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K바이오토론회는 환자 안전과 국민 건강을 외면한, 기업민원 청취회에 불과했다

- 국민 생명권과 건강권 우선해야 할 보건당국은 제약산업 육성처로 전락하는가

- 산업계는 제2의 황우석, 인보사사태 재현 않으려면, 무분별한 규제완화 요구를 중단해야

 

 

 

지난 5일 ‘K-바이오, 혁신에 속도를 더하다’ 제목의 바이오 혁신 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이재명 대통령이 토론을 주관하여 진행되었으며 정부가 산업육성 정책의 일환으로 열린 산업계의 각종 민원을 듣는 자리였다. 특히 이 대통령은 “정부는 연구개발에서 규제가 장벽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규제완화 혹은 규제개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수용하겠다”며, 정부의 제약산업에서의 규제 완화정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정은경 장관의 짧은 발표 이후에 이어진 질의는 제약·바이오 산업계의 규제완화 요구의 위험한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자리였다. 무분별한 규제완화로 발생할 환자 안전의 위협과 의료비 증가라는 바이오 산업 육성의 양면성에 대해 고려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의약품과 관련된 규제는 대부분 임상시험 대상자와 환자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그러나 이날 토론회에선 산업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국민 안전과 직결되는 핵심 규제를 허물자는 무책임한 주장이 쏟아졌다. 특히 다음과 같은 문제적 요구는 국민의 건강권 보호를 외면하는 심각한 발상이다.

 

 

첫째, 조건부 허가제도의 무분별한 확대 요구는 상업적 이익은 불투명한 반면에 국민을 실험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일이다.

산업계는 희귀·난치성 질환 뿐만 아니라 비만치료제 같은 '돈이 되는' 분야까지 조건부 허가를 확대하라고 요구했다. 수출시장에서의 경제적 성공을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안전성·유효성 검증 없이 한국에서 허가받은 약이 미국이나 유럽 등 외국에서 통할 리 만무하다. 그동안 수많은 국산 신약이 해외 수출에 실패한 이유를 망각한 채, 국민을 임상시험 대상으로 삼겠다는 발상에 불과하다. 검증 절차를 불필요한 규제로 인식하고 무작정 규제완화를 요구하는 행태는 제약산업의 기본 원칙마저 흔드는 위험한 발상이다.

 

둘째, 재생의료 규제 샌드박스 요구는 제2의 황우석 사태, 제2의 인보사 사태를 부를 뿐이다.

여러 참가자들은 재생의료 분야 규제완화를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엄청난 정보 비대칭 속에서 환자들에게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을 제공하는 ‘악마의 속삭임’과 다름없다. 이미 한국은 재생의료 분야 규제 완화정책을 꾸준히 펼쳐온 국가다. 특히 올해 2월부터 개정된 첨단재생바이오법은 규제기관의 검증 없이 임상연구자가 환자에게 돈을 받고 치료법을 제공할 수 있는 길까지 열었다. 만약 여기에서 임상연구에 대한 남은 규제마저 완화된다면 이는 재생의료 분야가 규제기관의 통제가 불가능한 길로 가는 것이다.

 

참가자 중 플로리다 사례를 언급한 것도 놀랍다. 줄기세포를 기반으로 한 재생의료 산업은 전세계적으로 효과적인 치료제 개발에 성공하지 못했음에도 관련 치료술은 널리 퍼져나가고 있다. 특히 미국은 규제당국(FDA)이 관련 재생의료 치료 규제에 오랜기간 실패한 상황이다. 게다가 최근 재생의료를 신봉하는 독특한 캐릭터의 보건부 장관이 등장함으로써, 재생의료 관련 규제가 더욱 무력화되는 상황이다. 올해 규제완화 법안이 통과되었다는 플로리다주는 이미 특정 의료서비스 기관에서 검증되지 않은 줄기세포 치료술을 제공해 1,000명에 달하는 환자들이 집단 소송을 해야할 만큼 안전하지 않은 재생의료 시술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플로리다주 정부의 무리한 정책은 FDA가 당연히 문제제기를 해야하는 상황임에도 트럼프 정부의 특성상 이마저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 한국이 이를 쫓아가야 한다는 주장은 국민적 불신을 초래했던 제2의 황우석 사태, 제2의 인보사 사태를 떠올리게 만드는 주장이다.

