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약 의약품 적색경보 19호] 치매예방약, 부모님의 두려움과 자식의 죄책감을 팔다.

[건약의 의약품 적색경보 18호] 치매예방약, 부모님의 두려움과 자식의 죄책감을 팔다.

 

치매는 두렵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지우고, 함께했던 추억을 잊고, 일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지혜마저 결국은 잃어버리는 병이지요. 뭔가를 잊어버렸을 때 우리는 가끔 ‘나 치매인가봐~’를 농담처럼 이야기하지만 치매는 사실 그보다는 훨씬 더 심각한 병입니다.

 

치매라는 말 자체가 라틴어로 ‘정신이 없어진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요. 단순히 무엇인가가 잘 생각나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지난 주 가족모임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 버스 번호가 헷갈리는 것이 아니라 매일 다니던 길을 잃어버려 집을 못 찾게 되는 것, 어떤 사람의 이름이 잠시 기억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 사람을 잊어버리는 것, 이것이 치매입니다.

 

알츠하이머병은 전 세계적으로 치매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원인이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치료제는 없습니다. 알츠하이머병의 발병 기전 등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 합성 감소, 베타 아밀로이드의 침착 등으로 인한 신경세포의 손상이 주된 요인으로 알려져 있지요. 현재 알츠하이머 병에 대하여 미국 FDA와 한국에서 승인 받은 약물들은 총 4가지 종류(Donepezil, Galantamine, Rivastigmine, Memantine)가 있지만 일시적으로 증상만 완화시키거나 병의 진행을 일부 지연시키는 효과만이 있을 뿐입니다. 치료제를 개발하려는 온갖 노력이 계속되고 있지만 1998년부터 2011년까지 101개의 치료제 개발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면서 환자 치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요.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 ‘치매 예방약’이라는 이름으로 잘 나가는 약이 있습니다. “글리아티린”이라는 약으로 작년 한해 총 440만 건이 처방 되고 1,660억 원이 건강보험공단에서 지불되었습니다. 환자가 부담한 본인부담금은 논외로 치더라도 이 금액이면 약 10만 명의 치매환자가 주야간보호시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액수입니다. 이탈리아에서 개발되어 폴란드,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서만 허가 받은 약인 글리아티린, 치매 치료제도 개발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치매 예방약이 있다니, 그것도 한국에만 있다니, 고개를 갸웃거릴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사실 글리아티린은 ‘뇌혈관 결손에 의한 2차 증상 및 병성 또는 퇴행성 뇌기질성 정신증후군, 감정 및 행동변화, 노인성 가성우울증’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허가받은 약입니다. 실제 현실에서는 ‘나 요즘 깜빡 깜빡 잘 잊어버리는데요’ 정도의 말로도 어느 병원에서나 손쉽게 처방받을 수 있는 약이 되었습니다. 글리아티린을 판매하는 회사들은 치매의 전단계인 경도인지장애를 치료할 수 있는 약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경도인지장애를 치료할 수 있는 약은 없다는 것이 세계적인 중론입니다. 그처럼 획기적인 약이라면 왜 유독 한국에서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을까요? 의심을 거둘 수가 없는 대목입니다.

 

글리아티린은 아세틸콜린 전구체인 콜린을 공급하고 신경막세포를 안정화시키는 인지질을 포함하는 약입니다. 이 성분들은 자연계에도 널리 존재하며 콩, 달걀 등 식품으로도 충분히 섭취 가능합니다. 심지어 이 성분은 미국에서 의약품으로 허가조차 받지 못하였습니다. 효과를 입증할 필요가 없는 건강기능식품으로 일부 판매되고 있을 뿐이죠. 전 세계적으로 치매, 경도인지장애 환자 증가에 따른 의약품 개발에 관심이 쏠리고 있지만 글리아티린은 그 관심 밖에 있는 약물이며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부모님은 치매에 걸려서 본인과 자식들의 삶이 파탄날 것을 두려워하고, 자식들은 이런 부모님을 위해 뭐라도 해보지 않고서는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그 틈을 파고든 약이 바로 글리아티린입니다. 질병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해서 약을 판촉하는 제약회사, 약을 처방· 조제하여 이익을 얻는 전문가 그리고 이런 상황을 허용하는 정부, 이 모든 것들이 더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가족과 함께 하려는 어르신들과 자식들을 우롱하는 어이없는 현실입니다.

 

치매 예방약은 없습니다. 골고루 먹고, 즐겁게 웃고, 적당히 운동하는 것이 최선의 예방약입니다. 가장 쉽지만, 또한 가장 어려운 것이기도 하지요. 쉽지만 어려운 한 걸음, 부모님과 함께 시작해보시길 바랍니다.

 

 

2017. 04. 26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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