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라미비르 매출 급상승...제약사와 실손 보험이 만든 과잉 의료
작년 말부터 역대급 인플루엔자(독감) 유행이 이어지고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14년 관련 조사가 시작된 이래로 지난 1월 첫 주에 가장 많은 독감 환자가 발생했다. 주로 10대들을 중심으로 발병률이 높았다. 다행히 1월 초부터 겨울방학이 시작되면서 집단 유행이 잠잠해지는 추세다. 하지만 지난 설 명절과 2월부터 졸업식을 앞두고 학생들이 다시 학교에 등교하면 언제 다시 유행이 불붙을지 알기 어렵다.
역대급 독감 유행은 관련 치료제 시장도 들썩거리게 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개인위생이 강화되면서 관련 항바이러스제의 처방이 크게 줄었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 독감 환자가 크게 늘면서 항바이러스제 사용이 급격하게 늘었고, 몇몇 품목은 품절까지 겪고 있다.
한국에서 독감에 사용하는 항바이러스제는 크게 3가지다. 먹는 형태의 오셀타미비르(대표상품명 타미플루), 발록사비르(대표상품명 조플루자)가 있고, 정맥에 주사제로 투여하는 페라미비르(대표상품명 페라미플루)가 있다.
이 중 타미플루는 하루에 2번씩 5일 동안 챙겨 먹어야 한다는 불편함은 있지만 건강보험이 적용되어 비교적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조플루자와 페라미플루는 1회 투여로 사용할 수 있어 편하지만 환자가 치료제 비용을 전액 부담해야 하는 비급여 약이다.
몇 년 전에는 대부분의 환자가 오셀타미비르를 사용했다. 약을 빠짐없이 5일간 복용하는 것이 큰 불편으로 생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특히 소아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독감 치료에서 페라미비르의 사용량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작년과 올해 독감 유행 시기에 페라미비르의 사용량 증가로 많은 병의원에서 품절 현상까지 겪었다.
의약품 시장조사업체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2023년 589억 원 규모의 독감 치료제 시장에서 페라미비르 성분 매출이 217억 원으로 36.3%를 차지했고, 2024년 1분기에는 전체 독감 치료제 매출액 중 49.7%인 60억 원까지 페라미비르 매출액이 늘어났다고 한다. 아직 수치로 집계되지 않았지만, 체감적으로 이번 겨울 페라미비르 사용량은 작년보다 더 늘었다.
페라미비르를 맞으려면 팔에 정맥주사 바늘을 찔러야 하고, 병실에 1시간가량 누워서 주사 맞는 번거로움이 있음에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독감 주사제에 영양제며 진통제 등을 넣어 같이 치료하면 비용은 15만 원이 훌쩍 넘는다. 반면 페라미비르 대신 오셀타미비르를 포함한 먹는 약을 사용하면 1만 원이 안 되는 비용이 든다.
사실 독감에 걸리면, 다른 감기약도 먹어야 하므로 하루에 2번 항바이러스제를 먹는 복용법이 그리 번거로운 일은 아니다. 게다가 정말 귀찮으면 1번 먹는 독감약인 발록사비르도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오셀타미비르보다 훨씬 비싸고, 발록사비르보다 사용하기도 힘든 이 약을 왜 선호하게 된 것일까?
허가된 지 15년 만에 주목받는 페라미비르
▲독감 바이러스 치료제 ‘페라미플루’GC녹십자
페라미비르는 2010년 한국에 들어왔다. GC녹십자가 개발사인 미국의 바이오크리스트 파마슈티컬즈와 계약을 맺고 페라미플루라는 이름으로 출시했다. 처음에는 크게 인기가 없었다. 기존 경구약인 오셀타미비르와 치료 효과는 유사했고, 사용 방법은 불편했기 때문이다.
바빠서 쉴 시간도 없는 직장인들이 병실에 누워 독감 수액제를 맞을 시간이 없었으며 비싸다는 인식도 컸다. 그런데 2018년 2세 이상 소아 대상 환자도 사용할 수 있게 적응증이 확대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2021년 페라미플루라는 오리지널약의 특허 기간이 만료되자, 국내 제약회사들이 페라미비르 성분 제네릭의약품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종근당, 제이더블유생명과학을 필두로 2025년 1월까지 17개 회사가 20개 종류의 페라미비르 성분 항바이러스제를 허가받았다.
