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팔아 얻을 수 있는 '국익'은 없다


4월 12일 미 무역대표부 농업협상대표 리처드 크라우더는 한미 FTA 본 협상 시작되는 6월 전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결정되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한국정부는 이 달 말까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는 미국정부가 최근에 발견된 세 번째 광우병 소의 출생 일이 98년 4월 이후라는 것을 사실상 증명하지 못하자 소의 나이를 확인하기 위한 전문가를 미국으로 파견하는 등 스스로 나서서 미국정부가 할 일을 대신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작년 11월 한미FTA 사전협상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약속하였고 올해 1월 미 쇠고기 수입을 결정한 바 있다. 우리는 현 시점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국민 건강과 생명을 한미FTA 협정을 위해 위험에 빠뜨리는 조치라고 판단하며 이와 관련한 시민사회단체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첫째 지난 3월 13일 미국 앨라배마 주에서 발생한 광우병 소에 대해 나이확인은 물론 역학조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 소 수입재개를 졸속으로 처리하려는 것은 상식이하의 조치다. 워싱턴 주와 텍사스 주에 이어 발견된 이번 광우병 사례는 미국에서 유럽이나 일본 수준의 광범위한 조사가 이루어진다면 미국이 광우병 고 밀집국가로 밝혀질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에서의 이번 세 번째 광우병 소 확인은 그 자체만으로 미국산 쇠고기수입을 무기한 금지시킬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

미국정부는 역학조사조차 제대로 벌이지 않은 채 이 소가 동물성 사료 금지 조치를 취한 98년 4월 이전의 소이므로 미국 소가 안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앨라배마 주의 광우병 소는 출생기록이 아예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러할 경우 치열조사만이 유일한 간접적 방법이지만 사실상 60개월령 이상의 소는 출생기록 없이 치열조사만으로는 나이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한국정부가 국민의 건강을 지키려는 의지가 있다면 현재까지의 상황만을 근거로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전면 금지할 충분한 근거를 갖추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오히려 나서서 미국 측의 수입재개 근거를 만들어 주고 있다. 미국정부는 어처구니없게도 죽은 광우병 소의 머리를 치열조사도 없이 땅에 묻었고 한국정부의 나이 확인 요구가 있고 나서야 땅에 묻은 소머리를 파내어 치열조사를 하는 상식이하의 행동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과정 끝에 결국 미국이 보내온 치열사진을 근거로 한국정부는 죽은 소가 최소한 8살 이상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아쉬운 쪽은 미국이므로 입증을 위해 미국에 갈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바꾸어 미국에 직접 가 소의 나이를 확인하겠다는 둥 앨라배마 주와 비슷하다는 제주도에 가서 소의 치열비교조사를 하겠다는 둥의 수입재개를 위해 미국정부를 대신해 온갖 눈물겨운 비과학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둘째 우리는 무엇보다도 한미 정부가 주장하는 “98년 4월”이 광우병 안전에 대한 기준이 되지 못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미국 정부가 광우병 예방을 위해 98년 4월 이후 도입한, “되새김동물에 대한 되새김동물사료 금지원칙(The FDA ban on the feeding of ruminant-derived protein to ruminants)규정은 국제기준에 턱없이 미달하는 조치이다.

미국에서 채택한 위 규정은 쉽게 설명하면 소에게는 소를 안 먹여도 돼지나 닭에게는 소등의 육골분을 먹이도록 허용하는 규정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규정만으로는 사료공장이나 농장에서 사료가 섞여 소가 육골분을 먹게 되는 상황(즉 소를 채식동물로 만들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된다. 영국에서 미국이 지금 취하고 있는 제한적 동물사료 금지 정책을 88년부터 90년까지 시행한 바 있으나 그 기간 동안 27,000마리의 광우병 소가 새로 발병하여 이 정책을 폐기한 바 있다. 또한 미국도 이 정책의 한계를 인정하고 돼지나 닭에게도 광우병 특정위험물질을 제외한 사료만을 허용하는, 보다 엄격한 사료금지 정책을 입법 예고하고 있다. 즉 98년 4월이 광우병 소의 안전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미국정부도 인정하고 있는 바다. (별첨자료 1 참조)

