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 대법원은 근거중심와 건강보험제도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임의비급여를 허용하여서는 안된다.

<기자회견문> 대법원은 근거중심 의료와 건강보험제도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임의비급여를 허용하여서는 아니된다.

2006.12.5 가톨릭대여의도성모병원(이하, 성모병원)의 백혈병 환자에 대한 고액 진료비 불법청구로 촉발되었던 임의비급여 사태는 백혈병 환자들의 집단 민원과 소송 제기, 보건복지부의 실사로 이어졌다.

성모병원은 2006.4.1부터 2006.9.30까지 6개월 동안의 진료비 실사에서 백혈병 환자들에게 진료비를 부당하게 징수하였다는 이유로 보건복지부부터 28억3천만원의 환수처분과 141억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고 민원 제기 환자들은 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으로부터 80억원 이상을 환불받았다.

그러나 성모병원은 보건복지부, 지방자치단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28억3천만원의 환수처분 및 141억원의 과징금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며, 1심과 2심 모두 승소했다. 대법원은 오늘 2월 16일 오후 2시부터 공개변론을 개최하고 이후 최종 판결을 할 것이다. 현재 성모병원과 진행중인 수백건의 임의비급여 소송이 이 대법원 판결 결과를 보고 최종 판결을 하기 위해 현재 소송이 추정(중단)된 상태이기 때문에 그 파장이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2010년 12월에 미래국민연대 정하균 의원이 대한의사협회 제안을 받아들여 환자 동의에 의한 임의비급여를 허용하는 '국민건강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한 상태이다.

(Ⅰ) 1심과 2심 법원은 동일하게 성모병원 전체 부당청구액의 60~70% 이상을 차지하는 삭감 위험, 이의신청절차 등의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건강보험 적용되는 급여비용을 건강보험공단이 아닌 환자들에게 비급여로 받은 임의비급여에 대해서는 전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당연한 판결이다. 의학적 근거를 제시하면 급여로 인정되기 때문에 삭감되지 않기 위해 준비해야할 서류도 많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는 이유로 환자들에게 비급여로 받는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Ⅱ) 그러나 주진료의사가 진료지원부서의 선택진료의사를 임의로 선택하도록 포괄위임한 선택진료신청서 양식에 대해서는 성모병원이 환자에게 충분한 설명을 한 후 동의를 받았고, 2008년 11월28일 선택진료에관한규칙 개정을 통해 포괄위임규정이 합법화 되었고 이는 포괄위임규정을 두지 않은 것이 의료계의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부당한 것이라는 반성적 고려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위법이 아니라고 판시했다. 이는 선택진료제도가 환자의 의사선택권을 보장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본연의 목적에서 벗어나 병원의 고수익 창출수단으로 변질되어 운영되고 있는 의료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판결이다. 개정된 선택진료에관한규칙에서 선택진료신청에 대한 서명과 별도로 포괄위임규정에 대한 서명까지 받도록 한 것은 포괄위임규정에 대한 설명을 환자에게 거의 하지 않는 의료계의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법원이 포괄위임규정에 대해 별도의 서명을 받도록 한 개정 선택진료에관한규칙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이다.

(Ⅲ) 또한 1심과 2심 법원은 식약청 허가사항 초과 의약품 임의비급여 및 별도산정 불가 치료재료 임의비급여에 대해서는  환자의 상태 등과 당시 의료수준, 의사의 전문적 경험지식에 따라 적절하다고 판단되고  이러한 비용이 급여나 법정비급여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아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는 사정을 사전에 충분히 설명한 후 환자의 동의를 받고  국민건강보험법 등 현형 법령에서 정하고 있는 사전절차를 거쳐서는 환자의 생명을 살릴 수 없는 긴급한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인정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1심과 2심 법원이 판시한 임의비급여 허용의 예외적 요건 3가지는 의사의 자의적 해석을 허용하고 의료현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1) 의약품이나 치료재료의 효과 및 부작용 판단은 의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식약청에서 하는 것이다. 식약청 허가범위를 벗어난 의약품의 사용은 아직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임상적 검증이 되지 않은 것이고, 이를 임의로 사용하는 것은 임상시험과 다르지 않다. 의약품이나 치료재료의 경우 초기 임상적 데이터는 제약회사의 재정적 지원으로 만들어져 학회나 언론을 통해 발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러한 임상적 데이터에는 효과가 과장되거나 부작용이 축소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는 성모병원이 의학적 근거가 있다며 식약청 허가범위를 벗어나 사용한 대표적 약제인 ‘카디옥산주’과 ‘마일로타그주’가 오히려 백혈병 재발률이나 사망률을 증가시킨다는 이유로 시판이 중단되거나 사용 제한 권고가 내려진 것을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이렇듯 의약품은 원칙적으로 식약청에서 유효성과 안전성에 대한 검토를 거친 후 허가를 받아 사용해야 한다. 식약청의 존재이유도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의약품 및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는 의약품으로부터 환자의 생명과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만일 이것을 허용하면 임상적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건강보조식품, 민간요법 등에 의한 치료행위도 모두 인정해야 한다. 이를 통해서도 완치되는 환자가 극소수이지만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다면 근거중심의 보건의료환경은 조성될 수 없다.