페라미비르를 판매하는 제약회사들이 많아지면서 관련 독감 치료제 시장은 급격하게 증가했다. 여러 회사들은 경쟁적으로 판매에 나섰기 때문이다. 페라미비르 성분 매출액은 2019년 74억 원, 2021년 98억 원이었는데 2023년에 361억 원으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세계보건기구 및 국제사회는 제네릭의약품 사용을 권장한다. 제네릭의약품 활성화 정책은 국민 의료비를 절감하고 치료제의 접근성을 높이는 중요한 보건의료 정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페라미비르 성분 제네릭의약품의 등장은 국민 의료비 절감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제네릭의약품이 등장하면서 값싼 경구약 대신 비싼 주사제를 처방하는 의사들이 점차 증가했다. 심지어 GC녹십자의 페라미플루 매출액까지 덩달아 증가했다. 제네릭의약품의 등장이 갑자기 독감수액주사제 시장을 창출했고 환자 치료비는 크게 증가시킨 것이다.
이런 아이러니한 변화는 상시적인 '혼합진료'와 한국의 실손보험이 유발하는, 비중증 질환의 과잉 진료화와 관련이 있다. 한국은 건강보험에서 보장하는 급여 진료와 그렇지 않은 비급여 진료를 동시에 할 수 있는 '혼합진료'가 가능하다.
외국에서는 이러한 혼합진료가 어렵지만, 한국은 과거 건강보험 보장률이 낮은 시기에 급여 진료 행위를 보완하기 위해 비급여를 섞어서 진료하도록 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혼합진료 금지 논의는 오래전부터 이어졌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한국형 실손보험은 급여 진료와 비급여 진료를 구분하지 않고 비용을 지원한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급여 진료는 정부가 충분히 보장하기 때문에 비급여 진료만 따로 떼어 일정 역할을 하지만 한국은 이를 구분하지 않고 몽땅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필수적인 진료를 위해 병의원을 방문하더라도 급여와 비급여를 섞어 진료를 받고 있으며, 급여와 비급여 구분 없이 실손보험을 통해 비용을 지원받게 된다.
의료시장의 공급자 유인 수요
▲미국의 제약회사 길리어드 사이언스가 개발한 인플루엔자 치료제 타미플루위키미디어 공용
의사들도 이런 속사정을 잘 알고 있다. 요즘 병의원을 방문하면 실손보험 가입 여부를 확인하고 실손보험이 있다고 하면 비급여 진료를 하나씩 끼워넣기 시작한다.
요즘처럼 인플루엔자 유행주의보가 발령된 경우, 독감 유사 증상을 가진 환자는 검사 없이 오셀타미비르를 처방받을 수 있음에도 의사는 비급여인 독감 검사를 권장한다. 그리고 급여 의약품인 오셀타미비르 대신 비급여 약인 페라미비르를 권장한다. 게다가 수액에 실제 매입가는 몇백 원짜리인 영양제를 2~3만 원에 팔기 위해 같이 끼워준다. 그럼에도 실손보험에 가입된 환자들은 특별한 의심 없이 독감 수액 주사제를 맞고 돌아간다.
마치 중고차 시장에서 딜러가 시세정보가 부족한 소비자에게 비싸게 차를 파는 것처럼 정보가 비대칭한 점을 이용해 의사가 약의 수요를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페라미비르 매출이 결정될 수밖에 없다.
지난 1월 17일 대신증권 리포트에 따르면, 실손 보험사들이 최근 독감 환자의 증가로 관련 청구량이 급증하면서 5개 보험사 합산 약 4870억 원의 손실액이 발생했을 것으로 추산했다. 이러한 손실액은 보험사가 떠안지 않을 것이다. 나중에 가입자의 보험료를 높여 손실을 메꿀 것이며 결국 환자들은 이중으로 피해를 보게 된다.
페라미비르는 오셀타미비르 사용이 어려운 환자에게 대체할 수 있는 좋은 독감 치료제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최근 품절 대란을 일으킬 정도로 늘어난 페라미비르의 사용량은 비중증 질환에 대한 과잉 처방 행위의 결과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과 실손보험의 역할을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 또한 의사들이 행위를 늘릴수록 이익을 얻어가는 행위별수가제를 포함한 수가체계의 개혁이 필요하다.
제도적 개선과 더불어 더욱 중요한 것은 의료인들의 각성이다. 환자와 의사 간 정보 불균형과 무관하게 환자의 경제적 상황과 치료 이익에 충실한 대리인 역할을 할 의사가 많아져야 한다. 의대 정원이 아무리 증원되더라도 졸업하여 의사가 된 사람들이 환자를 충실히 대리하지 못한다면, 지금 얽혀있는 사회문제는 더 악화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