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왼쪽부터)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 [출처: 메디파나뉴스]
- 유산유도제 허가지연에 대체입법 핑계는 너무나 궁색해
- 말바꾸기 핑계로 유산유도제 도입을 요구했던 국민은 7년간 제자리 걸음
지난 23일 국회 보건복지위 종합국정감사에서 김선민 의원은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에 임신중지의약품(이하 유산유도제)의 도입이 지연되는 점에 대해 자료요청을 한 결과, 위해성 관리계획 등 허가요건을 갖추기 위해 임신중지 허용주수가 결정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답변을 받았다며, 법 핑계 그만하고, 허가를 속히 재개하라고 주장하였다.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이하 건약)가 관련하여 식약처의 답변자료를 확인한 결과, 임신중지약의 효능·효과, 위해성관리계획 중 ‘환자용 안내서’ 등의 자료에 임신주수에 대한 설명을 적시하기 위해 대체입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보인 식약처 대응은 대단히 충격적이다. 식약처가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내린 헌법불합치 결정을 전면으로 부정하는 꼴이며, 자기결정권에 따라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들의 유산유도제 접근권을 무시하는 처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식약처의 직무유기적 태도를 규탄한다.
첫째, 유산유도제의 허용임신주수는 처벌규정에 따른 것이 아니라, 허가 자료에 기반해야 한다.
약물임신중지는 임신허용주수에 따라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 약물을 이용한 임신중지는 임신 1삼분기에 시행했을 때, 매우 효과적이고 안전한 방법이다. 하지만 후기 약물임신중지는 성공률이 점차 낮아지므로 세계보건기구 및 많은 국가들이 수술적 방법을 권장한다.
따라서 유산유도제의 허가 사항은 사용가능 임신주수를 명시해야 하며, 이는 규제기관이 안전성·유효성 자료를 과학적으로 검토하여 결정해야 된다. 검토하는 자료에 따라 각 국의 사용가능 임신주수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하지만 어떤 나라도 유산유도제의 사용 임신주수를 법률적 허용주수와 연동하여 명시하는 국가는 없다.
* 캐나다는 ‘미페지미소’를 마지막 생리일로부터 최대 63일 이내 약물 임신중단을 위해 사용하라고 설명하고 있다.
* 미국은 ‘미페프렉스’를 임신 70일 이내 약물임신중단을 위해 사용하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국정감사에서 식약처가 답변한 내용은 허가 사항 내 주수 표기를 법률에서 허용하는 임신주수와 연동해야 하는 것처럼 주장하였다. 대체입법에 의해 허용가능한 임신주수가 정해져야지만, 거기에 맞게 효능·효과 등의 표기에 임신주수를 정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너무나 우스운 일이다. 식약처가 말하는 대체입법은 한번 정하면 만고불변인가? 어짜피 법이라는 것은 국회의 논의결과에 따라 하루아침에도 변동될 수 있다. 당연히 과학적으로 안전하게 사용가능한 임신주수를 결정하고 현행 법령에 맞게 사용하면 된다. 그리고 현행법은 낙태죄가 개정입법 시한이 도래되어 위헌 상태에 준하여 사라졌기 때문에 더더욱 식약처가 허가사항을 정하는데 제한이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식약처는 대체입법을 이유로 유산유도제 허가를 보류하는 것은 궁색한 변명이다.
둘째, 식약처는 지난 4년간 유산유도제 허가를 기대했던 국민을 우롱하였다.
헌법재판소가 정한 개정입법시한이 도래하여 위헌결정에 준해 낙태죄 등의 효력이 상실되기 직전인 2020년 12월 31일에 식약처는 2021년 1월 1일부터 유산유도제의 허가가 가능하며 신속하게 심사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하였다. 그 외에도 식약처는 수차례 국민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며, 엄밀하게 과학적 자료에 근거하여 의약품을 허가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또한, 식약처는 지난 2022년 12월 현대약품의 ‘미프지미소’의 허가심사를 중단하며 배포한 보도자료에서도 “신약의 심사기준에 따라 안전성·유효성, 품질자료 등에 대한 일부 자료보완을 요청했”으나 현대약품이 기한 내 제출이 어렵다고 판단해 신청을 스스로 취하했다고 밝히면서 “앞으로도 규제과학 전문성을 바탕으로 심사해 안전·효과·품질이 확보된 의약품을 허가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2년만에 ‘안전하고 효과적인 의약품을 허가’하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정치적 이유에 기대어 허가를 보류하는 태도로 돌변한 것이다.
현대약품은 2022년 12월 허가신청을 철회하고 나서 3개월 만에 자료를 보완하여 다시 동일 품목의 허가를 신청하였다. 당시 식약처가 대체입법을 이유로 허가를 보류하였다면, 현대약품이 3개월 만에 재신청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게다가 식약처는 유산유도제 허가와 관련하여 가교임상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중앙약사심의위원회 및 사용단계의 안전관리방안 자문회의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만약 식약처가 처음부터 대체입법 때문에 허가가 어렵다는 입장이었다면, 중앙약사심의위원회 등의 회의를 개최할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식약처가 대체입법 때문에 허가요건이 충족하지 않다는 주장은 단지 허가를 막기 위해 새롭게 핑계를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하다. 식약처의 유산유도제 허가 보류는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을 무혐의 처분한 검찰에 빗대어도 모자라지 않을만큼 후안무치한 결정이다.
우리는 2017년 23만 명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유산유도제 도입을 요구했던 기억을 잊지 않고 있다. 당시 시민들에게 유산유도제 도입은 낙태죄 폐지라는 구호와 ‘동의어’였다. 그리고 2년 뒤 낙태죄는 헌법불합치 결정이 이뤄지며 폐지되었지만, 유산유도제 도입은 7년째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식약처는 대체입법 타령을 멈춰야 한다. 이는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며, 오랜 기간 유산유도제를 요구했던 시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것이다. 식약처는 유산유도제를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하고 즉각 도입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