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지원 큰걸음 시민운동도 한발 앞으로

의료지원 큰걸음 시민운동도 한발 앞으로


△ 왼쪽부터 우석균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 정상호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손정석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고수정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김정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 씨




한겨레신문사와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보건의료단체연합) 및 종교단체가 함께 한 ‘이라크 어린이에게 의약품을’ 캠페인이 지난달 31일 막을 내렸다.

그동안 일반시민들과 단체들이 보내온 3억9천만원의 성금은 이라크 바그다드의 빈민촌과 병원에 보내진 의약품 구입과 진료활동 등에 쓰였다. 또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직접 의료진을 파견해 뉴바그다드 빈민촌에서 진료소를 설치해 진료활동을 벌였다. 진료활동은 지난 4월12일 김해룡(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 정성훈(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사무국장)씨의 첫 방문을 시작으로 5차례에 걸쳐 약사, 한의사, 의사, 치과의사, 치위생사 등 모두 17명이 참여했다.

‘이라크 어린이에게 의약품을’ 캠페인의 성과와 의미를 바그다드 의료지원활동에 직접 참가했던 보건의료진의 좌담으로 정리했다. 권태선 〈한겨레〉 부국장의 사회로 이뤄진 좌담에는 김정범(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 정상호(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고수정(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손정석(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우석균(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씨 등이 참석했다.


권태선=직접 바그다드를 방문해 의약품을 전달하고 진료하는 등 고생이 많았다. 이는 세계적 평화운동의 일환으로 우리 시민운동이 한발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생각된다. 고수정씨는 한의사로서 해외구호와 진료봉사활동이 처음인 것으로 아는데 개인적 소감은 어떤가


고수정=준비 때부터 한의사로서 갈등이 많았다. 생소한 의료를 그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부터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를 고민했다. 그러나 이런 염려는 기우였다. 긴급구호 및 의료봉사 활동은 동서를 막론하고 힘이 됨을 느꼈다.


우석균=처음 기획한 것보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반응이 매우 뜨거웠고 모금액수도 예상보다 많았다. 반전평화운동에 보건의료인이 어떻게 참여하고 실천할 수 있는지 고민했다. 이라크 상황을 직접 돌아보면서 미국의 경제봉쇄가 남긴 피폐한 삶의 현장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느꼈다. 이라크 사람들에게 전쟁은 이미 10년 전부터 일상화돼 있었다.


김정범=인의협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과 소수자를 위해 활동을 해왔다. 북한 어린이들을 위해서도 의약품을 지원하고 있다. 이번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너무도 야만적으로 이뤄졌고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죄책감을 많이 느꼈다. 특히 우리나라의 파병 결정 뒤로는 고민이 더 심해졌다. 전쟁이 사람의 삶과 건강에 피해를 주는 점에 대해 관심을 가져온 우리로서는 직접 의료진을 파견하기로 결정한 게 당연하다.

처음 이라크에 갔을 때는 폐허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지만 의외로 동네는 멀쩡했다. 그러나 진료를 시작한 첫날 3시간 동안 100여명의 환자들이 몰려와 깜짝 놀랐다. 다음날부턴 하루 300~400명씩 환자를 진료해야 했다.

경제봉쇄 등의 여파로 그만큼 이라크 보건 상황이 열악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권=정상호 선생은 과거 베트남에 대한 의료지원 활동에도 참여하셨는데. 이번 활동을 당시와 비교한다면


정상호=베트남 진료활동에 참여했던 것은 우리가 베트남에 직접 군을 파견해 그들에게 큰 상처를 입혔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베트남 일반 주민들은 전쟁을 잊었노라고 말했지만 실제로 그들에게 남겨진 전쟁의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못했음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이라크에 대한 한국군 파병 결정을 보면서 우리 후손들이 또다시 우리가 베트남에 대해 느끼고 있는 죄의식을 느끼며 살아가게 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이라크인들에 대한 진료활동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손정석=이라크에서 약품 구입활동을 맡아 하면서 피부로 이라크를 많이 느꼈다. 특히 현지에서 약품 구입과 약품 분배처 등을 주선해준 이라크인들을 통해 그들의 자활의지가 대단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권=의료봉사활동을 펼치는 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

고=사전답사 등 충분한 준비가 있어야 했는데 통신도 잘 안되는 상황이라 뭐든지 새로 개척해야 했다. 그나마 반전평화팀과 연결된 게 다행이었다.

우=유엔이나 세계보건기구에서 나온 보고서를 너무 믿었다. 그들의 보고서는 대부분 책상머리 작업이라는 것을 현지에서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의료지원팀들이 병원급에서 활동한 것에 비해 우리는 기층의 일차 진료를 맡는 보건소 등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이라크인들의 실제 의료상황을 더욱 생생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권=앞에서도 이야기됐지만 예상보다 국민들의 관심과 성원이 매우 컸다. 이번 캠페인이 우리 시민사회에서 갖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우=전쟁을 겪어봤던 우리나라 국민들이 우리라는 울타리를 넘어 세계 평화운동으로 관심의 지평을 넓혔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는 한국 사회운동의 성장을 상징하는 것이다.

