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 번씩 주사를 맞으면 식욕이 뚝 떨어진다는 '위고비'. 이 약의 성분명은 세마글루타이드이다. 세마글루타이드는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인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과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몸에 투입되면 마치 GLP-1이 작동하는 것처럼 속여 혈당조절과 식욕억제 효과가 나타난다.
본래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된 GLP-1 유사체는 현재 당뇨병 환자들에게 필수적인 치료제로 자리 잡았다. GLP-1 유사체에 관한 사용 경험이나 연구들이 누적되면서 당뇨병뿐만 아니라 심혈관 및 신기능 보호, 비알코올 지방간 질환 등의 부수적인 효과도 밝혀졌고, 안전성도 높게 평가되어 오랜 기간 1차 치료제 역할을 지키고 있는 메트포르민의 자리도 위협할 정도로 당뇨병 연구 분야에서 GLP-1 유사체의 권장 수준이 높은 편이다.
▲음식을 섭취하면 장에서 분비되는 GLP-1 호르몬은 췌장에서 인슐린 분비를 증가시키고, 글루카곤 분비를 억제하여 혈당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한다.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한국에서 당뇨병치료제로 둘라글루타이드(상품명 트루리시티) 등 일부 약물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많은 약물이 한국에서 허가만 받고 실제 시장에서 사라지거나 출시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대표적인 사례가 세마글루타이드 성분 당뇨치료제인 오젬픽이다.
오젬픽은 2023년 건강보험 급여 신청 후 약가 결정 단계에서 돌연 급여 신청을 철회하였다. 당시 제약사는 '공급 불안정'을 이유로 들었지만 석연치 않은 이유다. 아무래도 건강보험공단이 제시한 약값에 불만을 품은 것으로 추정된다. 급여 평가에서 비교 대상 약물이었던 둘라글루타이드의 한 달 약값이 약 13만 원 수준이었으니 건강보험공단은 오젬픽도 비슷한 수준에서 약값을 결정하려고 했을 것이다.
오젬픽이 급여 신청을 철회하고 얼마 후 같은 성분의 식욕억제제인 위고비가 한국 식약처에 허가를 받았다. 2024년 하반기부터 한국에 출시되었는데 당시 한 달 약값은 무려 약 50만 원이다. 둘라글루타이드 한 달 치료비용의 4배에 달했다. 제약사 입장에서 당뇨약을 4명에게 파는 것보다 비만약 1개 파는 것이 더 이익인 셈이다. 과연 위고비 가격 50만 원은 어떻게 결정된 것일까?
약값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우리는 의약품 가격도 보통 상품들처럼 개발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이나 생산 비용에 비례하여 가격이 결정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신약은 세계무역기구(WTO) 무역관련 지식재산권(TRIPs) 협정에 따라 개발 제약사가 독점적인 '권력'을 갖는다. 즉 제약기업은 공급할 국가를 선택할 수 있고 원하는 가격에 판매할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이다. 그럼에도 국가별 약값은 천차만별이다. 이유는 제약회사의 권력이 발휘되는 사회적 구조가 어떠한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세마글루타이드의 가격을 보면 그 단면을 알 수 있다. 유럽에서 오젬픽(당뇨약)의 건강보험 급여를 제공하는 국가들은 위고비(비만약)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다. 당뇨환자가 사용하는 가격이 비만치료제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반면, 제약사의 가격결정을 자유시장의 영역으로 인정하는 미국은 상황이 다르다. 이로 인해 미국에서 세마글루타이드의 가격은 유럽보다 3~10배 비싼 가격이 책정되어 국민적 분노를 샀으며, 지난해 미 의회가 직접 노보 노디스크 최고경영자(CEO)를 소환해 질책하고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청문회가 열리기도 했다.
▲2024년 9월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상원 보건교육노동연금위원회의 의약품 가격 청문회에서 버니 샌더스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이날 청문회는 라스 프루에르가드 요르겐센 노보노디스크 최고경영자(CEO)로부터 당뇨병과 비만 치료에 사용되는 위고비와 오젬픽 등 해당 회사가 제조하는 의약품 가격에 관한 증언을 청취했다.AFP 연합뉴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당뇨약 오젬픽이 출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위고비의 초기 가격은 약 50만 원으로 오젬픽이 급여가 되는 영국이나 독일보다 훨씬 비싸게 출시되었다. 비교할 대상이 없기 때문에 가격 저항이 낮았던 한국에서 비싸게 출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약값에 분노해야 하는 이유
다행히 지난 8월 중순부터 위고비의 가격이 낮아졌다. 이는 위고비 생산 비용이나 유통비가 절감된 덕분이 아니다. 경쟁사인 일라이릴리의 GLP-1유사체인 티르제파타이드(상품명 마운자로)가 한국에 출시되면서, 시장에서 노보 노디스크의 독점적 권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가격은 절반 가까이 줄어들어 2단계 기준으로 한 달 약 24만 원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번 가격 인하가 제약사의 '선의'가 아니라 노보 노디스크의 권력구조 약화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쌀, 라면, 과일 가격이 오르는 것에 늘 민감하게 반응한다. 반면 우리의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약의 가격에 대해 얼마나 민감한가? 생산 비용이 아니라 '최대 매출'을 위해 가격을 결정하는 이 부당한 구조에 우리는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가? 노보 노디스크는 가격을 낮췄지만 당뇨약은 여전히 출시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비만약에는 온당하지 않은 가격표를 매겨 한국 국민에게 요구하고 있다는 것에 분노해야 하지 않는가?
의약품의 합리적인 가격은 제약사가 가격 결정구조를 투명하게 밝혀야만 알 수 있다. 하지만 제약사는 이를 숨기려 한다. 세계보건기구는 2018년부터 꾸준하게 제약사에 개발비용과 가격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는 요구를 지속하고 있다. 유럽도 일부 국가에서 연구개발비 일부 공개를 요구하고 있으며, 다국가 협력 플랫폼을 이용하여 국가 간의 의약품 가격과 관련된 정보를 공유하거나 공정한 가격 책정 방법을 마련하는 역할을 도모하고 있다. 반면 아쉽게도 한국은 아직 의약품의 공정가격이나 투명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지 못하다.
우리는 제약사의 자발적인 가격 인하에 기대지 않아도 의약품 가격을 낮출 탁월한 방법을 가지고 있다. 보건복지부나 건강보험공단에 힘을 실어주어 가격을 압박하는 방법도 있으며, 미국처럼 국회가 직접 나서서 비싼 약값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방법도 있다. 이러한 방법들의 전제조건은 시민들이 의약품 가격의 불합리함에 분노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분노해야 제약회사의 '호구(虎口)'가 되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