보에 많은 어려움이 있고, 당연히 수거율은 낮다. 약국도, 도매상도, 제약기업도 굳이 책임질 필요 없는 구조 속에서 폐의약품 수거체계가 잘 자리잡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의약품이라는 특수한 영역에 대한 적극적인 규제를 만드는 일을 저어하고, 보건복지부는 보건복지영역의 에너지 절감, 자원 순환에 큰 관심이 없는 것이 현실인 듯하다.
더 많은 폐의약품이 만들어지는 구조

▲광주 서구 쌍촌동 한 창고형 약국의 모습.연합뉴스
자원순환과 안전한 폐기시스템 외에도 우리 사회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도 있다. 애초에 버려지는 의약품의 양을 줄이기 위해 제도와 시민들의 의식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다. 최근 약국가는 창고형 약국이 성행하면서 의약품 소비 양상에 다소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약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가까운 약국을 방문하여 약사와의 일대일 상담을 통해 의약품을 구매하는 방식에서, 널찍한 진열대와 쇼핑카트가 갖추어진 창고형 약국에서 저렴한 가격이 강조되자 필요치 않은 약들도 미리 사두게 되었다. 공산품으로서의 의약품이 사람들의 인식에 생기게 되었고, 더 싸게, 미리 구매하도록 소비가 유발되었으니 더 많은 폐의약품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처방전을 통해 조제되는 의약품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환자들은 의사와 진료상담을 마치고 난 뒤 약국에 와서야 집에 남아 있는 약들을 떠올린다. "저녁 약은 많이 남아 있어요", "(필요할 때 먹는) 변비약은 집에 많은데" 하는 대화가 오가고 나서야 이 환자에게 필요한 물량을 정할 수 있게 되는데, 약사에게도, 환자 본인에게도 조제약의 처방량(일수)을 조정할 권한이 없다. 모든 처방전의 변경에는 의료인의 동의가 필요하고, 원처방전의 변경이 또한 필수적이다.
이 수량 변경을 위해 병의원에 통화를 시도하느니 아무 변경을 하지 않는 편을 택하기가 훨씬 쉽다. 만약 환자와 약사가 대화를 통해 처방된 약을 필요한 만큼만 받아 갈 수 있도록 정할 수 있다면? 합당한 사유와 더불어 환자가 자신의 처방약 수량을 조정할 수 있도록 조금의 유연성을 더할 수 있다면? 버려지는 의약품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건강보험약제비의 절감까지도 노려볼 수 있을 것이다.
4월 22일 지구의 날을 맞이하는 길목, 역설적이게도 우리 지구는 전쟁의 한가운데에 있다. 전쟁 자체가 얼마나 반지구적인지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라도, 당장 우리네 약국은 조제기기의 포장비닐과 소아약을 조제하는 시럽병이 전 업체에서 공급이 중단되는 상황에 처했다. 정부가 조치에 나선만큼 머지않아 공급이 재개될 것으로 기대하지만, 플라스틱을 만들어내는 원재료(원유에서 추출한 나프타)의 공급이 정상화되기에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어떤 비용이 요구될지 알 수 없다. 현재 즉각적으로 나타난 문제가 이 정도일 뿐, 장기화되는 국면에서 드러날 문제들은 모두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