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원수폭금지세계대회 참관기]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광전지부 박윤우 회원
나는 평소 정치나 역사에 둔감한 편이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이하 건약)에서 원수폭금지 세계대회 참가자를 모집한다고 했을 때, '지금 일을 쉬고 있으니깐 시간 있을 때 가볼까?' 하고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 경험은 건약과 나에 대해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세계대회 참여하기 전에 사전모임을 진행했다. 사전모임 강의에 참여하면서 내가 원수폭 문제에 대해 스스로 무지함을 느꼈다. 그래서 나가사키에 가기에 앞서 한국인 원폭 피해자 문제를 다룬 비핵·평화 연극 '불새'를 관람했다. 난생처음 보는 연극이었지만, 무대 가까이에서 보여주는 배우들의 표정과 목소리가 심장을 푹푹 찔렀다.
연극은 피폭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는 피폭 1세대 왕할머니의 등에 새겨진 불새 모양의 화상 자국, 원인 모를 신체장애로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하고 알코올에 의존하는 2세대 아들, 원인 모를 병으로 세상을 떠난 4세대 채율과 그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80년 전 있었던 원폭으로 4세대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2~4세대 피폭자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원폭 피해자가 있는지조차 모를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한국의 원폭피해자의 존재와 후세대까지 피해가 발생한다는 것을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 같다.
[그림 ] 원폭 80주기 비핵평화연극 불새 연극 중 한 장면(25.07.12.) (제공=박윤우)
원수폭금지 세계대회에서 들은 생생한 증언
세계대회에 참여한 첫날 많은 피폭자분들이 자신과 동료들의 경험과 사진을 공유했다. 경험담과 당시의 사진들을 보면서 연극과는 다른 차원의 충격을 받았다.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증언들이 있다.
특히 학교에 모여 친구들과 서로의 상황을 주고받는 중 "저 혼자 남았습니다!!"라고 외쳤던 친구의 목소리를 잊지 못한다는 다나카 씨의 떨림.
'붉은 등의 소년'으로 유명한 자신의 사진을 들고 평생을 반핵운동에 앞장서며 "저는 모르모트가 아닙니다. 구경거리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지금 저를 보고 있는 여러분은 제 모습에서 눈을 돌리지 말아주세요"라고 외친 고 타니구치 씨의 절규.
원폭으로 인해 새우처럼 굽어버린 몸 때문에 숨어 살았지만, 용기 내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며 "수천 명 앞에 내 모습을 드러내던 날 처음으로 항상 따라다니던 분노와 슬픔이 사라지는 걸 느꼈고, 이게 내 삶의 이유임을 알았습니다", “우리의 얘기를 듣고 공감하며 원자력 무기를 반대하는 어린이들이 많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아이들입니다. 저는 제가 죽기 전까지 이 아이들과 함께 싸워나갈 것입니다” 라는 고 와타나베 씨의 다짐.
그리고 “피카노코(피폭자 및 자녀를 비하, 차별적으로 부르는 명칭)지? 저리가! 전염돼!!” 등 피폭자를 향한 차별에 대한 경험과 원폭으로 잃은 자신의 가족들을 이야기하면서도 "일본 때문에 피해를 입게 된 한국인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며 진심을 담아 고개 숙인 오오츠카 씨의 사과까지.
故타니구치 씨(제공=박윤우)
일본에서 팔레스타인 연대 활동에 참여하며
한국 참가단은 세계대회 참여기간 동안 팔레스타인 연대활동도 진행했다. 나가사키에 원폭이 떨어진 8월 9일 아침에 현수막으로 제작한 팔레스타인 위령비를 세우고, 앞에 국화꽃을 내려놓는 액션을 진행했다. 이날은 비가 무섭게 퍼붓는 날이었는데 놀랍게도 우리가 액션을 하는 동안 비가 그쳐 우산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액션이 끝나자마자 비가 갑자기 쏟아져 하늘도 우리를 응원하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하늘에 감사했다. 그리고 세계대회가 열리는 시민회관 입구에서 친이스라엘 기업 세 곳에 대해 설명하는 피켓에 빨간색 테이프로 X표를 치며, 집단학살 중단을 외치는 액션을 진행했다. 폭우로 액션을 진행할 공간이 넓지 않았음에도 한쪽에 액션을 위해 공간을 내어주신 분들께 또한 감사했다.
팔레스타인 추모 액션(제공=박윤우)
나가사키에서 목격한 희망
이번 원수폭금지대회는 피폭 80년을 맞아 대규모로 진행되었다. 전일본민주의료기관연합회(이하 민의련) 선생님들 중 누구하나 남는 손이 없이 일하는 과정에서도 매일 저희와 저녁 식사자리를 함께 해주며 교류를 할 수 있었다. 민의련 선생님들은 식사자리에서 2024년 12월 계엄령과 함께 시작된 6개월간 거리의 탄핵집회와 한국의 단합력 특히 2030 젊은 세대의 집회 참여에 대해 관심이 많으셨다. 마스다 민의련 회장은 일본의 젊은 친구들이 정치나 다른 사람들의 일에 관심 없고 자신만 생각하는 것 같다고 걱정을 표했다.
하지만 내가 인권평화자료관에서 본 모습은 달랐다. 2층에 마련된 위안부 할머니들의 현장을 보는 중에 천천히 일본어로 적힌 글을 읽어가며 자료를 보고 있으면서 많은 젊은 일본인들을 만났다. 그들은 피해 내용을 보며 훌쩍훌쩍 울기도 했고, 전쟁 당시 위안부에 대한 처우를 그린 만화를 다 읽고 화내며 책을 덮는 모습도 목격했다. 그중 한 분은 정말 엉엉 우시길래 나도 용기를 내어 "다이조부? 나이테 쿠레테 아리가토(괜찮아? 울어줘서 고마워)"라고 말했다.
내가 나가사키에서 본 모습은 마스다 회장님의 걱정과 달랐다. 원수폭금지대회에 참석하고 평화공원 등을 방문하는 동안, 특히 8월 9일 당일에 수많은 학생과 젊은이들을 보았다. 일본의 젊은이들도 충분히 역사와 타인에게 관심이 있다고 느꼈다. 일본도 미래가 밝다고 말씀드리고 싶었다.
평화를 위한 나의 다짐
세계대회를 참여하며, 다시 한 번 '가벼운 마음으로 신청해서는 안 됐다'고 후회했다. 정말 세계대회에 참여하는 동안 매일 눈물의 연속이기도 했다. 한국의 많은 사람들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피폭자를 위로하는 이야기를 하면, 곧장 원폭으로 한국이 해방될 수 있었고 일본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스스로가 피해자임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화를 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본에는 정부가 회피하려는 많은 문제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하고 반성하며 반핵·반전을 외치며 진정한 평화의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꼭 알았으면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년에도 꼭 오고 싶다. 그동안 주변사람들에게 내 나름대로 반핵·반전의 중요성을 알리고, 그 경험을 일본 민의련 선생님들과 공유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피폭 80년을 맞은 지금, 우리는 과거의 아픔을 기억하되 미래의 평화를 위해 함께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이번 나가사키에서 내가 배운 가장 소중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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