셋째 최근 일본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였으나 광우병 특정위험 물질인 등뼈가 발견되었고, 수입조건이었던 20개월 미만의 소가 아니라 30개월 소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수입을 전면 금지하였다. 홍콩에서도 수입조건이었던 뼈 없는 쇠고기가 아니라 뼈가 붙은 쇠고기가 발견된 바 있어 전면 수입이 중단되었다. 그런데 이 각각의 뉴욕과 콜로라도의 수출가공업체에는 미국 정부의 검역관들이 상주해 있었고 문제의 소고기에는 안전검사필증이 부착되어 있었다. 결국 이 사건들은 수출쇠고기에 대한 미국의 검역시스템이 한마디로 엉망이라는 점을 말해주는 사건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올해 2월 1일 미 농무부 감사관(USDA OIG) 보고서에 의하면 소 도축장의 광우병특정위험물질(SRM) 제거 관리가 부적절하며, 광우병 검사방법이 육안으로만 이루어졌고, 그 육안 검사도 5-10%만 이루어졌으며, 또한 감사대상 도축장 1/6에서 광우병이 의심되는 소가 식육으로 처리되었다는 것이 밝혀졌다.(별첨자료 2 참조)

미 소비자연맹은 보고서를 통해 이러한 농무부 보고서조차도 믿을 수 없다고 밝힌바 있다. 보고서는 미 농무부에서 검사한 소들의 나이가 공개되지 않고 있어 농무부의 검열 프로그램의 타당성을 믿기 어려우며, 광우병 고위험 지역에서 별도의 조사가 시행되지 않았음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농무부에서 행한 검사는 육안 검사였으나 87% 소가 이미 사망한 상태여서 육안 검사가 의미가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광우병 소의 샘플 검사는 전체 도축소의 1%에서만 이루어진다. 일본의 경우 도축소 전체, 영국의 경우 30개월령 이상의 소 전체에 대해 광우병 검사가 시행되는 것에 비해 미국은 중추신경계 증상이 보이는 소만 검사를 시행하고 있어 미국에 얼마나 많은 광우병 소가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다.

네 번째 그 외에도 한국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결정의 근거는 비과학적이며 심지어 상호 모순된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수입조건이 국제수역사무국(OIE)기준보다 강화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밝혀지고 있는 새로운 과학적 사실들은 국제수역사무국 기준이 안전성의 기준으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별첨자료 3 참조) 예를 들어 OIE 규정은 30개월 미만의 소는 안전하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영국과 일본에서는 30개월 미만의 광우병 소가 확인되었다.

또한 정부는 광우병 발생국가라는 이유로 유럽과 일본의 쇠고기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과 일본은 똑같은 광우병 발생국가인 미국보다도 훨씬 엄격한 ‘모든 농장동물에 대한 동물성 사료금지’정책을 취하고 있으며 훨씬 더 엄격한 검역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유럽과 일본에 대한 기준을 미국에 적용한다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있을 수 없는 결정이다. 따라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한미FTA를 위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은 어떻게 되어도 좋다는 한국정부의 입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행위이다.


위의 내용을 바탕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첫째 미국정부는 미국 국민의 건강보다 미국 축산기업의 이해를 앞세우는 미흡한 광우병 예방 사료정책 및 검역시스템을 전면 개혁하고 외국에 안전하지 못한 미국 쇠고기 수입을 강요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

둘째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결정을 즉각 철회하고 국내 관련단체 및 전문가들의 광범위한 의견을 수렴하여 과학적이고 안전한 쇠고기 수입규정을 새로 제정하라.

셋째 농림부는 미국정부를 대신하여 벌이고 있는 미국 광우병 소의 나이 확인을 위한 코미디 같은 작태를 즉각 중단하고 미국정부가 광우병 소의 나이를 확인하는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을 무기한 중단하라.

넷째 보건복지부는 국민 건강이 광우병 위협에 노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의견표명을 하고 있지 않은 명백한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중단을 촉구하는 주무부처의 역할을 수행하라.

다섯째 한국의 광우병 예방을 위하여 동물성 사료 금지 정책을 전면적으로 개혁하고 검역시스템을 강화하라.

여섯째 한국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같은 국민 생명에 직결된 중대한 결정을 내리면서도 공청회나 토론회 한번 열지 않았으며 미국과의 밀실협정을 통하여 이를 결정하고 근거도 없이 이를 밀어 부치고 있다. 정부는 국민의견을 듣기 위해 즉시 시민사회단체와 공개토론회를 열라.

우리는 이번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 강행 과정은 한미FTA의 본질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 판단한다. 정부는 한미FTA가 국민들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강변하지만 그 근거를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서도 시민사회단체의 지금까지의 문제제기에 대해 전혀 과학적이고 근거 있는 답변을 내놓지 못한 채 수입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 또한 한미FTA에서 미국정부는 한국의 수입농축산물 검역조치, 유전자조작식품(GMO)표시제 등을 무역장벽으로 규정하여 이를 철폐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미FTA는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비롯해 한국국민의 식품안전 전체를 위협하고 있다. 광우병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강요하는 한미FTA는 중단되어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팔아 얻을 수 있는 “국익”은 없다.(끝)



2006년 4월 18일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녹색연합 한미FTA농축수산비상대책위원회 환경운동연합 환경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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