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넷] [낙태죄 폐지 이후 임신중지 권리 보장을 위한 입법촉구 기자회견]

 

[기자회견]

모자보건법 개정안 국회 통과를 촉구한다

 

[기자회견 순서]

 

  1. 사  회 : 안나(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2. 발언1 : 나영(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3. 발언2 : 김성이(시민건강연구소)

  4. 발언3 : 김지윤(녹색당)

  5. 발언4: 정의로(장애여성공감)

 

[발언 1] 나영(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어느덧 2023년 말이 되었습니다. 올해는 ‘낙태죄’의 법적 실효가 사라지고 임신중지가 더 이상 처벌의 영역으로 다뤄지지 않게 된지 3년차가 되는 해였습니다.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 보장 네트워크는 그간 계속해서 유산유도제 도입과 건강보험 적용 확대 등 실질적인 권리 보장을 위한 정책과 제도를 추진해 나갈 것을 정부와 보건당국에 요구해 왔습니다. 그리고 올해 8월에는 보건복지부와 식약처를 대상으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 진정을 접수했습니다. 비범죄화 이후에도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보건복지부와 식약처의 태도로 인해 차별적이고 부당한 의료 환경과 건강권의 침해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3년간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권리 보장을 위한 모자보건법 개정에는 손을 놓고 있던 국회는 올해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를 먼저 통과시켰습니다. 출생통보제는 당연히 필요한 제도였으나 여전히 이주민의 권리는 포괄하지 못하였고, 출생통보제를 이유로 급속도로 추진된 보호출산제는 지난 수년간 많은 이들이 익명출산제를 반대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국가는 지금 이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실질적인 삶의 권리를 이토록  방치하면서, 그저 우선 낳아서 키울 수 없으면 익명으로 시설에 보내라는 태도 뿐입니다. 임신출산도, 임신중지도 권리로서 보장되지 못하고 ‘위기 임신’이라는 틀에서 선별적이고 제한적인 지원만이 주어질 뿐입니다. 그리고 다시 이렇게 또 한 해가 다 저물 무렵이 되어서야 모자보건법 논의를 겨우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의료, 상담 현장에서는 형법 낙태죄의 폐지와 함께 이제는 의미가 없는 모자보건법 14조를 이유로 지원 여부를 결정하고, 환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고, 과도한 병원비를 청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내일 진행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 논의에서 이제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실질적인 임신중지 권리 보장을 위한 진전을 만들어낼 것을 촉구하며 우리의 원칙과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형법 낙태죄 조항에 대한 재논의는 필요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강조합니다. 형법 낙태죄는 이미 헌법재판소가 주문한 개정입법 시한을 도과하여 효력을 상실한지 3년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지난 9월에 진행되었던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도 여전히 형법 개정을 핑계로 삼는 발언이 등장하였습니다. 이번 소위 회의에서는 더 이상 형법 개정을 핑계로 삼거나 여지를 두지 말고 형법 낙태죄 조항과 함께 그 의미를 상실한 모자보건법 개정안 14조의 완전한 삭제와 약을 이용한 임신중지에 대한 근거 마련, 관련 상담 체계와 권리 규정을 포함한 개정안을 중심으로 책임있는 논의를 진행해야 할 것입니다. 

 

모임넷은 이러한 방향에 어긋나는 어떠한 방식의 타협에도 반대하며, 이런 시도가 진행될 시에는 즉각 대 국회 투쟁에 돌입할 것입니다. 

 

그리고, 유산유도제 도입과 건강보험 적용 확대의 근거를 시급히 마련할 것을 촉구합니다. 특히 건강보험 적용의 확대는 단지 의료비의 지원 뿐만 아니라 임신중지와 관련된 의료 체계를 공식화하고, 정확한 실태 파악을 통해 보건의료 연계 체계를 마련해 나가기 위한 기본 조치로서도 반드시 추진되어야 합니다. 약을 이용한 임신중지를 반영하는 근거 조항을 반드시 이번 회의에서 통과시키고, 건강보험 보장 확대의 근거가 마련되도록 권리 보장 조항들을 포함하는 개정안을 중심으로 개정을 추진할 것을 촉구합니다. 

 

아울러, 세계보건기구는 임신출산과 임신중지에 대한 포괄적 상담과 케어를 권고하고 있습니다. ‘위기임신’ 지원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임신출산과 임신중지, 피임, 양육에 대한 상담과 지원을 보편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도록 포괄적인 상담과 보건의료 체계를 모자보건법 개정에 담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방향을 위해서는 2020년 정부안에 포함되었던 임신중지 사전 의무로서의 상담 의무, 숙려기간, 제3자 동의 확인 같은 규제 조항들은 절대 포함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2020년 12월 31일 우리는 여기 국회 앞에서 임신중지의 완전한 비범죄화를 선언하고 축하했습니다. 그러나 현재 법안 심사의 대상인 관련 모자보건법 개정안의 대부분은 2020년 당시의 상황과 인식에 머물러 있습니다. 당시 정부는 오히려 후퇴하는 법안을 발의했고, 현 정부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으며, 겨우 공청회 한 번으로 그 해를 마무리했던 국회 역시 당시의 인식에서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어 보입니다. 

