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이재명 정부의 보건·의료 및 건강보험 정책을 이끌 초대 보건복지부 장관에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이 취임했다. 정은경 신임 장관은 취임사에서 국민과 의료계가 모두 공감할 수 있는 국민 중심 의료개혁 추진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환자의 안전성과 편의성 모두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추진하고, 지역사회 기반 일차의료체계를 구축하며, 희귀·난치성질환자의 의료비 부담을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정은경 신임 보건복지부장관은 코로나19 팬데믹에 감염병 대응체계를 이끌었던 수장이었으며, 오랜 기간 보건복지부에 근무하면서 누적된 의료계 문제들을 잘 이해하고 공공성을 기반으로 적절히 해결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직무 관련된 주식을 남편이 소유했던 것에 대해서는 결과적으로 수익을 벌어들였다는 것과 무관하게 정 장관의 과실이며 향후 이러한 문제가 반복되지 않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이하 건약)는 향후 의약품 접근성과 건강보험 재정에 책임질 행정 수장으로 다음의 과제를 중심으로 의약품 정책을 살필 것을 제안한다.
첫째, 여성들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보장하기 위해 유산유도제(상품명: 미프진)를 당장 도입해야 한다.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2020년 12월 31일 보건복지부와 식약처는 유산유도제의 신속 허가를 약속했다. 하지만 54개월 넘게 지난 지금까지 단 한 개의 유산유도제도 허가되지 않고 있다. 식약처장은 이에 대해 대체입법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핑계를 대고 있지만, 이는 개정시한 이후에 위헌 효과가 발생하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전면으로 부정하는 주장이다. 헌법재판소 결정도 받아들이지 않는 식약처의 엉뚱한 주장에 보건복지부가 명백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아직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들은 의료기관 정보도 알아서 찾아야 하며, 의료기관에서 70~120만 원에 달하는 시술 비용을 지불하며, 낯선 수술대 위에서 임신중지를 받아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약물을 이용한 임신중지는 이보다 정서적으로 안정된 공간에서, 저렴한 가격에, 수술과 동등한 성공 확률로 안전하게 시도할 수 있다. 하루 속히 유산유도제 도입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입장을 밝혀야 한다.
둘째, 지나치게 비싼 제네릭 의약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한국은 급속한 고령화로 만성질환자 수가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으며, 관련 약제비도 매년 10% 이상 크게 증가하여 환자와 건강보험공단의 부담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한국의 높은 제네릭의약품 약가 문제와 직접 연결된다. 의약품은 특허가 만료되면 여러 회사들이 생물학적으로 동등한 의약품을 개발할 수 있으며, 이를 제네릭의약품이라고 한다. 하지만 외국과 달리 한국은 정부가 제네릭마다 상한금액을 지정하는데 일반적인 시장경쟁처럼 가격인하를 통한 경쟁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상한금액이 고스란히 제네릭 가격으로 고정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그로 인해 미국 Rand Corporation에 따르면 한국의 제네릭 가격은 미국보다 3배 높으며, 캐나다 특허의약품가격심의위원회(PMPRB)는 한국을 OECD 국가 중 스위스 다음으로 비싼 국가로 분석하고 있다. 정 장관은 지난 인사청문회에서 제네릭 약가문제에 공감하며 이를 개선하는 약가체계를 개편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건약은 제네릭 약가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 공공입찰을 통한 생산기업 수의 제한 등 경쟁형 약가제도를 빠르게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셋째, 의약품 수급불안정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의약품 공급체계를 공공성 기반으로 개선해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호흡기용제, 변비약, 심혈관계약, 항암제, ADHD 치료제 등 의약품 공급불안 문제가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다. 이는 민간기업의 경제적 논리에 의약품 공급을 의존하게 되면서 수익성이 낮은 의약품은 생산을 하지 않거나 최소화하여 약간의 수요 증가에도 공급이 불안정해지는 문제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이를 해소하려면 시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현행 의약품 공급시스템을 개선하고 기업에서 의약품 생산의 공공적 역할을 일정부분 담당하거나 정부가 재정을 투자한 공공성을 담보한 첨단제조시설을 확보하는 방법이 마련되어야 한다. 장기화된 품절약 문제를 해소할 공급체계의 개선에 개혁적인 방안을 빠르게 마련할 것을 제안한다.
넷째, 신약의 가격을 통제하는 약가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2015년 경제성평가제출 생략제도(이하 경평면제) 도입 이후 일부 신약의 임상적 가치를 충분히 검증하지 않음으로 인해 불필요하게 높은 약가 문제가 초래되고 있다. 신약의 임상적 효과와 비용효과성 검증 절차를 생략함으로써 환자들의 안전하고 효과적인 의약품 사용과 건강보험 재정의 과도한 부담을 일으킬 우려가 높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경평면제 제도를 폐지하고, 신약 도입 후 1년 이내 의무적으로 의료기술평가를 시행하는 방법을 통해 신약의 접근성과 재정안정화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것을 제안한다.
마지막으로 제약·바이오산업 육성을 위해 국민들의 안전을 희생시켜선 안 된다. 정 장관은 취임사에서 제약·바이오 강국 도약을 위해 국가 투자를 강화하고 보건의료 R&D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오랜 기간 복지부는 제약산업 육성이라는 명목으로 의약품 관련 규제를 완화하여 신약 개발 및 산업육성을 촉진하는 정책을 사용해왔다. 최근에도 첨단재생바이오법 개정을 통해 허가 등의 검증이 부재한 줄기세포 등 세포치료제를 환자에게 팔 수 있도록 규제가 완화되었다. 이후 의료기관들은 검증되지 않은 세포치료술을 홍보하거나 혁신적인 명약인 것처럼 둔갑하여 환자들을 속이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 기업이 생산한다는 이유로 약 가격을 우대한다거나, 검증되지 않은 치료를 환자에게 시행하는 신의료기술평가 유예제도 등 환자들의 안전이나 건강보험 재정보다 산업 육성을 우선하면서 제2의 인보사 사태가 발생할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더 이상 보건의료 제도와 정책이 생명보다 이윤을 앞세우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윤석열 정부 하에서 통과되었던 규제완화 문제를 빠르게 해소할 것을 제안한다.
보건복지부는 당장 장기화된 의정갈등 문제, 간병비 부담 등 돌봄 문제, 비대면진료와 의료영리화 문제 등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쌓여있지만, 의약품 문제도 국민 보건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의제이다. 정은경 신임 복지부장관은 국민건강을 우선하는 의약품 정책에 일관성을 가지고, 시민사회와 함께 의약품 관련 문제를 해소해 나갈 것을 기대한다.
2025년 7월 23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