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약이 알고 싶다_1편] HIV 치료제 개발 뒤에 숨겨진 검은 속셈

수익 극대화 위해? '부작용이 있는 약 계속 먹게 하라'

 

2024년은 한국에서 후천면역결핍증후군(HIV/AIDS) 감염이 보고된 지 39년이 된 해다. 예전에는 에이즈가 곧 죽는 무서운 병처럼 인식되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동안 많은 HIV 치료제가 개발되었고, 이제는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평생 관리하는 만성질환처럼 여겨질 정도로 감염인들의 수명이나 삶의 질 측면에 많은 개선이 이뤄졌다. 하지만 많은 HIV 감염인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어려움이 있다. 바로 HIV 치료제의 부작용 문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포스터시티에 있는 길리어드 사이언스
▲  미국 캘리포니아주 포스터시티에 있는 길리어드 사이언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세계적 제약회사 중 하나인 길리어드 사이언스(이하 길리어드)는 주로 항바이러스제를 개발하는 다국적 제약사이다. 독감 치료제 타미플루의 주요 개발기업이며, 이후에 C형 간염 치료의 혁신을 불러온 소발디를 출시했다.

하지만 길리어드에서 꾸준히 개발하고 있는 분야는 HIV 치료제이다. 길리어드의 대표적인 약인 HIV 치료제 빅타비는 2023년 한해에만 118억 달러(16조 48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는 길리어드 전체 매출의 43.9%에 달한다.
 

빅타비는 빅테그라비르, 엠트리시타빈, 테노포비르 알라페나미드 푸마레이트(이하 TAF) 등 3가지 항바이러스제가 포함된 복합제로 2018년 미국에서 처음 출시됐다. 그 외 HIV 치료제로는 젠보야와 데스코비가 있으며, 이 약들도 작년 한 해 5억 달러(6800억 원) 넘는 매출을 기록하였다.

길리어드에서 가장 높은 매출을 기록하는 빅타비, 젠보야, 데스코비의 공통점은 바로 TAF가 포함된 복합제라는 점이다. TAF는 기존 치료제였던 테노포비르 디소프록실 푸마레이트(TDF)에 비해 구조가 안정적이고 타깃 세포에 보다 특이적으로 작용한다.

30분의 1의 용량으로도 동등한 효과를 발휘하는 TAF는 일종의 TDF 업그레이드 버전인 셈이다. 더 적은 양으로도 같은 치료 효과를 내는 이 약은 신장과 뼈를 약하게 만드는 기존 약의 고질적인 부작용도 줄였다고 발표되면서 감염인들에게 희소식이 되었다.

길리어드의 이윤 극대화 전략
 

2022년 12월 1일(현지시간) 미국 에이즈의료재단(AHF) 소속 활동가들이 캘리포니아주 오션사이드에 있는 길리어드 사이언스 사무실 앞에서 '탐욕을 멈추라'는 팻말을 들고 세계 에이즈의 날 시위를 하고 있다. 에이즈 및 C형 간염 치료제에 대한 길리어드의 약가 및 정책에 대한 탐욕을 겨냥해 전국에서 같은 날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된 일련의 시위 중 하나였다.
▲  2022년 12월 1일(현지시간) 미국 에이즈의료재단(AHF) 소속 활동가들이 캘리포니아주 오션사이드에 있는 길리어드 사이언스 사무실 앞에서 '탐욕을 멈추라'는 팻말을 들고 세계 에이즈의 날 시위를 하고 있다. 에이즈 및 C형 간염 치료제에 대한 길리어드의 약가 및 정책에 대한 탐욕을 겨냥해 전국에서 같은 날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된 일련의 시위 중 하나였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길리어드는 TAF 개발에 대해 의심을 받았다. 신장과 뼈 관련 부작용을 개선한 TAF가 출시된 2015년이 기존 치료제인 TDF의 의약품 특허가 만료되는 2017년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물질 개발과 약효 효율 개량에 똑같이 독점을 보장하는 특허제도의 맹점을 다국적 제약회사가 편법적으로 활용한 것으로, '에버그리닝' 전략이라 부른다.

