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제약기업의 특허 보장과 의약품 접근권

다국적 제약기업의 특허 보장과 의약품 접근권

1. 이슈의 배경 

WHO의 조류독감에 대한 대유행 경고 이후 각국이 확보 경쟁에 나선 조류독감 치료제 타미플루에 대해 강제실시를 해야 한다는 국제적 압력이 커지고 있다. 현재 타미플루는 스위스 다국적 제약회사인 로슈가 특허권을 갖고 독점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조류독감이 사람 사이의 전염병으로 번질 경우 전염 속도가 너무 빨라 타미플루 생산이 수요를 따를 수 없을 것이라며 타미플루에 대한 강제실시를 요구하고 있다.

인도 태국 아르헨티나 대만 등에서는 실제로 타미플루에 대한 강제실시를 준비하거나 진행 중이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도 제네바의 세계보건기구(WHO) 본부를 방문해 “지적재산권에 대한 고려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타미플루나 조류독감 백신을 이용하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며 “실제 위기가 닥쳐오기 전에 결단을 내려야한다”고 말했다.

한편 우리나라의 경우도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조류독감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감염될 경우 우리나라 국민 중 1500만 명이 감염돼 이중 최소 9만 명에서 최대 44만 명이 사망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보건의료단체연합 등 시민단체에서는 정부에 대해 타미플루에 대한 강제실시를 하루 빨리 실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조류독감의 대유행에 대한 전 세계의 우려 속에서 조류독감 치료제 개발자를 비롯한 다국적 제약기업이 인류의 건강이나 생명을 담보로 창출하는 이윤을 어떻게 볼 것이며, 이를 통해 다국적 제약기업이 인류의 생명보다는 이익만을 추구하는 행태에 대해 알아보고 의약품 접근권과 강제실시 요구 등으로 특허권을 제한하려는 제3세계국가들과 국제적인 NGO 들의 의약품 관련 지적재산권 문제에 대한 대안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2. 다국적 제약기업의 특허 독점과 이에 대한 저항

AIDS 치료제를 둘러싸고 다국적 제약사들이 의약품 특허로 인류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며 이윤을 챙기는 행태가 크게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해 300만 명씩 AIDS로 죽어가면서 국가존립 자체에 위기를 느낀 아프리카나 남미의 제3세계국가들을 중심으로 의약품 특허에 대한 저항도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2년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의 약가 인하와 강제실시 청구 문제가 국제적인 중요 이슈로 떠올랐었다. 이처럼 의약품 특허로 인한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높은 이윤율과 이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들의 문제에 맞서 '이윤보다 생명'이란 이데올로기로 MSF나 TWN 등의 NGO들과 제3세계 국가들이 이에 맞서고 있다.

1) 다국적 제약사들의 끝없는 욕심

제약 산업은 1960년대 냉전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윤율 1위를 계속 고수해온 유일무이의 고수익산업이다. 제약 산업은 냉전시대에는 군수산업보다, 신자유주의시대인 지금은 은행보다 더 높은 평균이윤율을 자랑하고 있다. 이 이윤율의 크기는 의약품 특허에 의해 결정되고 독점적인 특허권을 바탕으로 ‘마음대로’ 정해진 가격으로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특허기간을 연장하면서 제약회사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이윤을 가져가게 된다. 보통 유효특허기간이 1일 연장되면 제약회사들은 약 25만 달러(2억7천5백만 원)을 추가로 벌 수 있다.

이것이 다국적 제약사를 갖고 있는 미국 등 선진국들이 지적재산권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면서 보장하려는 핵심 이유다. 게다가 다국적 제약회사와 해당 국가들은 WTO 체제가 들어서면서 지적재산권협정(TRIPs)을 제도화하고 의약품 특허를 더욱 강화하려고 하고 있다.

WTO는 전통적으로 상품거래와 무역에 서비스와 지적재산권을 편입시켜 무역의 범위를 확장 해 가고 있다. WTO가 주춤하자 눈을 돌려 미국은 미-싱가폴 FTA(양자간 무역협정)를 통해 특허기간을 20년에서 50년으로 늘렸고 이를 다른 나라와의 FTA에도 적용하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특허 범위를 넓혀 특허와 직접 관련 없는 의약품의 안전성과 유효성 실험 자료까지 특허보호를 강요하여 실질적으로 특허기간을 늘려가고 있다.

