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자살예방의 날을 맞아] 자살을 부추기는 사회, 자살을 부추기는 약

매년 9월 10일은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이다. 한국은 하루 평균 38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으며 2016년 기준 12년째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유지하고 있다. 자살은 매우 복합적인 이유들 때문에 발생하지만 자살 예방의 방법은 단순하다. 자살을 예방할 수 있는 보호책들은 높이고, 자살을 유발하는 위험요소들은 낮추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의약품은 자살을 예방하는데 사용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살을 유발하는 기폭제가 되기도 한다. 미국 내에서도 자살률 급등의 이유를 항우울제, 처방 진통제 등의 사용 증가로 보는 분석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이에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는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자살을 유발하는 약물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약물 부작용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환기시키고자 한다.

 

1. 항우울제

자살 위험이 높아지는 우울증 환자에게 사용하는 항우울제의 가장 위험한 부작용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살이다. 2010년 미국질병통제본부(CDC)에 따르면 2010년 자살 사망자 중 23.8%가 항우울제에 양성 반응을 나타냈다고 한다.

우울증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데 첫째, 수면제(barbiturate), 신경안정제(valium, triazolam등), 고혈압약(propranolol, prazosin 등), 항생제(metronidazole, ciprofloxacin 등), 다이어트약(amphetamine), 위장약(cimetidine, ranitidine 등), 진통제(이부프로펜 등), 여드름약(isotretinoin) 등 약물 복용 부작용으로 발생한다. 이 경우에는 약 용량을 줄이거나 다른 약으로 바꿔야 하며 항우울제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둘째, 배우자 상실, 가족의 죽음, 해고 등 일반적으로 누구나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으로서의 우울증이다. 이 경우에도 약보다는 가족과 친구의 도움, 운동, 상담 등이 훨씬 효과적이다. 셋째, 암, 간염, 뇌졸중, 파키슨 병이나 알츠하이머 병을 겪는 사람들에게 우울증이 찾아올 수 있으며 이 경우에는 항우울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 넷째, 항우울제를 먹어서 도움이 되는 가장 일반적인 경우로서 일상적 생활을 영위할 수 없을 정도의 우울감, 집중력 저하, 자살 생각, 극도의 피로 등이 몇 주 동안 지속될 때 약물 치료를 고려해 볼 수 있다.

우울증 약은 특히 소아, 청소년에게서 자살 위험을 높인다. 2004년 미국 보건당국은 모든 항우울제에 소아·청소년에게서 자살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블랙박스 경고 문구를 넣도록 하였으며 2007년에는 젊은 성인(18-24세)도 포함시키도록 하였다. 유럽 보건당국은 소아와 청소년에게 항우울제 팍실(paroxetine)을 사용했을 때 자살 시도와 자해 행위가 2-3배 증가하고, 적대감은 6배가 증가한다고 밝혔으며 영국 당국은 의사들에게 소아 팍실 처방을 금지시켰다.

우울증 치료의 일차 선택 약은 주변의 관심과 애정, 운동, 상담 등이 되어야 하며 만약 항우울제를 복용하게 되었을 때에는 특히 소아, 청소년, 젊은 성인의 경우 가족들의 세심한 관찰이 필수적이다. 혹시라도 행동에 이상이 보이거나, 자살 시도 등이 나타나면 즉각 다른 방법을 찾아보아야 한다.

 

2. 알레르기약

알레르기성 비염, 천식에 많이 사용되는 싱귤레어(montelukast)는 알레르기성 질환이 점점 많아지는 현대 환경에서 더욱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싱귤레어의 효과에 대한 논란도 지속되고 있는데 여러 연구에서 싱귤레어는 천식의 예방과 치료에서 스테로이드 흡입제보다 열등했으며 알레르기성 비염에도 스테로이드 비강 분무액 보다 더 좋은 효과를 보이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싱귤레어의 정신과적 부작용도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유럽 의약청(EMA)은 싱귤레어가 자살 부작용과 관련되었다는 보고들이 접수되었다고 밝혔으며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자살충동, 공격성, 환각, 우울, 불면 등의 부작용을 경고하였다. 스웨덴 연구에 따르면 싱귤레어 복용으로 악몽, 공격성, 불면, 분노 등의 부작용이 나타났으나 93%가 약물 복용을 중단하자 부작용이 사라졌다.