TDF를 이용한 HIV 치료제 트루바다와 TAF를 이용한 데스코비처럼 활성 성분이 같더라도 결정형을 바꿔 전혀 다른 물질인 것처럼 새롭게 특허를 받아 독점을 연장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결국 길리어드는 의도적으로 개량형인 TAF 출시를 TDF 특허가 만료되는 시점에 맞춘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의심은 시간이 지나 사실로 드러났다. 길리어드가 연구 중이었던 TAF를 의도적으로 지연시켰다는 내부 문건이 확인된 것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길리어드는 2002년에 새로 발견한 약이 기존 약에 비해 환자에게 더 안전한 약물이 될 것이라는 충분한 근거가 있었고, 개발 일정도 2006년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2003년 내부 회의에서 이윤 극대화를 위한 전략을 수립했고 독점을 최대한 연장하기 위해 2015년에 출시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2017년에 TDF 특허가 만료되면 다른 회사들이 제네릭(복제약)을 생산해 길리어드의 매출이 크게 감소할 것을 예상하고, 이를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기존 약을 개량한 TAF 개발을 지연시켜 2017년 이후에도 시장점유율을 유지하자는 결정을 한 것이다.

길리어드는 이 과정에서 약을 복용하는 환자들의 피해는 고려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결정을 통해 지금도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관련 약물의 독점을 유지하고 있으며 TAF 기반 HIV 치료제는 연간 약 15조 원에 달하는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큰사진보기길리어드의 HIV 치료제 독점 연장 전략
▲  길리어드의 HIV 치료제 독점 연장 전략
ⓒ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관련사진보기

  
길리어드의 이윤과 맞바뀐 환자들의 건강 피해는 심각했다. 9년 간의 신약 개발 지연으로 기존 치료제를 오랫동안 복용한 환자들은 신장 기능의 약화와 골밀도 감소에 따른 골다공증 문제를 호소했다. 길리어드에 엄청난 이윤을 가져다준 독점 연장 전략이 수만 명의 감염인들에게는 불필요하게 부작용 많은 약을 먹고, 신장과 뼈 질환을 겪게 만들었다.

미국에서는 TDF를 오래 복용해 신장질환과 골다공증을 겪은 2만 4000명의 피해자들이 길리어드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1월 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항소법원은 길리어드가 TDF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TAF의 개발을 지연시킨 행위가 비윤리적이며 그로 인해 발생한 피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며 환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길리어드는 이에 반발해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에 소를 제기하였고 최근에 주 대법원이 항소법원의 결정을 검토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병 주고 약 주는 초국적 제약회사

길리어드는 최근 한국의 퀴어 커뮤니티 안팎에서도 화두가 되고 있다. 퀴어 운동에 참여하거나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제 '길리어드'라는 회사를 모르기가 어렵다.

길리어드 코리아는 사회공헌의 일환으로 HIV 인식개선 프로젝트를 대대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2018년부터 성소수자 관련 여러 단체를 지원하기 시작했고, HIV 예방 관련 영화나 뮤지컬도 제작하고 있다. 재작년부터는 퀴어 커뮤니티 최대의 축제인 서울퀴어퍼레이드도 적극 후원하며 직접 부스를 차리고 차량행진에 나섰다.

하지만 사업 현장에서는 수익 극대화를 위해 부작용을 방치하고 이로 인해 피해 입은 감염인과 소송을 하는 기업이, 그 수익금의 새 발의 피도 안되는 돈으로 "차별과 낙인으로 고통받는 HIV 감염인의 고충을 위로하는 기업", "사회적 인식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기업" 이미지를 가져가는 것에 대해 마음 편히 박수치기는 어렵다.
 

2022년 7월 7일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는 '초국적 제약회사의 후원을 퀴어커뮤니티가 경계해야 하는 이유'라는 성명을 내고 길리어드 사이언스 코리아의 서울퀴어퍼레이드 행진차량 참여에 유감을 표했다.
▲  2022년 7월 7일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는 '초국적 제약회사의 후원을 퀴어커뮤니티가 경계해야 하는 이유'라는 성명을 내고 길리어드 사이언스 코리아의 서울퀴어퍼레이드 행진차량 참여에 유감을 표했다.
ⓒ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관련사진보기

 
HIV/AIDS 인권활동가네트워크와 많은 감염인, 퀴어 활동단체들은 이러한 길리어드의 행태를 '핑크워싱'으로 지목하며 초국적 제약회사의 공세적인 후원을 경계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의 지원을 거부하며 비판하고 나선 것은 제약회사의 선택적인 후원을 받는 것보다 모든 감염인들이 안전하고 합리적인 가격의 약을 보장받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약을 먹는 환자 입장에서 자신의 생명을 살리는 약을 만드는 기업의 탐욕을 두고 양가적인 감정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또한 제약회사의 엄청난 권력일 것이다. 우리는 제약회사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 권력이 환자의 생명이 아닌 자신의 이익을 채우기 위해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끊임없이 통제하고 감시해야 한다.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는 정기 연재를 통해 이러한 문제를 짚는 활동을 할 예정이다.

Shar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