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쉴권리공동행동 출범 기자회견] 이재명 정부는 유급병가 법제화와 제대로된 상병수당 도입을 통해 일하는 누구나 아프면 쉴 권리를 보장하라

<기자회견문>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에서 “저소득 취업자로 제한된 상병수당 시범사업의 단계적 확대”와 “소상공인의 아프면 쉴 권리 보장”을 공약으로 제시하였다. 그러나 이후 국정기획위원회의 발표에서는 “상병수당 본제도 도입을 통한 질병으로 인한 빈곤 예방”과 “시범사업 효과 분석·평가, 사회적 논의 및 법령 개정을 거쳐 제도화 방안 마련”과 같은 추상적인 내용만 확인되었을 뿐이다. 기존 시범사업은 연령·국적·임금 수준에 제한을 두고 낮은 급여만을 지급하여 여러 한계를 드러냈으나,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려는 구체적 방안은 제시되지 않았다. 더구나 상병수당과 연계되어야만 하는 유급병가 법제화에 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찾아볼 수 없다.

 

법정 유급병가와 상병수당은 일하는 사람이 질병이나 부상으로부터 충분히 회복할 수 있도록 치료와 휴식을 보장하는 제도다. 병가 사용 시 발생하는 소득상실 위험은 사용자가 임금을 지급하는 ‘유급병가’, 공적으로 조성한 재원에서 현금급여를 지급하는 ‘공적 상병수당’ 제도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많은 국가들은 법정 병가와 공적 상병수당 제도를 고유의 방식으로 설계ㆍ연계하여 상병 노동자의 고용보장과 소득보장을 도모하고 있다. 이는 질병으로 인한 소득 손실과 빈곤 위험, 건강 악화, 생산성 저하 등에 대응하면서 건강권과 사회보장을 촉진하고, 빈곤 예방을 위한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세계 184개 국가 가운데, 한국과 미국 등 11개국을 제외한 173개국이 유급병가 또는 상병수당을 도입하고 있고, OECD 38개국 중 한국과 미국만 상병수당 제도가 없다. 한국은 법정 병가(무급 포함), 상병수당 제도 둘 다 없는 유일한 OECD 회원국이다.

 

코로나19가 만들어 낸 상병수당 제도화의 기회인데, 정작 코로나19 환자들은 적용받지 못하는 역설이 이미 시범사업에서 증명되었다. 장기간 아픈 사람들만 선택적으로 지원하는 상병수당만으로는 쉴 권리의 보장은 불가능하다. 빈곤 예방 뿐 아니라, 질병의 악화를 조기에 막기 위해서는 질병의 중증도와 무관하게 아픈 사람들이 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현재 정부에서 논의되고 있는 상병수당 본사업의 수준은 ILO 권고 기준에 매우 미달하는 것으로 들린다. 상병수당을 받지 못하는 대기기간은 7일, 소득 보장수준은 직전임금의 60%, 최저 수준은 최저임금의 60%, 최대 보장기간은 180일 미만, 65세 이상은 적용 제외, 개별 유급병가 대상자 적용제외 등으로 추진된다는 것이다.

 

ILO의 사회보장 관련 조약 중 의료 및 상병급여 조약(1969년, 130호 협약 및 134호 권고)에서는 경제활동인구 전체(임시직 노동자, 그 가족 등 100%)를 적용하고, 급여액은 이전 소득의 66.67%, 급여기간은 최저 52주 이상, 재원 마련은 노동자 부담 보험기여액을 50% 이하로 제한하고 있어 큰 차이를 보인다. 법정 유급병가 도입에 대해서는 어떤 내용도 논의되지 않고 있다.