 

이제는 조금이라도 진도를 나가야 합니다. 내일 복지위의 법안심사 소위에서 조금이라도 진전된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2023년은 2020년과는 달라야 합니다. 2023년이 마무리 될 때, 변화를 안고 갈 수 있도록 국회에서 책임있는 논의를 진행할 것을 강력히 요구합니다. 

 

[발언 2] 김성이(시민건강연구소)

 

갈채와 환호 속에서 역사속으로 사라진 2019년 4월 ‘낙태죄’  폐지 결정은 여성인권과 성·재생산건강의 보장이라는 국제적 규범과 여성운동의 결집된 압력이 이끌어낸 시대정신의 선언이었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4년 7개월이 넘도록 그 시대정신을 구체화하는 어떠한 법제도적 움직임으로도 이어지지 않고 딱 거기에서 멈춰 서있다.

여성들이 자신의 삶에 도전하여 이뤄내는 사회경제적 성취는 무엇보다 자신의 몸에 대한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통제로부터 출발한다. 우리가 임신을 중지할 권리를 국가에게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정부도, 국회도, 많은 보건의료전문가들도 책임 있는 정책결정과 후속 대책을 외면하거나 방관하고 있다. 

전국민을 아우르는 국민건강보험제도와 세계적인 수준의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향유할 수 있는 한국에서, 유독 임신중지에 관련한 의료서비스와 약물을 이용할 수 없는 현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건강권의 관점에서 본다면, 여성들은 안전하게 임신중지 수술을 할 수 있는 의료기관과 의료인을 찾기 어려운 접근성의 문제, 임신중지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가 보장되지 않기때문에 병원의 무리한 진료비 요구에 대한 경제적 부담, 의료인의 차별적이고 모욕적인 발언과 진료 거부, 효과적이고 안전한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문제를 모두 겪고 있다. 

지금까지 임신중지에 대한 불법화와 제한은 의료인력의 교육 및 수련과정에서 해당 내용을 습득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최신 의학기술과 정보를 활용할 수 없는 현재의 상황은 그 당연한 결과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1980년대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유산유도제를 아직도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상황은 바로 그것을 증명한다.  한국에서는 유산유도 약물이 필수의약품에 포함되지 않고 있어 내과적 임신중지에 접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비공식적 약물 사용 실태나 그로 인한 후유증과 합병증 등 건강권 침해사례에 대해서 알 수도 없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하는 피해는 누가 감당해야 하는가. 신뢰할 수 있는 공식 정보를 접하기 어렵거나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가장 취약한 여성들이다. 왜곡된 사회보장체계가 힘없는 여성들에게 불평등을 강요하면서 되돌릴 수 없는 비용을 부담시키는 것이다.

임신중지 권리에 대하여 국내외에서 발표된  수많은 의과학적 근거들, 역사적 진전을 이뤄낸 중요한 정치적 결정들, 무엇보다 당사자 여성들이 겪는 현실의 비참한 고통들을 앞에 두고도 국회와 정부가 임신중지권을 이처럼 철저히 외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탄압이며 인간으로서의 여성의 권리에 대한 부정이고, 동시에 여성에 대한 강고한 차별과 혐오의 정치에 다름아니다.

누구나 임신중지를 포함하여 피임, 임신, 출산, 가족구성, 섹슈얼리티에 대하여 억압이나 차별 없이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성·재생산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정치적 정의, 경제적 정의, 문화적 정의를 달성하는 길이기도 하다. 우리는 오늘 다시 한번 크게 소리높여 국회에 요구한다. 진도 좀 나가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임신중지 권리 보장을 위한 모자보건법 개정에 최선을 다하라!

 

[발언 3] 김지윤(녹색당)

 

형법상 낙태죄가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는 헌법재판소의 선고가 있은지 4년여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후 임신중지는 더이상 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보건의료 체계에 포섭되지도 않은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있었습니다. 여성의 삶도 그처럼 위태롭고 불안한 상태로 방치돼 있어야 했습니다.

 

여성은 누구나 일생에 한 번쯤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될 가능성을 안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누구나 살면서 예상하지 못한 일, 원치 않는 일을 겪곤 합니다. 그게 인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임신중지로 인해 여성의 삶이 무너지거나 존엄이 훼손되어선 안 됩니다. 그것은 여성의 기본권입니다.