(2) 다음으로 재판부가 이해하는 ‘충분한 설명’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성모병원은 입원할 때 원무과 직원이 환자보호자를 불러서 입원약정서와 선택진료신청서의 환자 인적사항 부분, 연대보증인 인적사항 부분, 서명날인 하는 부분을 펜으로 Ⅴ표시를 해주면서 입원약정서와 선택진료신청서를 작성하라는 정도의 설명만 한다. 선택진료신청서에는 한번 체크만 하면 앞으로의 모든 진료비, 검사비 등에 20~100%씩 선택진료비가 추가되는 포괄위임 문구가 부동문자로 적혀있다. 이렇게 중요한 내용은 당연히 원무과 직원이 구도로 설명하고 환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성모병원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것은 성모병원에서 치료받은 수천명의 백혈병 환자 누구에게 물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3) 마지막으로 식약청 허가범위를 벗어난 의약품 임의비급여 항목 중에서 1심과 2심 법원이 의학적 근거가 있다고 판결한 카디옥산주, 맙테라주, 네오플라틴주, 명지하이드리아캅셀, 미트론주, 엘케란주, 프링크주, 중외헤파린나트륨주사액, 젬자주, 글리벡코팅정 등 총 12개 항목 중에서 ‘맙테라주’에 대해서는 2006. 12. 28.에, ‘카디옥산주’에 대해서는 2011. 6. 27.에 각각 식약청이 의약품 안전성 서한을 배포하여 그 위험성을 지적했다. 또한 이들 12개 항목의 의약품 중에는 대체할 수 있는 의약품이나 치료방법이 있는 경우도 있어서 이들 약제의 사용이 현형 법령에서 정하고 있는 사전절차를 거쳐서는 환자의 생명을 살릴 수 없는 긴급한 경우에 해당한다고도 보기 어렵다.
 
따라서 1심과 2심 법원이 제시한 임의비급여의 예외적 허용 3가지 요건은 설정 그 자체가 불가능하여 법적으로 허용될 여지가 없다. 즉, '의사의 의학적 필요성’ 및 ‘생명과 직결된 긴급성’ 요건은 의료기관의 자의를 허용하는 것이고 ‘사전 충분한 설명 후 환자의 동의’는 현실적으로 허상에 불과하다. 이처럼 요건 자체를 설정할 수 없는 이상, 임의비급여 허용의 예외적 요건들은 법적으로 인정될 수 없다. 만일 1심과 2심이 제시하는 요건을 통해 임의비급여를 허용할 경우 임의비급여의 오남용을 결코 방지할 수 없으며, 건강보험제도를 붕괴시키고 전 국민과 환자를 혼란에 빠뜨리게 할 것이다.
 
정부는 임의비급여 해소방안으로 2006.1.9부터 식약청 허가범위를 벗어나 항암제를 사용할 수 있는 암질환심의위원회의 사전승인제도를 시행하고 있고, 2008.8.1부터는 식약청 허가범위를 벗어나 항암제 이외 일반 의약품을 사용할 수 있는 사후승인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암질환심의위원회의 사전승인제도는 시행된 후 총 302개의 신청건수 중에서 256건이 승인되고 46건만이 거부되어 승인율이 85%에 이른다. 식약청 허가사항 초과 의약품 사후승인제도도 시행된 후 총 1,545개의 신청건수 중에서 1,347건이 승인되고 198건만이 거부되어 승인율이 87%로 매우 높다. 임의비급여가 아니라 이러한 합법적 제도를 이용하면 된다. 

임의비급여 허용은 건강보험제도의 근간을 뿌리째 흔드는 것으로써 근거중심의 보건의료문화를 부정하고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할 것이다. 효과와 부작용에 있어서 검증되지 않는 의약품과 치료재료를 식약청이 아닌 의사 개인이 그것도 근거수준이 낮은 문헌이나 증례만을 가지고 사용하자는 것은 국가 책임을 방기하자는 것과 다름 아니다. 성모병원에서 의학적 근거가 있는 임의비급여라고 주장하면서 사용한 ‘카디옥산주’나 ‘마일로타그주’가 결국은 백혈병을 유발하고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의약품 사용 제한 권고가 내려지고 판매 중단까지 되었지만 1심과 2심의 판결에 의하면 환자가 부담한 고액의 약값과 재발 등으로 사망한 백혈병 환자들의 생명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있는데 그 피해에 대해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것이 임의비급여이다.

대법원은 오늘 공개변론을 통해 의료현장에서 임의비급여가 실제 어떻게 운영되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임의비급여 합법화가 불러올 파장을 신중히 검토해 근거중심의 의료문화와 건강보험제도 근간이 유지될 수 있는 현명한 판단을 하기를 기대한다.

 

2012.2.16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한국백혈병환우회, 한국신장암환우회, 한국GIST환우회,
한국HIV/AIDS감염인연대 카노스, 암시민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건강세상네트워크,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맹

Share this