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바이든 정부가 예상을 깨고 코로나19 백신 특허권의 일시유예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지적재산권 협정 유예안이 탄력을 받게 됐다. 다만 WTO 협정안이 타결되려면 164개 회원국의 만장일치가 필요하다. 유럽은 여전히 특허권 일시유예에 부정적이다.
WTO 회원국인 우리나라는 아직 찬반 입장을 정하지 못했다. 국회는 12일 코로나19 백신 지식재산권 면제 촉구 결의안을 발의했다. 발의안은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대표발의로, 여야 의원 135명이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시민단체들도 특허권 일시유예에 대해 한국도 응답하라고 나섰다.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이하 건약)는 지난 6일 성명에서 "한국이 특허 유예를 적극 지지하고 백신 생산능력을 활용해 중저소득 국가를 지원하는 인도주의적 역할을 다하는 것이 문재인 대통령이 국제무대에서 했던 지구적 연대와 협력의 약속을 지키는 방법"이라며 "지금이라도 안전하고 효과적인 백신을 전 세계가 공평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생산량을 확대하자는 글로벌 요구에 한국 정부도 응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건약은 코로나19 백신이 상용화되기 전인 작년 8월부터 특허권 일시유예를 주장해왔다. 코로나19 백신이 현재 선진국 중심으로 접종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일찍이 각 나라가 특허권 일시유예에 협약을 맺었더라면 백신 빈부격차는 훨씬 줄어들지 않았을까? 이동근(36·경성대약대) 건약 사무국장에게 특허권 일시유예 주장의 배경과 반대 논리에 대한 반박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11일 이화동 건약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Q.특허권 일시유예를 일찍이 주장해왔는데. 어떤 취지였나?
건약의 활동 목적이 모든 사람들이 어떤 조건에 상관없이 건강권을 보장받는 것이고, 건강권을 지키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인 의약품에 대한 접근권에서 불평등을 겪지 말도록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특허유예를 건강권을 지키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주장한 것이다.
Q.일각에서 코로나19 백신의 특허권이 일시유예가 되더라도 실제 생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을 지적하는데?
코로나19 펜데믹이 언제 종식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토착화돼서 코로나19 백신을 독감백신처럼 매년 접종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백신접종은 1~2년 뒤에도 이문제가 끝나지 않을지 모르기 때문에, 특허권 일시 유예 결정이 공평한 백신 접종의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Q.정부에게 특허권 일시 유예에 대한 입장을 촉구했는데?
한국은 백신을 생산할 수 있는 특별한 위치에 있다. 기술을 보유한 미국, 유럽을 제외하고, 아시아 기준으로 백신 생산시설이 충분한 국가는 중국, 일본, 인도, 한국이다. 하지만 인도와 일본은 최근 감염병 대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중국은 자국백신이 있다. 따라서 한국이 특허권이 일시 유예되면 백신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정부는 감염병 위험 초기부터 공공재의 역할을 강조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행동한 적은 없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지금이라도 특허유예를 지지해야 한다.
Q.WTO에서 특허권 일시 유예가 합의된더라도 개발사가 협조하지 않으면 백신 생산이 쉽지 않을텐데
이번에 개발된 백신은 각국 정부의 투자가 주효했다. 특허 유예 결정은 WTO를 통해 전세계가 합의된 것이기 때문에 합의 정신을 바탕으로 개발 국가들이 기업에 기술이전을 요구해야 한다. 개발사들은 기술이전 이후 생산으로 인한 로열티를 받을 것이다. 강제실시를 하면 보통 개발사에 로열티를 제공해 왔다. 특허권 일시 유예를 합의 했다는 것은 각 국가들이 기업의 재산권보다는 생명권을 우선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Q.우리나라는 이미 SK바이오사이언스가 노바백스 백신을 기술이전했고, 모더나 백신도 논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 이런 상황에서 특허권 일시유예가 오히려 기술이전 논의를 진척하는데 방해 요소가 되지 않겠나?
노바백스나 모더나도 기업간 논의로 기술이전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우리나라 백신 생산시설을 보유한 기업이 자체의 자금으로 생산설비를 구축하는 것은 여건상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국가가 개입하면 기술이전의 동력이 될 수 있다. 특허권 유예는 기술이전을 촉진하게 된다. 정부 대 정부 차원에서 논의가 이뤄진다면 생산시설 구축 등이 훨씬 더 빨라질 수 있다.
Q.백신을 개발하고 있는 회사 입장에서는 특허권 유예가 개발의지를 꺾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는데?
