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약이 알고 싶다_28화] 약쑥의 전설이 된 '국민 위염치료제'? 그 신화의 민낯

- 한국형 신약'에서 건강보험 재정 축내는 '밑 빠진 독'으로

 

한국인에게 '쑥'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인간이 되었다는 단군 신화 덕분인지, 쑥이 몸을 이롭게 하는 신비한 힘이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현대 의학에서 이 쑥의 신화가 재현된 적이 있다. 바로 '애엽(말린 쑥)'을 주성분으로 한 위염 치료제 이야기다.

지난 23일, 건강보험 정책의 최고 의결 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는 애엽 추출물의 급여 적정성 재평가 심의를 보류했다.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결론 내리지 못하고 다음으로 미룬 것이다. 쑥의 성분을 추출하여 만들었다는 이 약에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길래, 정부는 결정을 망설이는 것일까?

논란의 뿌리를 찾으려면 한국 제약산업의 전환기인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한국 제약산업은 80년대까지만 해도 주로 약국에서 구매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 판매에 의존해 왔다. 조제용 완제의약품을 만들어도 핵심 원료는 전적으로 해외에 의존해야 했기에, '제약 주권'은 늘 요원한 꿈이었다. 필수적인 항생제 원료조차 국산화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던 시절에 의약품 국산화는 단순한 산업 육성을 넘어선 국가 안보의 과제였다.

그런데 1987년 의약품 특허제도가 국내에 처음 신설되고,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과 지식재산권협정(TRIPS)이 발효되면서 의약품 특허가 전 세계적인 철칙이 되었다. 국가마다 경로 의존적으로 다르게 적용되었던 의약품 독점권이 특허 제도로 국제화가 되면서 제약기업들의 글로벌 진출이 용이해졌다. 게다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 거센 신자유주의 파도가 몰아쳤다. 한국은 단순한 제조업 수출국을 넘어선 첨단기술 기반 전략산업 육성 전략이 필요했다.

신자유주의 물결 속 탄생한 '무늬만 신약'

1990년대 이후로 정부는 제약산업을 첨단 수출 전략산업으로 지목했다. 이를 위해 당장 내세울 '국산 신약'이 절실했다. 하지만 신약 개발은 막대한 자본과 시간,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영역이다. 하루아침에 글로벌 거대 제약회사(Big Pharma)를 따라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때 한국 정부와 제약업계가 찾아낸 기막힌 묘수가 바로 '천연물 신약'이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생약 성분을 이용하니 개발 실패 확률은 낮고, 정부는 '안전성·유효성 심사 완화'라는 특혜까지 쥐여주며 개발을 독려했다. 말하자면 선진국의 신약 기준을 맞추기 어려우니, '한국형 신약'이라는 '로컬 룰'을 만들어 선수들을 뛰게 한 셈이다.

그 혜택을 입고 2002년 화려하게 등장한 주인공이 바로 동아에스티(당시 동아제약)의 '스티렌'이다. 개발 당시 언론은 백령도와 강화도의 해풍을 맞고 자란 약쑥만을 엄선했다며, 이 약에 깃든 '장인정신'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위점막을 보호하고 재생까지 시킨다는 이 꿈의 치료제는 '우리 쑥으로 만든 우리 약'이라는 민족주의적 마케팅과 결합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여기에 "수입약을 대체해 외화 유출을 막고 국부를 창출한다"는 애국심 마케팅이 더해졌다. 의사들은 부담 없이 처방했고, 환자들은 거부감 없이 복용했다. 2011년에는 한 해 처방 건수만 3억 8천만 개를 기록하며 전체 의약품 실적 1위를 달성했다. 당시 언론은 스티렌의 성공을 외국 제약사에 맞선 '의약품 독립선언'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 신화의 뒷면에는 '선 육성, 후 관리'라는 정부의 안일한 태도가 낳은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성공 신화는 오래가지 않아 균열을 일으켰다. 2010년 제조사는 처방 유도를 위해 공중보건의들에게 리베이트를 건넨 혐의로 적발되었고, 2011년에는 임상적 근거 부족으로 급여 삭제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심지어 2014년에는 제조 과정에서 1급 발암물질인 벤조피렌이 검출되어 '위장 고치려다 암 얻을라'라며 환자들의 불안을 사기도 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칼 뒤에 숨은 정치적 이유
 

동아에스티의 '스티렌'동아에스티


특허가 만료된 지금, 시장에는 수많은 복제약이 쏟아져 나왔고 애엽 추출물 제제는 연간 1200억 원어치가 처방되고 있다. "효과가 탁월해서"라기보다는 "부작용이 적고 무난해서", 혹은 "그냥 관성적으로" 처방전에 끼워 넣는 약이 된 것이다.

올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이 약에 칼을 빼 들었다. "임상적 유용성 근거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제약사들의 반발이 이어지자 분위기가 묘하게 바뀌었다. 4개월 만에 효과는 불분명하지만 '비용 효과성'만 맞추면 급여를 유지해 주겠다는 식으로 결정이 바뀐 것이다. 약값을 깎아줄 테니 계속 팔게 해달라는 제약사의 논리가 통하려는 찰나였다. 다행히 23일 건정심에서 환자단체와 민주노총이 문제를 제기하였고, 번복된 결정에 제동을 걸어둔 상태다.

제약사가 이의제기 과정에서 제시한 근거 자료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1200억 원의 건보 재정이 들어가는 약의 운명이 알려지지 않은 임상 문헌 1편을 통해 결정된다고 하는데 투명한 공개도 검증도 불가능하다. 당연히 외부에선 합리적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이번 번복된 결정은 과학적 근거를 기반한 검토가 아니라, 대표 천연물 신약이라는 상징성을 지키고 제약산업을 보호하려는 정치적 고려가 아닌가 말이다.

과거 정부가 첨단 전략산업 육성을 기치로 내걸고 시작한 천연물 신약 제도는, 수출 실적은 전무한 채 건강보험 재정만 축내는 '밑 빠진 독'이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보건당국은 아직도 국민들이 낸 건강보험료를 제약사의 연구개발(R&D) 비용 보전을 위한 마중물로 쓸지 여전히 저울질 중이다.

과거에 곰이 사람이 되기 위해 쑥을 먹으며 인내했다고 하지만, 현재 효능이 불확실한 약을 위해 인내를 강요당하는 건 국민이다. 정부가 국민건강보험의 진정한 보험자로서의 원칙을 세우길 마냥 기다리기엔, 마주한 현실은 쑥잎처럼 쓰리고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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