알레르기성 비염, 천식 치료제는 다양하게 존재한다. 비염의 경우 증세가 경미하거나 간헐적으로 나타날 때에는 지르텍 등 2,3세대 항히스타민제를 사용하고 증세가 심할 때는 스테로이드 비강 분무액이 효과적이다. 천식 치료는 좁아진 기관지를 빠르게 완화시키는 기관지 확장제와 알레르기 염증을 억제하여 천식 발작을 예방하는 스테로이드를 사용하는데 싱귤레어는 단독 사용 뿐만 아니라 천식 환자의 스테로이드 사용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처방되고 있다. 그러나 스테로이드 용량을 유의미하게 줄이기 위해 사용해야 하는 싱귤레어의 용량은 현재 허가받은 용량의 몇 배가 필요해서 사실상 의미가 없다. 효과와 위험을 가늠해보았을 때 싱귤레어의 사용은 극히 조심해야 하며 특히 어린아이에게서 더욱 그러하다.

 

3. 금연보조제

‘흡연은 질병입니다. 치료는 금연입니다’ 금연 홍보 문구이다. 금연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으나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은 금연보조제, 즉 약이다. 예전에는 금연 패치, 껌, 사탕 등 니코틴 대체요법제 등이 주로 쓰였으나 최근 몇 년 동안은 챔픽스라는 금연 보조제가 일차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챔픽스는 금연을 위해 고려해볼 수 있는 가장 마지막 최후의 보루로 남겨두어야 한다. 챔픽스는 자살, 우울증, 적대감 등 심각한 정신과적 부작용을 나타내며 심장질환이 있는 흡연자들에게는 심장 발작 등 심혈관계 위험을 증가시킨다. 또한 얼굴, 입, 목구멍에 심각한 알레르기를 일으켜 숨쉬기 힘들게 해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 나와 가족의 건강을 위한 금연, 오히려 독화살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4. 주의력 결핍 과다행동장애(ADHD) 치료제

주의력 결핍 과다행동장애(ADHD)는 소아기와 청소년기에 가장 일반적으로 진단되는 정신과적 장애로서 지속적인 주의력 산만, 과다활동, 충동성 등을 특징으로 한다. ADHD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는 스트라테라(아토목세틴)는 자살 충동이라는 아주 심각한 부작용을 가지고 있는데 미국 FDA 임상 결과 발표에 따르면 스트라테라를 복용한 1,357명 중 5명이 자살 충동을 느꼈다고 한다. 2013년 호주 보건 당국도 스트라테라 부작용으로 74건의 정신과적 부작용을 보고 받았으며 이중 절반 이상에서 자살 관념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스트라테라는 사망이나 간 이식이 필요한 수준의 간 부전으로 진행할 수 있는 심각한 간 독성 부작용을 나타낼 수 있어 약물 복용 중 피부가 가렵거나 눈이나 피부가 노랗게 되는 경우, 상복부 통증, 검은 색 뇨가 나올 경우 즉시 의사에게 알려야 한다.

 

5. 타미플루

독감 바이러스는 체내에 들어와 빠르게 증식한다. 1개의 바이러스가 몸 안에 들어왔다면 8시간 후에는 100개, 16시간 후에는 1만개, 24시간 후에는 100만개까지 증가한다. 보통 독감 치료제 타미플루를 바이러스를 격퇴하는 약으로 생각하지만 불행히도 타미플루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단지 바이러스가 더 이상 확산하는 것을 방지해주는 것 뿐이다. 즉, 초기 증세가 나타나고 48시간이 지나면 타미플루는 별반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이다.