 

여성의 존엄과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국가는 임신중지가 건강하고 안전하도록 보장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국가의 의무를 다 할 시간이 4년 넘게 있었지만, 정부와 국회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끊임없이 책임을 회피하고 국회는 정부에 정부는 국회에 책임을 떠넘겼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제 현 21대 국회의 임기가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국회의 시계는 내년 총선에 맞춰져 있습니다. 남은 임기 동안 첨예한 쟁점 법안들은 논의되기 어려울 거란 말을 공공연히 하고 있습니다.

 

참 사실 염치없는 소리입니다. 아니 그럼 이때까지 4년 임기가 다 돼도록 대체 뭘 했다는 얘기입니까. 시간이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논의에 박차를 가하십시오. 내일 복지위 법안소위에서 여성의 임신중지권 보장을 위해 단 일말의 성과라도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또 빈손 국회로 끝낸다면 우리는 반드시 그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현재 복지위 의원들, 제1법안소위 의원들 다시는 여의도에 발도 붙이지 못하도록 만들겠습니다. 끝까지 쫓아가 책임을 묻겠습니다. 내일 회의를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발언 4] 정의로(장애여성공감)

 

지난 2019년 낙태죄 폐지 이후 국가인권위원회는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가 장애여성을 강제불임 시술이나 낙태로부터 보호할 것을 권고했다"라며 "모자보건법 제14조는 우생학을 바탕으로 한 장애 차별조항으로 장애 여성 당사자의 동의 없는 강제불임 시술이나 낙태를 정당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고 장애인을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게 하는 낙인효과를 가져올 수 있어 폐지에 대해 심도 있는 검토가 필요하다"고도 밝혔습니다. 

 

그러나 모자보건법 14조는 형법상 낙태의 효력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14조 임신중절 허용사유 중 제1항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 질환이 있는 경우’는 생명을 선별해온 국가의 인권침해 역사가 점철된 명백한 차별 조항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현재를 살아가는 장애여성의 성과 재생산권리 및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근거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상담소는 모자보건법 14조 허용사유에 근거하여 임신중지 지원이 가능하긴 합니다. 그러나 모자보건법 성폭력 피해로 인한 인공임신중절은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만 가능하므로 그 밖의 경우에는 의료비를 지원할 수 없습니다. 다만, 정신 장애인으로 피해 사실을 소명할 수 있는 구체적 증거 확보가 어려운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모자보건법 14조 1항에 의해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1항의 경우 배우자의 사망ㆍ실종ㆍ행방불명, 그 밖에 부득이한 사유로 동의를 받을 수 없으면 본인의 동의만으로 그 수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인이나 배우자가 심신장애로 의사표시를 할 수 없을 때에는 그 친권자나 후견인의 동의로, 친권자나 후견인이 없을 때에는 부양의무자의 동의로 각각 그 동의를 갈음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할 수 없을 때!!! 꼬리에 꼬리를 물며 붙는 단서 조항들이 무엇이 문제인지 아십니까? 

장애여성의 의사가 당사자가 아닌 주변인을 통해 대리될 수 있도록 하는 국가는 빈틈없이 당사자의 권한을 의료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 가족 등 보호자로 호명되는 다른 이에게 정당한 절차처럼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 끝없는 단서조항들은 국가가 모자보건법이 만들어졌던 1973년부터 장애여성이 임신을 유지하거나 중단하는데 있어서, 성과 재생산 권리 실천에 있어서 장애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단서조항에 가두며 차별하고 인권을 침해해온 역사입니다 . 

모자보건법 제14조는 낙태죄가 실효성이 없어졌기 때문에 폐지해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장애와 질병을 가졌다는 이유로 생명과 인권이 박탈되어왔던 그 역사를 중단하는 시작입니다. 더 이상 장애여성의 성과 재생산 권리가 침해될 수 없도록 반드시 폐지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인권침해의 잔재를 여전히 짊어지고 가면서 어떻게 국가가 여성의 인권을 논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제 국가와 국회가 나서서 해야 하는 것은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성과 재생산권리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 보장과 성과 재생산권리 보장을 위해서는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의료공공성 확보를 위한 안전한 유산유도제 도입과 건강보험 적용은 그 시작입니다. 

이것은 시작일 뿐이며 앞으로는 모자보건법을 개정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모두의 성과 재생산권리를 보장하는 법이 만들어져야 하는 등 해야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멈춰 있을 겁니까? 그러니 당장 인권침해의 역사를 당장 중단하고 성과 재생산권리 보장을 위한 첫 발을 떼시길 바랍니다. 

피해를 밝히고 권리를 주장하는 이 경험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장애여성 운동은 의사결정과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불평등한 사회적 구조를 따지며 장애여성의 성과 재생산권리를 위해 연대하고 싸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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