2) 의약품 접근권과 강제실시

이에 아프리카 국가를 중심으로 한 제3세계 국가들은 2001년 ‘TRIPS 협정과 공중보건에 관한 도하선언문’을 채택하여 공중보건 보호조치를 위한 각국 정부에게 최대한의 자율권을 주도록 노력하고 있다. 또한 TRIPs 31조에서도 ‘국가긴급 사태나 극도의 위기 상황이 발생’할 경우 각국 정부는 특허권자의 동의 없이 강제실시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남아공과 브라질 인도 태국 등에서도 에이즈 치료를 위해 특허를 무시하고 에이즈치료제 생산을 강행하거나 다국적 제약회사와의 강제실시 협상을 통해 에이즈 약값을 대폭 낮추었다. 90년대 중반 브라질 정부는 값비싼 에이즈 치료제의 제네릭 의약품을 생산하여 에이즈 치료제를 무상으로 공급하였다. 그 결과 97년 이후 에이즈에 의한 사망률과 새로운 에이즈 감염률을 50%까지 낮추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3) 나는 되고 너는 안 되고

그러나 실제로 강제실시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나라는 가난한 제3세계가 아니라 오히려 선진국들이다. 가까운 예로 911 테러 이후 미국에서 탄저균 소동이 일어나 미국 보건부 장관은 탄저병 치료제 '시프로바이(Ciproflaxin)'의 가격을 낮추지 않으면 바이엘(Bayer) 사의 특허를 취소할 수 있다고 발표해 바이엘사의 양보를 얻어냈다. 이보다 한발 앞서 탄저병이 발생하지도 않았던 캐나다 정부는 '시프로바이' 특허에 대해 강제실시를 시행하여 자국 제약회사인 '아포텍스'를 통해 100만 정의 복제약을 생산하였다.

그러나 다국적 제약사와 선진국들은 제3세계의 특허법 개정에 대해서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 막고 있다. 미국은 남아프리카공화국 특허법 개정 노력에 대해 원조중단과 무역보복을 모두 동원하였다. 남아공의 강제실시 개정안에 대해 에이즈약을 생산하는 4개회사는 물론 에이즈약을 생산하지도 않는 40개의 다국적 제약사가 소송에 참여 이들이 얼마나 특허에 목숨을 거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2000년 초 태국에서도 에이즈치료제를 강제실시 하려하자 미국은 태국의 보석과 마호가니 수입을 금지하겠다고 협박하고 한 편으로는 이에 대한 관세를 낮추어주겠다 해서 강제실시권 계획을 철회하게 하였다. 또 현재 진행 중인 FTAA에 지적재산권 조항이 적용될 경우 브라질 에이즈무상프로그램도 좌초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3. 대안과 결론

국제적으로 지적재산을 보호했던 이유는 단순히 발명자에 대한 보상의 문제를 넘어서 이에 대한 보호가 사회의 일반적 이익을 증진시킬 것이란 생각에서다. 발명자의 이익을 최대화시키는 보호가 아니라 공공이익을 증진시킬 수 있을 만큼만 보호해 주는 것이다.

이렇듯 특허는 인류의 행복과 이익증진을 위해 발명을 촉진하기위해 만들어진 제도이다. 그러나 WTO가 등장하면서 상품화해서는 안되는 건강이나 문화 예술 교육 영역까지 상업화하면서 이런 특허가 기업들의 이윤추구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그래서 전세계적으로 의약품 접근권 운동을 하는 보건의료활동 단체들을 중심으로 이를 대체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의약품을 비롯 문화 예술 관련 지적재산권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의약품 분야에서 대표적인 대안으로는 특허풀 제도나 R&D펀드제도 등이 있다. 특허풀 제도는 특허를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이고, R&D펀드제도는 필수의약품에 대한 기술개발에 펀드에서 지원을 하고 그 특허에 대해 일정한 로얄티를 지불하고 펀드에 참여한 국가들이 특허를 공동으로 사용하면서 R&D도 촉진하자는 제도이다.

생명이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며, 모든 사람은 건강하게 살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보건의료에 대한 접근은 모든 사람에게 차별이 없어야 한다. 이런 인본주의 성격으로 인하여 의약품을 포함한 보건의료 부분은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공공적 성격을 갖게 되어 국가가 책임져야 할 공적 통제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그러므로 건강이나 의료는 상품화되어서는 안된다. 필수의약품이나 에이즈나 조류독감과 같은 인류를 위협하는 질병치료제에 대한 특허는 한 제약회사가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전 인류의 자산으로 귀속되어야 하며 인간의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이윤을 추구하는 비인간적인 상황이 계속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리병도/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부회장/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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