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논평] 맹탕이 되어버린 WTO TRIPS 유예 합의안에 부쳐

 

개도국의 치료제와 진단키트 접근권을 무시하는 부유국만의 포스트 코로나를 멈춰야 한다.

- 한국정부는 다음 회의에서 코로나19 치료제와 진단키트 지재권 유예를 강력하게 주장해야 한다

 

 

지난 17일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에서 코로나19 백신 특허권을 아주 제한적으로 유예하는 합의안이 통과되었다. 이번 합의는 2020년 10월에 인도, 남아공 정부 주도로 코로나19 의료제품에 대한 무역관련 지적재산권에 관한 협정(The Agreement on Trade-Related Intellectual Property Right, TRIPS) 일시 유예안이 제출된지 1년 8개월이 지나서야 이뤄졌다.

 

이는 전세계 노동조합, 공중보건 전문가, 인권운동가, 수십명의 노벨상 수상자,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 바티칸 교황청까지 동의하며 부유국에 참여를 요구했던 사안이다. 하지만 이번 결정은 미국, 영국, 유럽연합, 스위스 등 부유국들의 독점적 지위를 내려놓지 않고 백신의 추가 생산이 사실상 불가능하도록 만든, 부유국들을 위한 면피용 합의안에 불과하다.

 

TRIPS 협정은 이미 코로나19와 같은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 각국 정부가 특허권자의 동의없이, 일정한 사용료를 지불하고 특허권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이를 특허권 강제실시라고 부르며, TRIPS 협정은 생산역량이 없는 국가로의 수출을 위한 강제실시도 보장하고 있다.

 

이번 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에서 합의된 결정은 기존 TRIPS에서 수출을 위한 강제실시의 제한 조건을 유예했을뿐, 2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전 세계가 요구해 온 TRIPS 유예안과는 거리가 멀다. 첫째, 특허권에 국한한 유예는 백신의 추가 생산에 기여하지 못한다. 백신이나 항체치료제와 같은 바이오의약품, 진단기기의 생산 과정에는 특허권을 넘어 저작권, 영업기밀 등 무수히 많은 지적재산권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둘째, 유예가 적용되는 국가를 백신 생산역량이 있는 국가는 배제하고 개발도상국에 국한하였다는 점에서 사실상 활용되기 어렵다. 셋째, 코로나19 치료제 및 진단기기를 배제한 유예는, 값비싼 치료제나 진단기기를 구매할 수 없는 개도국을 배제하고 부유국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로 넘어가겠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동안 WTO의 TRIPS는 제약회사에게 코로나19 백신 및 치료제 등에 대한 생산량과 가격 등을 통제할 수 있는 절대적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그로인해 제약바이오 회사들은 고가 판매를 통한 엄청난 이윤을 올렸고, 중저소득 국가의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의약품을 적절하게 사용하지 못하여 위험에 처하는 비극적인 상황에 놓여있다. 감염병 위기 시대에 백신과 치료제는 독점권 경쟁에 의해서가 아니라 꾸준한 공적 연구개발과 제도적 지원 및 인류 공통의 노력을 통해 개발되었다는 점에서 일부 기업이 기술을 독점하는 것은 모순적이라 할 수 있다. 감염병과 기후위기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백신과 치료제, 진단키트에 대한 특허를 이윤이 아니라 혁신을 위한 제도로 변화시켜야 하며, 혁신과 접근권을 동시에 도달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 정부는 향후 회의에서 코로나19 의료기술의 공평한 접근을 위해 치료제와 진단기기 등 코로나19 관련 의료기술의 지적재산권 유예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이번 합의에 따라 WTO는 향후 6개월 이내에 코로나19 치료제와 진단기기에 대한 지적재산권 유예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시민사회는 한국 정부가 국제사회에서 어떤 목소리를 내는지 지켜볼 것이다.

 

 

2022년 6월 22일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건강권실현을위한행동하는간호사회,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시민건강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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