 

셋째, 바이오시밀러 보급 확대를 위한 가격 인하는 기업의 몫이다.

바이오시밀러 전환이 더딘 이유로 규제 부재를 지적한 주장도 있었다. 이 역시 본질을 왜곡한 주장이다. 한국 바이오시밀러 시장은 가격경쟁이 부재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은 바이오시밀러가 출시되면, 기업들이 시밀러 가격을 크게 낮춰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전략을 취한다. 초기에는 오리지널 약가의 50% 수준에서 시작해 8~9년 차에는 80% 수준까지 가격이 하락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한국 바이오시밀러 시장은 가격 경쟁이 거의 이뤄지지 않아 시밀러 가격이 크게 인하되지 않고 있다. 사실상 오리지널과 시밀러 간의 가격 차이가 없다. 그러므로 환자나 건강보험공단 입장에서 재정적 이점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전환 속도가 더딘 것이다. 바이오시밀러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기업 스스로 가격을 낮추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과거 일부 바이오시밀러 기업들이 자사 제품 판매를 위해 오리지널 약의 가격을 높여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다가 사회적 비난을 받았던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넷째, 신약 심사 속도를 높이느라 정작 중요한 바이오시밀러 규제개혁 시기 놓친 식약처를 규탄한다.

토론회에서 식약처장은 신약의 허가심사 속도를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하겠다는 약속을 내놓았다. 실제 식약처는 올해 전문심사관 수를 늘리고, 심사 과정에 인공지능을 도입하겠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다른 나라에 비해 심사관 수는 턱없이 적으며, 심사관들의 근속연수도 매우 짧다. 심사관 몇십 명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인공지능 도입은 더더욱 황당하다. 심사단계의 인공지능 도입를 위해서는 민간기업의 기밀자료를 다른 민간기업의 인공지능 학습하여야 한다. 관련한 민관 협력이 없으면 어렵다. 게다가 미국에서 올해 약물승인속도를 높이겠다면서 인공지능 도구를 도입했지만, 너무 잦은 할루시네이션 문제 때문에 심사관들이 사용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식약처는 아무런 정책수단 없이 무리한 정책목표 달성만 내세우고 있다.

 

반면 식약처는 정작 개선해야 했던 바이오시밀러 규제개혁은 시기를 놓치고 있다. 오래전부터 바이오시밀러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허가과정에 제출을 요구받던 3상 임상시험 자료의 제출면제는 국제사회에서 오랜 논쟁거리였다. 하지만 2021년 영국을 시작으로, 2022년 세계보건기구, 2025년 유럽 EMA가 관련 가이드라인 개정안을 내놨다. 미국도 아직 초안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작년에 관련 가이드라인 개정을 위한 전략을 구체적으로 밝히기도 하였다.

 

과거 한국은 유럽과 더불어 바이오시밀러 개발 가이드라인을 가장 빠르게 도입한 국가 중 하나다. 그러한 선제적 노력이 있었기에 현재 국내 바이오시밀러 기업이 외국에서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토론회에서 식약처장은 올해 9월에서야 가이드라인 개정을 위한 민관협의체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신약 허가 속도를 높이는 정책에 진심이던 한국 식약처가 정작 바이오시밀러 규제개혁은 가장 늦게 시작하는 것이다.

 

의약품은 기업의 이윤을 위한 상품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필수재이다. 의약품 개발은 환자의 생명을 살리고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시작되어야 한다. 이번 토론회는 국민의 생명권과 건강권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정부와 국회가 기업의 민원 해결사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성찰해야 할 계기를 던져주었다. 보건복지부는 보건산업부가 아니며,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제약산업육성처가 아니다. 의료비 급증과 환자 안전 위협을 초래할 수 있는 산업 육성 정책을 즉각 중단하고, 진정으로 국민의 건강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정책의 대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촉구한다.

 

 

2025년 9월 8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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