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130,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도네시아는 불과 며칠전까지 하루 1,000명이 넘는 사망자와 2만명에 달하는 신규확진자가 발생했었다. 공장은 한 달 넘게 제대로 가동되지 못했으며, 학생들은 1년 넘게 학교 수업을 듣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의 백신 접종률은 12.85%(8월 30일 기준)에 불과하다. 코로나19로 80,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남아공)도 하루 만명이 넘는 확진자와 3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지속적인 방역조치로 과거 아파르헤이트 폐지 이후 최대 폭동이 발생했다. 하지만 남아공의 백신 접종률은 9.69%(8월 30일 기준)에 불과하다. 심지어 남아공에서 생산한 얀센 백신은 아프리카 지역에 사용하지도 못하고 일부를 유럽에 수출하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모두에게 동등하지만, 코로나19 백신은 공평하게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너무 먼 나라의 이야기라서 한국에 무슨 문제가 될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얼마 전 이 두 곳에서 새로운 변이바이러스가 발생되었거나 WHO에 새로운 변이를 보고했다는 뉴스는 인도에서 발견된 델타변이가 한국의 코로나19 4차 유행에 한몫하고 있음을 떠올리게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8월 30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과 관련하여 “부스터샷(3차 접종)도 전문가들의 자문과 방역당국의 결정에 따라 고령층과 방역·의료인력 등 고위험군들부터 늦지 않게 시작해 순차적으로 접종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8월 4일 WHO 사무총장은 저소득 국가의 백신 접종이 미진한 점을 들며 백신 부국들에게 3차 접종을 미뤄달라고 간청하였다. 이는 WHO가 주도하고 있는 코백스(COVAX) 등에서 저소득국가의 백신을 확보하기 위한 시간을 달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2억 5200만회 분의 백신 구매에 성공한 한국은 WHO의 호소에 아랑곳하지 않고 백신 추가 접종을 멈추치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델타 변이에 대한 공포심으로 몇몇 국가들이 3차 접종을 시행하거나 계획중이다. 하지만 사실 부스터 샷의 효과를 뒷받침하는 과학적 근거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게다가 진행되고 있는 3차 접종의 효과와 소진된 백신으로 인해 발생한 전세계적 방역불평등의 가치판단은 사라졌다. 면역회피 우려가 있는 변이바이러스들의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는 없이 개별국가 차원의 부스터 샷 시행여부만 고려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5월 정부는 한미정상회담 이후에 글로벌 백신 허브국가가 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까지 백신을 한국에서 추가로 생산하겠다는 기업을 찾지 못했다. 백신을 공공재로 누구나 공평하게 사용하게 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은 주워담을 수도 없는 언사로만 남았다. 백신이 빠르게 개발되었음에도 코로나19 팬데믹의 장기화를 전망해야 하는 이유는 과연 바이러스 탓인가?
전 세계적으로 평등하고 조율된 백신 접종 계획과 집행이 변이발생을 최소화 하고, 팬데믹을 가능한 덜 고통스럽게 극복하는 길이라는 점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한국을 비롯한 부국의 정부들은 이 분명한 길을 외면하고 있다. 백신을 포함하여 코로나 19와 관련한 의약품과 의료기기의 지적재산권 일시 면제와 기술이전은 공평한 백신의 분배는 물론 필요시 전 세계적 부스터샷까지 가능하게 함에도 외면하고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는 명백한 인류에 대한 범죄행위이다.
더 이상 이 문제를 방치하지 말고, 정부는 저소득 국가의 백신이 확보되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야 한다. 당연히 세계무역기구의 지재권 일시 면제 논의에도 적극 찬성해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한국 기업이 개발할 백신을 최대한 많은 국가에서 생산할 수 있도록 기술이전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금 세계가 한국에 요구하는 것은 K방역, 방역선진국이 아니라 전 세계 연대와 협력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21년 9월 1일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