한국은 현재 5개 회사가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그런데 5개 회사가 모두 백신개발에 성공해야 하느냐 문제를 먼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전세계 입장에서 백신 종류가 많아지는게 중요하진 않다. 또한 5개사 모두 정부 지원이 개발 동력이 되고 있다. 더구나 구매자는 정부다. 구매자가 특허유예를 지지한다면 이를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 특허유예 때문에 개발사들의 장벽이 생기진 않는다. 기존처럼 정부가 연구개발을 지원하고 구매를 약속한다면 개발 동력은 지속될 것이다.
Q.한국 정부는 왜 특허권 유예의 입장표명을 미룬다고 생각하나?
정치적인 문제도 있을 것이고, 백신 수급 때문에 제약사의 눈치를 보는 것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미국이 특허권 일시 유예 지지 쪽으로 선회할 거라 예상 못 했을 것이다. 지속적으로 특허권 일시유예에 대해 입장을 물어봤지만, 계속 논의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다 미국이 지지 쪽으로 선회하니까 그래도 다른 나라의 동향을 주시 중이라며 예전보다는 전향적인 모습이다.
Q.특허권 일시유예로 생산된 백신을 수출하지 않고 자국에만 공급하면 어떡하나
WHO 등 국제기구로 백신 배분에 대한 권한을 이양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추가 생산분에 대해서는 국가가 결정하기보다는 국제기구가 배분하는 방식으로 진행돼야 한다. 작년 이맘때에도 이런 논의가 있었지만, 잘 안 됐다. 그래서 탄생된 코백스도 백신을 각국과 경쟁 구매하고 있는 실정이다. 구매량이 원래 전달하려는 목표의 40%도 안 된다. 따라서 특허유예 결정 이후에는 추가 생산분의 분배에 대해 코백스가 권한을 가지게 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Q.우리나라의 경우 자국 물량도 모자른데 수출한다는 부정적 여론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특허권 유예 합의 이후 기술이전까지 최소 6개월이 걸린다면 우리나라 국민들의 백신 접종은 완료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Q.유럽이 반대하고 있다. 실제 합의가 쉽진 않아 보이는데
유럽이 반대 논리로 생산량을 늘릴 수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방향을 유럽에서 제시해야 한다. 백신 배분의 불평등이 생긴 상황에서 그 책임을 지는 방법을 유럽이 제시해야 한다. 특허유예가 아니라면 다른 방법을 제시하거나, 그게 안 되면 특허유예에 찬성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미국이 앞으로 (특허유예 지지에 대해) 진정성 있게 행동한다면 유럽도 지금처럼 반대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도 진정성을 의심받는 상황에서 수출제한도 풀고, 기술이전하겠다는 입장을 적극 표명해야 한다. 현재 미국 역시 인도에 AZ 백신을 주겠다는 것 이외에는 다른 행동을 보인 적이 없다.
한국이 중심적인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눈치를 볼 게 아니라 미국과 유럽을 설득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G7회의 전에 저소득국가에도 공평하게 백신이 배분되도록 특허권 일시유예에 대한 지지를 공식 밝혀야 한다.
또한 한국이 독점기술을 가진 진단키트나 주사기에 대해서도 전세계와 공유하는 방법을 먼저 제시한다면 백신 특허권 유예 논의도 진전될 수 있다고 본다. K-방역이 전세계에서 조명받았지만, 국내는 여전히 자국 중심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백신 접정이 어려운 저소득국가의 경제가 어려워지면 우리나라 경제에 영향을 안 미친다고 말 할 수 있을까. 한국이 선도국가가 되려면 글로벌 이슈에서도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Q.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있나?
특허권 일시 유예 반대 입장의 논리를 보면 특허권을 풀어도 기술이전이 안 되면 생산할 수 없다는 이야기기를 한다. 특허문서를 봐도 똑같이 약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인데, 이런 경우에 특허권을 어디까지 인정해줘야 할지 의문이다.
특허문서에는 정작 중요한 부분을 숨기고 있는데 특허권을 20년간 독점하도록 보장하는게 맞는지 따져보고 싶다. 특허권자는 독점권 열매만 따 먹고, 충분히 내놓지 않는것은 아닐까 의문이 든다. 이번 백신 문제도 특허권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왜 그동안 특허권을 존중했는지도 묻고 싶다.
특허권을 획득하기 위해 작성된 공개되는 특허문서는 이 분야에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만들 수 있도록 상세하게 기술돼야 한다고 써있지만 판단하는 특허청이나 문서를 서술하는 변리사 모두 충실하게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를 보완하는 장치가 없어서 오히려 기술을 보유한 회사들이 이익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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