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에게 바란다

문재인 대통령은 7월 12일 식품의약품안전처장에 류영진 대한약사회 부회장을 임명했다. 청와대는 류영진 식약처장이 국민 보건 향상과 서민의 권익보호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해왔고, 안전한 식의약품 관리를 통해 국민 건강을 책임질 적임자라 설명했지만, 관련 업무 경험이 전무하다는 점에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식약처는 지난 이명박, 박근혜 9년 동안 제약산업과 자본논리에 함몰되어 식품과 의약품의 안전을 지키는 최후의 교두보임을 망각하고 국민의 건강보다는 친제약, 친자본 입장에서 정책을 수립해왔다. 류영진 신임 식약처장이 실무 경험 부재라는 우려를 불식하고 식약처를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지는 부처로 거듭날 수 있도록 그 역할을 다하기를 바라며 이에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는 식약처 5대 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식약처는 의약품 허가 관리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 그간 식약처는 ‘더 빠르게, 더 신속하게’를 모토로 허가 기간을 줄이는 것에만 초점을 맞춰 정책을 수립해왔다. 국내 제약기업 활성화를 위해 국내 신약에 대한 신속허가제도를 도입했지만 국내 최초 표적항암제 신약이라던 올리타 정의 경우 사망 등의 심각한 부작용으로 논란이 되었다. 동아에스티의 스티렌 정도 2015년 청구액이 375억 원에 달했으나, 최근 보건복지부는 스티렌이 임상적 유용성 측면에서 불확실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국내 신약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식약처의 철저한 검증은 필수불가결한 요건이다. 
 3상 조건부허가 제도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희귀질환, 항암제, 세포치료제의 경우 3상 임상 없이 허가를 내주고 있으며, ‘획기적 의약품 및 공중보건 위기대응 의약품 개발촉진법안’에서 그 요건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 의약품 허가는 속도전이 아니다. 선진국일수록 ‘안전성과 제품의 질’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어 신약 허가 기간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긴 편이다. 환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속도전에서 1등한 의약품이 아니라 안전하고 효과가 확실한 약이기 때문이다.

 둘째, 의약품 사후 관리 시스템을 정립해야 한다. 사후 관리는 신약과 기존에 허가 받은 약으로 구분해서 관리 중이다. 신약의 경우 신약 시판 후 4년에서 6년 동안 시판후조사(PMS)제도가 있지만 증례수 변경 등 제약사의 사후 요건 변경 등에 관해 느슨하게 운영되고 있다. 2014년부터 최근까지 최소 32품목이 증례수를 채우지 못했지만 별다른 제재 없이 허가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식약처는 기존에 허가 받은 의약품에 대해 2010년 현행 의약품 재평가 제도 대신 5년 주기의 ‘품목허가 갱신제’를 실시하겠다고 공언했고, 내년도 시행을 약속하고 있지만 이미 많이 늦어진 상황이다. 과학기술의 발전, 의약품 허가 기준 강화에 따른 의약품의 효과와 안전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한데 현재의 재평가 제도는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글리아티린의 경우 ‘감정 및 행동변화, 노인성 가성우울증’ 이라는 식약처 허가사항은 어떤 논문, 근거 자료도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 일본, 캐나다, 영국 등 대다수 선진국에서 거의 사용하고 있지 않은 그 효과가 아주 의문시되는 약이 버젓이 국내 의약품 청구 순위 5위(2015년 기준)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식약처는 PMS 제도를 강화하여 환자의 안전을 지키고, 의약품 재평가를 철저히 하여 더 이상 효과가 불분명한 의약품에 건강보험 재정과 환자들의 돈이 낭비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셋째, 줄기세포치료제 등 바이오의약품에 대한 국제적 신뢰를 회복하고 환자의 건강권을 지켜야 한다. 전 세계 통틀어 허가된 총 6종의 줄기세포치료제 중 4품목이 국내 제품이다. 식약처는 2015년 지금까지의 양적 성장을 벗어나 향후 고도의 과학적 검증을 위한 임상설계 채택, 적절한 피험자 수 확보 등 질적 성장에 주력할 시점임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세계 최초 줄기세포치료제라던 ‘하티셀그램-AMI’의 안전성, 유효성 자료를 확보하는데 실패했음에도 식약처는 허가를 유지하기로 결정하였다. 해외에서도 국내 줄기세포치료제의 부실한 허가와 규제완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식약처는 더 이상 부실하고 성급한 허가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애초 약속한 대로 치료제의 질 확보에 힘써 국제적 신뢰를 회복하고 환자들의 건강권을 지켜야 한다.  

 넷째, 식약처는 제네릭 의약품 불신을 해소해야 한다. 환자들은 저렴하고 질 좋은 의약품을 복용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제네릭 의약품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최근 글리벡 사태에서 보듯이 환자들은 제네릭 의약품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갖고 있다. 심지어 복지부에서조차 제네릭으로 약을 대체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며 제네릭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식약처는 제네릭 의약품에 대한 엄격한 품질관리와 국민 홍보 등을 통해 제네릭 불신을 해소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다섯째, 제네릭성분명의무등록제를 시행해야 한다. 미국 등 외국에서는 제네릭 의약품의 경우 특정 상품명이 아닌 제네릭 성분명을 상품명으로 등록하고 있으며, 2005년 일본에서도 제네릭 의약품 명칭을 성분명으로 하는 제네릭의약품성분명 의무등록제를 시행하고 있다.
국내 허가 받은 전문의약품은 24,418개, 보험에 등재된 전문의약품은 18,458개(2015년 기준)로 유사 상품명으로 인한 혼동을 초래할 위험이 극히 다분하다. 뿐만 아니라 의사, 약사, 간호사 등 보건의료인들은 학교에서 성분명으로 약을 공부했음에도 실제 진료·투약 현장에서는 상품명이 사용되고 있어 혼란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미국 MERP(Medication Errors Reporting Program)에 보고된 의약품 부작용 보고의 약 15%가 의약품의 비슷한 이름 때문에 발생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비슷한 상품명으로 인한 불만 보고가 의료기관에서 접수되었다.
제네릭 의약품 성분명 의무등록제는 의약품 사용 단계에서의 오처방 · 투약을 방지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제네릭 의약품 사용 증가, 제약회사의 마케팅 비용 감소 등의 효과를 나타낼 것으로 기대된다.

 이상 5대 과제 이외를 뛰어넘어 가장 우선적으로 중점을 두어야 하는 부분은 식약처의 투명성 부분이다. 촛불 혁명을 통해 정권교체를 이끌어낸 국민들은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를 요구하고 있다. 그간 식약처는 제약업계의 요구에 밀려 많은 일들을 밀실에서 처리했고, 비공개로 숨겨두었다. 신임 식약처장은 국민 건강에 직결되는 다양한 정보들을 투명하게 공개하여 국민들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외부 전문가, 소비자, 시민사회단체로부터 검증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식약처가 그간의 적폐를 끊고 새롭게 국민 건강 지킴이로 거듭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2017년 7월 13일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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