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 성명] 국회는‘플랫폼 도매상 운영금지법’통과를 서둘러야 한다.

사진출처: 닥터나우

- 영리적 비대면진료 플랫폼이 환자 알선을 통해 지역약국을 종속화

- 지역약국과 동네병원 붕괴를 방지하는 최소한의 규제

- 비대면진료는 지역사회통합돌봄사업에서 제역할을 찾아야

 

 

어제(2일) 비대면 진료 관련 의료법 개정안(이하 비대면 진료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급박하게 시범사업으로 시작했던 비대면 진료가 거의 6년 만에 법적으로 제도화된 것이다. 이번 비대면 진료법에는 시범사업에서 규제되지 않은 채 운영되고 있던 비대면 진료 플랫폼에 대한 규제가 담겼다. 하지만 시민사회가 오랜 기간 약배송을 통한 지역 약국체계 붕괴를 우려하여 영리적 기업이 의료중개 플랫폼을 운영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그런데 더 우려스러운 것은 보완법안으로 고려되었던 약사법 개정안은 국회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해당 법안은 비대면 진료 플랫폼이 의약품 도매상을 운영하여 제휴약국에 판매하는 것을 방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언론에서는 이를 '닥터나우 방지법'이라고 부는데 ‘닥터나우’가 자사 도매상의 의약품 패키지를 구매해야 제휴약국 지위를 부여하고, 환자들에게 제휴약국의 선택을 유도했다는 문제가 국정감사에서 드러났기 때문이다. 플랫폼의 도매상 운영을 통한 처방의약품 유통 교란행위 방지법이라 하는게 더 적절하다.

 

 

플랫폼 종속, 배민과 카카오택시의 전철을 밟는가

 

비대면 진료 플랫폼의 영업방식은 제휴약국에 환자를 유인해주는 대신 약국을 플랫폼에 종속시키는 구조를 택하고 있다. 이는 낯선 풍경이 아니다. 배달의민족과 카카오택시가 시장지배력을 이용해 요식업자와 택시기사를 종속시키고 과도한 수수료를 받아온 방식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배민은 자영업자들에게 '광고를 더 사지 않으면 노출을 줄이겠다'는 방식으로 광고비를 끌어올렸고, 카카오택시는 기사들에게 '호출을 더 받으려면 프리미엄 요금제에 가입하라'며 수수료를 올렸다. 이제 비대면 진료 플랫폼은 약국에게 '우리 도매상에서 약을 사지 않으면 환자를 보내주지 않겠다'는 방식으로 같은 길을 걸을 것이다.

 

기존 약사법과 의료법은 의원 및 약국의 환자 유인알선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비대면진료 플랫폼은 배민이나 카카오택시의 사례처럼 접속자에게 특정 약국과 병원 노출을 조절하기 쉽기 때문에 해당 문제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구조다.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플랫폼 기업이 이를 그냥 둘 리 없다.

 

그런데 여당 일부 의원들이 과도한 규제라며 법안 상정을 막아섰다고 한다. 이들은 환자의 유인알선을 하지 않겠다는 비대면 진료 플랫폼의 주장을 그대로 믿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이미 편법적 행위가 드러났는데도 기업 혁신을 막는다는 이유로 규제를 거부하는 것은, 환자 보호보다 기업 이익을 우선하는 태도일 뿐이다.

 

 

민간보험사의 야욕, 실손보험과 플랫폼의 결합

 

더 우려스러운 것은 민간보험사들의 움직임이다. 최근 민간보험사들이 비대면 진료 플랫폼 기업을 인수하거나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삼성화재는 ‘나만의 닥터’와 제휴하고 있으며, KB손해보험은 ‘올라케어’을 인수했다. 이들의 목적은 명확하다. 실손보험과 비대면 진료 플랫폼을 결합하여 환자의 진료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보험 상품 설계와 보험금 지급 심사에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의료의 영리화를 넘어 의료 데이터의 상품화다. 환자는 편리함이라는 미끼를 물고, 자신의 민감한 건강정보를 민간보험사에 넘기게 된다. 보험사는 이 데이터를 활용해 보험료를 차등화하거나,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는 근거로 삼을 수 있다. 비대면 진료법에 개인정보의 영리 활용 처벌조항이 포함되었다지만, 민간보험사와 플랫폼의 결합 구조 속에서 이 조항이 얼마나 실효성을 가질지 의문이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은 누구와 연결되어야 하는가

 

디지털 혁신이라며, 감염병 위기에 탄생한 비대면 진료 플랫폼은 지난 5년 동안 무엇을 이뤘을까. 그들은 그동안 누구와 누구를 연결시키고 있는가. 그 연결은 무엇을 변화시키고 있는가. 자본적 돈벌이 이외에 플랫폼의 사회적 효용은 무엇인가.

외국에서 공적 통제로 운영되는 비대면 진료 플랫폼은 물리적 거리나 시간적 제약으로 의료시스템에서 배제되었던 '접근성 취약계층'을 유휴 의료자원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처방이 아니라 상담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의료를 치료(cure)가 아닌 관리(care)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변화시켰다. 특히 정신과 상담 등에 대한 의료 접근성이 크게 개선되었다. 이는 오랜 기간 방치되어온 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하게 되며, 예방적 진료를 통해 응급실 방문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의 비대면 진료 플랫폼은 어떠했는가. 피부과 등 비교적 간단한 진료를 목적으로 하는 환자와 약물 처방을 기계적으로 제공할 의지가 있는 의사들을 연결시켰다. 상담보다 10초 진료와 처방을 중심으로 운영되었으며, 탈모 등 쉬운 약물 처방에 대한 우려들이 높아지고 있다. 반면에 지난 5년간 농촌이나 노인층은 디지털 리터러시 문제로 비대면 진료 접근에서 소외되었음에도, 이들을 위한 접근권에 대한 고려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의 새로운 역할 모색을 위해 닥터나우 방지법은 통과되어야

 

이번 비대면 진료 제도 자체가 영리적 기업의 의료 중개를 허용하는 법안이기 때문에 닥터나우 방지법이 통과되더라도 문제들을 완전히 예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의 안전장치마저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

 

만약 비대면 진료가 제 역할을 할 곳을 찾는다면 필요한 곳이 있다. 바로 지역사회 통합돌봄사업이다. 재택 어르신과 지역돌봄센터, 또는 동네 주치의를 연결하는 사업들에서 말이다. 마침 내년 3월에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지역사회통합돌봄법)'이 시행된다. 병원이 아닌 자신이 살던 곳에서 건강하게 지내도록 돕기 위한 법이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은 지역사회통합돌봄에서 예방적 의료서비스 확대 방안에 나서는 것이 유일한 살길이 될 것이다. 불필요한 약 도매상 운영으로 동네 약국과 대결할 것이 아니라, 주치의 및 주치약사들과 어떻게 공생할지 모색해야 한다. 민간보험사의 데이터 수집 도구가 아니라, 취약계층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는 공공 인프라로 거듭나야 한다.

 

국회는 닥터나우 방지법 통과를 미뤄서 사회적 갈등만 키우지 말고, 비대면 진료 플랫폼의 진짜 역할을 찾아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디지털 혁신은 기업의 이윤이 아니라 취약계층의 의료 접근성 개선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배민과 카카오택시가 자영업자와 노동자를 종속시킨 전철을 의료에서 반복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비대면 진료가 사회적으로 정당성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2025년 12월 3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늘픔약사회, 새물약사회·농민약국, 약사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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