일본은 전 세계 타미플루 1위 처방 국가였다. 2006년 타미플루를 복용한 10대 청소년들이 잇달아 투신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39명이 사망했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거나 갑자기 차도로 뛰어드는 등 이상 행동 보고가 잇따르자 일본 후생 노동성은 ‘미성년자에게는 원칙적으로 타미플루 투약을 금지’했다.

대부분 이상 행동은 타미플루 복용을 시작하고 1,2일 만에 나타난다. 여러 가지를 고려해 보았을 때 타미플루 복용 권고안은 다음과 같다. 고위험군이 아닌 미성년자는 타미플루 복용을 자제할 것, 꼭 먹어야 한다면 증세가 나타난 후 바로 복용할 것, 복용을 시작했다면 이틀 정도는 보호자가 곁을 지킬 것.

 

6. 탈모치료제

전립선비대증 약을 개발하던 연구자들은 환자들이 자꾸 호소하는 부작용 때문에 심각한 난관에 부딪혔다. 몸에서 털이 자꾸 자라난다는 것이다. 위기는 기회로, 연구자들은 이 약을 탈모치료제로 탈바꿈시키면서 프로페시아(finasteride)는 반전에 성공했다.

그러나 발기부전, 사정장애, 성욕감퇴 등의 그간 이미 널리 알려졌던 부작용에 더해 2003년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서 프로페시아 성분의 약이 매우 공격적인 고위험 전립선 암 발병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해당 약들에 대한 우려의 시선은 깊어졌다. 이후 2009년 영국에서는 남성 유방암 발병, 2014년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발작 위험에 대해 경고하였으며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우울증, 자살 충동 등의 부작용 위험도 경고하고 나섰다.

신체적 열등감의 원인인 대머리를 치료한다는 점에서 ‘해피메이커’로 불렸던 프로페시아가 사람을 우울증에 빠뜨리고 자살 충동을 부추기다니, 그 탄생만큼이나 또 다른 반전이 일어나고 있다.

 

7. 여드름치료제

“엄마, 이 약은 저의 몸과 마음을 송두리째 바꿨어요. 이 약에 대한 증오가 너무 커서 약의 이름을 여기에 쓰는 것조차도 힘이 들어요.” 2011년 절벽에서 몸을 던진 24세 영국 청년이 부모님께 부치지 못한 마지막 편지 내용이다. 청년이 힘들게 적어내린 그 약의 이름은 로아큐탄, 중증 여드름 치료제이다.

2004년까지 미국 FDA에는 4992건의 정신과적 부작용이 보고되었으며 이 중 자살 관련 부작용은 192건에 달했다. 세계보건기구에도 로아큐탄 자살 부작용 보고가 줄을 이었다. 뿐만 아니다. 구순염, 피부 등 점막 건조증, 근육통, 간독성 등 부작용은 그저 소소해 보일 정도이다. 로아큐탄의 가장 위협적인 부작용은 기형아 유발 위험이다. 미국에서는 1982~2003년 임신을 계획하고 있던 자국 여성 2000명 이상이 로아큐탄을 복용한 후 대부분 낙태하거나 유산했음에도 불구하고 160명의 기형아를 출산했다. 로슈는 소송에 휘말렸고 2009년 미국에서 철수했다.

로아큐탄에게 아들을 잃은 영국 부모님은 로슈 본사 앞에서 항의하며 외쳤다. ‘이 약을 처방하는 것은 러시안 룰렛 게임을 하는 것과 같아요!’ 로아큐탄은 다른 모든 치료를 다 해본 후, 도저히 낫지 않는, 중증의 난치성 여드름에만, 그것도 아주 아주 조심스럽게, 살피고 또 살펴서 써야만 하는 약인 것이다. 룰렛 게임의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2017년 9월 8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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