정=이번 캠페인은 국민들의 관심이 민족주의라는 울타리를 넘어 인권과 평화을 위한 국제적 연대에까지 미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최근 들어 외국인 노동자 인권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과도 궤를 같이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동감한다. 이라크 반전평화운동은 한국 사회운동의 도약점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이라크의 전쟁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과 무관하지 않다는 인식이 싹텄고 그 결과 세계평화운동이 한반도의 평화를 불러온다는 인식이 일반 시민들 속에 자리를 잡아가지 않았나 생각한다.




△ 지난 4월 26일 ‘이라크 어린에에게 의약품을’캠페인팀이 마취제, 항생제, 수액제 등 긴급의약품을 바그다드 인근의 라파엘 병원에 전달하고 있다. 바그다드/ 이정용 기자


권=정부는 파병을 결정하고 민간에서는 반전평화활동이나 의료봉사활동에 나섰다. 일부에서는 이런 의료봉사활동이 정부 파병의 부당성을 희석시키는 일이라는 비판도 없지 않았다. 실제 이라크 사람들은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고=우리가 진료활동을 벌였던 뉴바그다드 지역은 빈민층이 주로 사는 가난한 시아파 지역이었다. 이곳 이라크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파병한 사실을 잘 모르고 있었다.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전쟁 전 그리고 전쟁기간 동안에도 긴급구호활동 등에 헌신적이었던 반전평화팀 덕분에 상당히 높았다.

우=한번은 말도 잘 통하지 않는 택시를 타고 바그다드에서 뉴바그다드의 진료소를 찾아가야 했다. 뉴바그다드 지역을 처음 가본다는 택시 운전기사에게 인구 140만의 도시에서 ‘한국인이 진료하는 곳으로 가달라’고 했는데 운전기사가 주민들에게 물어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우리의 진료활동이 뉴바그다드 주민들에게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권=그러나 우리가 지원활동을 중지하면 이라크인들이 스스로 보건소 등을 꾸려갈 능력은 있는지 궁금하다.

김=이라크 나름의 자생력이 있다고 판단한다. 처음 바그다드에 들어섰을 때 폭격으로 거의 기능이 마비된 도시였지만 주민들은 재빠른 복구 능력을 갖고 있었다. 현지에서 만난 청년지도자 암마르 같은 사람들이 스스로 진료소 구축활동에 나섰고, 우리는 그들의 활동에 보탬을 주었을 뿐이다. 진료소에서 우리가 철수한 다음에도 그들이 계속 진료소를 유지해 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들이 자립할 수 있는 기간 동안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려고 한다.

우=우리가 진료활동을 벌였던 뉴바그다드는 후세인 아래에서 탄압받던 빈민지역이다. 그 빈민지역을 위해 활동하던 활동가들이 진료소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이들을 위해 조직적으로 지원할 계획들을 세우고 있다. 머잖아 후속사업을 위해 이라크에 다시 다녀올 생각이다.


권=이라크 상황을 들으니까 북한 상황도 비슷하리라 생각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김=북한은 같은 민족이다. 이라크와 마찬가지로 경제봉쇄 등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원을 하고 싶어도 정치적인 상황으로 어려움이 많다. 한반도에 평화를 안착시킨다는 관점으로 북한을 지원하도록 해야 한다.

고=전쟁이 끝난 뒤에도 미국이 떨어뜨린 폭탄, 탄약 등을 불태우다 잘못 폭발하거나 발사돼 민간인들이 다치는 일이 종종 벌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탱크들이 바그다드 시내를 질주하는데 우리나라 여중생들이 미국의 궤도차에 숨진 사건이 연상됐다. 한반도에서 이런 전쟁상황이 벌어져서는 절대 안 된다.

김=이라크 전쟁이 일어난 뒤 어떤 방송에서 전쟁이 나면 어떻게 대비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하는 것을 듣고 분노했다. 전쟁이 일어난 뒤에는 결코 대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모든 것이 다 파괴돼 원시인은 생활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전쟁을 대비한다는 것은 전쟁이 절대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야 하는 것이다.

우=4개 학교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영양상태와 심리상태를 조사했다. 최종분석은 아직 안 나왔지만, 약 44%의 어린이의 체격이 우리나라 1973년도 같은 나이 어린이 표준발육치의 최저 정상치를 밑돌았다. 50명 중 4명은 한국 어린이 한살짜리보다 못했다. 초등 4~5학년 어린이 50명에게 전쟁 이후에 어른이 될 때까지 살 수 있을까를 걱정하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74%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런 결과는 전쟁의 후유증이 얼마나 참혹한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우리 민족의 일원이 이런 참상을 겪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평화운동의 필요성을 새삼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정리 김양중 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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