 

상병수당은 일하는 사람 모두에게 주어지는 보편적인 제도가 되어야 한다. 상병수당이 누군가를 제외하고 선별적으로 적용되면 노동자들은 자신이 얼마나 아프지, 소득은 어떤지 증명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불안정 노동자들은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국적, 나이, 소득과 무관하게 모두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유급병가도 마찬가지이다. 근로기준법을 개정하여 유급병가 조항을 넣는다 하더라도 근로기준법에 제외되어 있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나 가사 노동자를 비롯하여 특수고용, 프리랜서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들은 제외될 수 있다. 상병수당과 법정 유급병가가 절실한 불안정 노동자들이 제도화 과정에서 제외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일부를 제외한 상병수당제도의 도입은 역설적으로 질병으로 인한 불평등을 더 악화하는 원인이 될 것이다

 

충분한 소득 보전도 중요하다. 상병수당에 대한 ILO 권고 기준인 이전소득의 2/3는 되어야 한다. 하한선은 최저임금 이상이 되어야 한다. 불안정 노동자들은 소득이 불규칙한 경우가 많다. 그리고 아플 때 일을 많이 못 해서 소득이 줄어들어 있는 상황에서 상병수당을 신청하게 될 가능성도 높다. 따라서 이전 소득을 산정할 때의 기준은 6~12개월로 넓혀야 한다. 또한 계약서를 제대로 쓰지 않는 경우가 많고 소득 증명이 어려운 경우도 많다. 불안정 노동자들의 실질소득을 다양하게 인정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재원 마련에 있어 국고지원은 50% 이상이어야 한다.

 

상병수당과 유급병가를 사용할 때 불이익을 우려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상병수당과 유급병가 사용을 이유로 불이익한 처우나 해고를 금지’하도록 하고, 어길 경우 처벌 조항을 명시해야 한다. 아프면 쉬는 문화가 없다 보니 아플 때 연차휴가 소진을 강요하는 사례가 확인되고 있는데, 이를 금지하는 규제도 필요하다. 상병수당 신청 절차와 소득 증명 절차를 간소화하고, 상병수당이나 유급병가를 신청할 때 노동자들이 대체인력을 구하도록 요구하는 행위를 금지해야 한다. 그리고 작은 사업장의 경우 대체인력을 마련할 자원이 부족할 수 있으므로 정부가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 상병수당이 시행된다면, 공적 사회보장제도 중 가장 마지막으로 도입되는 셈이다. 기존의 사회보장제도들과 유기적으로 서로를 보완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병수당 본 사업 시행 전 시민사회와 노동자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는 것이 중요하다. 일하는 누구나 안심하고 당당히 쉴 권리를 위해 ‘아프면 쉴 권리 공동행동’은 2022년 건강∙노동∙사회∙시민사회 포럼 구성을 시작으로 기획 강좌, 국회토론회, 인식조사, 지역 현장 간담회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정말 필요한 아프면 쉴 권리가 어떤 것인지 정리해 왔다. 오늘 아프면 쉴 권리 공동행동은 공식 출범을 선포하고, 이재명 정부가 유급병가 법제화와 제대로된 상병수당 도입을 통해 일하는 누구나 아프면 쉴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아래와 같이 요구한다.

 

○ 5대 요구안

 

●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유급병가 법제화

1. 5인 미만 사업장 포함한 모든 노동자에게 유급병가제도 도입

2. 평균임금에 해당하는 병가수당 지급

3. 병가 사용 이유로 해고금지

4. 소규모사업장에 대한 국가 지원 및 대체인력 고용지원 마련

5. 지역가입자에 대한 지자체 유급병가 지원제도 도입(대체인력 지원 등)

 

●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으로 상병수당 도입

1. 국제노동기구(ILO) 사회보장 최저기준 이상으로 도입

2. 대상 : 일하는 누구나(나이, 국적, 소득 무관), 가족돌봄으로 소득 상실시 지원

3. 재원 : 사회보험방식, 필요재정의 50%에 국고지원 의무화

4. 급여기준 : 최저임금 이상 보장

5. 대기기간 및 보장 : 3일 이하, 최장 18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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