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임상시험 관리는 기업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제도가 되어야 한다.

사진: 연합뉴스
- 식약처의 중앙 IRB 확대에 대한 논평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가 19일 대한의학회, 중앙임상심사위원회와 간담회를 열고, 중앙임상시험심사위원회(이하 중앙 IRB) 심사 대상을 현행 코로나19 치료제·백신 및 항암제에서 전체 임상시험으로 확대하는 등 임상시험에서 중복되는 행정절차를 줄이고, 개발 신약의 신속한 임상 진입을 지원하기 위해 중앙 IRB 활성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국내 신약 개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임상시험 관리가 중요해지고 있다. 게다가 식약처는 산업육성 차원에서 임상시험을 확대하기 위해 ‘발전 5개년 계획’을 세우는 등 임상시험을 유치하기 위해 온 힘을 쏟고 있다. 덕분에 국내 임상시험 승인 건수는 코로나19 감염병 위기 상황에도 큰폭으로 증가하여 2020년은 799건으로 2019년(714건)에 대비 11.9% 증가하였고, 2021년에는 1,350건으로 2019년에 비해 2배 가까이 증가하였다. 그러나 증가한 임상시험 승인과 달리 참여대상자의 윤리적 보호 및 사후 안전관리가 제대로 이뤄지는지 매우 걱정스럽다. 임상시험 규제당국인 식약처와 임상시험심사위원회의 역할이 강화되어야 함에도 식약처는 신약개발 지원만을 우선하여 관련 규제완화 정책을 또다시 내놓은 것이라고 밖에 보여지지 않는다.

 

지난 몇 년간 식약처는 임상시험 안전관리의 부실에 대해 여러 문제제기를 받아왔다. 올리타 사태 이후 중대한 임상시험 이상반응 보고에 대한 검토 부실을 지적받은 바 있고, 최근 2~3년 동안 국정감사에서 임상시험 계획 및 검토보고서를 담당해야 하는 심사관의 부족에 대해 지적을 받았지만, 채용 확대는 지지부진하다. 게다가 대부분 심사관의 근무기간이 짧아 관련 전문성 확보에도 어려움이 있는 상황이다. 특히 올해부터 신약 개발과 관련한 안전성 정보를 정기적으로 보고해야 하는 DSUR(임상시험용의약품 최신 안전성 정보보고)이 의무화되면서 식약처가 검토해야 할 보고서는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력 부족 등에 따른 관리 부실 문제가 확대될 우려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임상시험 승인 및 심사를 담당하는 IRB의 역할은 더더욱 중요한 상황이다. 특히 IRB는 대상자의 동의 획득, 모집 및 선정과정과 같은 연구 진행의 적절성, 중대한 이상반응 및 정기적 안전성 정보보고에 대한 검토, 임상시험 피해에 따른 보상 문제 등 참여대상자의 윤리적 고려까지 해야 한다. 따라서 임상시험 수 증가에 따라 이에 걸맞는 임상시험 실시기관의 IRB의 역량 강화방안과 환자 안전 확보 방안에 대한 대책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약처는 중앙 IRB 확대를 활용하여 신약 개발의 효율성을 우선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중앙 IRB 확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고려하여 좀 더 세밀한 대책을 마련하길 요구한다.

 

첫째, 기관내 섬세하고 내밀하게 이루어지는 연구를 감독해야 하는 기관IRB를 중앙으로 대체할 경우 물리적·정서적으로 상당한 거리가 생기기 때문에 윤리적 관리·감독이나 사후조치 및 대응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소수인원의 중앙 IRB 위원들이 각 지역에서 이뤄지는 실시기관의 임상시험에서 발생하는 윤리적 문제나 사후조치에 대해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둘째, 임상시험의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마련된 중앙 IRB는 그 목적을 고려할 때 임상시험 대상자의 안전 등에 관한 개입이 매우 제한적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임상시험 과정에서 관련 이상반응이 발생한 경우 참여대상자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IRB에서 임상시험 중단을 포함한 적절한 개입이 필요하지만, 중앙 IRB로 대체될 경우 모니터링 및 개입이 제한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중앙IRB 확대는 결국 임상시험 실시기관의 지정요건을 완화시킬 우려가 크다. 임상시험 실시기관 지정을 받기 위해 가장 장벽이 되는 요소가 심사위원회의 운영 및 구성에 관한 사안이다. 하지만, 심사위원회를 중앙IRB로 대체할 수 있게 된다면 실시기관에서 심사위원회를 굳이 갖춰야 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에 여러 의료기관에서 임상시험 실시기관 지정을 요청할 수 있다. 이미 임상시험 유치는 병원에게 이익추구의 도구가 되어온 것은 오래된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격이 불충분한 의료기관들이 대거 실시기관으로 지정될 경우 대상자 안전에 대한 조치 마련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그밖에 중앙과 실시기관 간의 신뢰가 쌓여있지 않은 상황에서 중앙IRB가 급작스럽게 확대되는 경우 발생할 문제에 대한 우려나 환자 보호조치 등 사후관리에 문제가 발생 했을 때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문제에 대한 우려도 해소되어야 한다.

 

최근 국내에서 신생 바이오 벤처기업들의 신약 개발 붐이 일고 있다. 신약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가 증가하는 것에 대한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반면에 임상시험의 안전 관리에 대한 노하우가 부족한 기업들이 주관하는 임상시험이 증가하면서 위험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정부는 중앙 IRB를 이용한 산업육성이 방점이 될 것이 아니라 참여대상자의 안전에 대한 꼼꼼한 규제제도 마련과 안전관리 예산을 마련하는 노력이 보다 필요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정부는 사람이 아니라 돈을 우선해서 벌어진 수많은 참사를 또다시 반복하기 전에 임상시험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엄숙함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2022년 1월 24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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